[박근종 칼럼] 인간의 뇌를 모방한 AI(인공지능) 기술이 Chat GPT(생성형 AI)를 넘어 AGI(범용인공지능) 시대로 급속히 진화하는 등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노동환경이 급변하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 직속 노사정(勞使政)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지난 2월 6일 최고 의결 기구인 본위원회를 열었다. 이번 제13차 본위원회에서는 ▷지속 가능한 일자리 창출, ▷일·생활 균형 제고, ▷인구구조 변화 대응 등의 당면한 현안 과제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물고를 텄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번 회의가 얼굴을 마주하고 대면으로 열린 건 2021년 6월 이후 2년 8개월 만에 처음이다. 노동개혁이 그만큼 대척점이 많은 이슈일뿐만 아니라 대립의 고이 깊어 합의는 고사하고 한자리에 모이는 것 자체도 어렵다는 방증(傍證)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들어 처음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대화의 길을 열게 돼 참으로 반갑다. 무엇보다도 ▷근로시간 개편,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 ▷정년연장과 계속고용 등 3대 의제와 방향을 담은 선언문 채택과 해당 위원회 설치 등이 의결됐다. 그야말로 산뜻한 출발로 노사정의 앞날에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 다행스럽다. 다만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1999년 이후 25년째 참여하지 않고 있는 민주노동조합총연맹 없이 진행되어 아쉽다.

대통령은 경사노위 17명의 위원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사회에 대한 애정, 후대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애국심의 측면에서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간다는 공동의 목적 의식으로 대화해 나간다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합리적 결론 도출을 호소했고, 김동명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도 “복합 위기 속에서 각자도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할 시기”라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호응했다.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도 “복합위기 속에 ‘투쟁보다 대화하자’는 원칙에 합의했다.”라고 말한 것으로 뒷말이 흘러나왔는데, 그동안 대립과 반목, 투쟁의 강경 일변도(一邊倒)에서 모처럼 대화와 타협의 상생 기조(基調)로 전환을 일궈낸 이런 좋은 분위기가 가시적인 구치적 성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경사노위가 다룰 의제 중 핵심은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 ▷노동유연성 확대, ▷청년·고령자 상생 고용방안 등이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인구구조가 급변하는 상황에서 어느 것 하나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중요한 주제들이다. 노사정 각자 입장이 있겠지만, 일할 인구는 줄고 고령화로 노년기가 길어지면서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년 뒤 재고용하는 쪽으로 고용환경이 변화돼야 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대체적 시각을 넘에 시대적 요구이자 거역할 수 없는 조류(潮流)이다. 정년연장·계속고용에 따른 임금삭감이나 노동시장 유연화도 당연히 뒷받침돼야 할 엄중한 현안과제들이다. 또 미래의 주역이자 내일의 주인공인 청년층을 우선 배려하고, 노인 빈곤 해결을 위한 고령자 일자리 창출도 수반돼야만 한다.

지난 1월 14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2023년 60세 이상 제조업 취업자 수는 59만 9,000명으로 집계돼 전년 대비 5만 1,000명이나 증가했다. 하지만 29세 이하 제조업 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3만 3,000명 감소한 55만 5,000명으로 집계된 데다 20대 이하는 3만 3,000명 줄어든 55만 5,000명이었다. 5~29세 청년 취업자는 9만 8,000명 급감했고 ‘경제 허리’라 볼 수 있는 40대 취업자는 5만 4,000명이 줄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12월 공개한 ‘한눈에 보는 연금 2023’을 보면, 2020년 기준으로 한국의 66살 이상 노인 인구의 소득 빈곤율은 40.4%로 부동의 1위다. 소득 빈곤율은 평균 소득이 빈곤 기준선인 ‘중위가구 가처분소득의 50% 미만’인 인구의 비율을 말하는 데 OECD 회원국 평균 14.2%보다 3배에 가까운 2.85배나 높다.

이 모든 걸 노사정 3자의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의 시각으로만 바라보면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해결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 미래를 위해, 또 사회 전체를 위해 상생하는 윈윈 게임(Win-Win game)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대승적 차원의 대의(大義)를 염두에 둔다면 정작 찾기가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경사노위 위원들에게 “노사 문제는 사회에 대한 애정, 후대에 대한 사랑, 국가에 대한 애국심 측면에서 대화하면 해결되지 않을 게 없다.”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 대화의 물꼬는 텄고 출발도 순조로워 보인다. 일자리는 모든 경제주체에게 가장 근본적인 문제다. 글로벌 경제·기술 패권 전쟁이 한층 가열되는 복합위기 상황에서 노동 개혁을 미루면 우리 기업들은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 경제 체질을 선진화해서 노사가 상생할 수 있도록 노동 개혁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노동자 측은 더 높은 임금으로 처우를 개선하고자 하고, 사용자 측은 더 낮은 임금으로 생산을 증대하고자 한다. 또한 노동계는 임금손실 없이 안정적인 정년연장 방식을 고수하려는 반면 경영계는 임금부담을 우려해 퇴직 후 재고용 방식을 주장한다. 당연히 상충관계의 반대 방향 목표를 어떻게 조율하고 균형점을 찾는 것이 관건일 터, 노동자·사용자·공익·정부 모두가 사명 의식을 갖고 투쟁이 목적이 아닌 해결이 목적인 생산적 논의에 임해야 한다. 정부는 정교한 논리와 끊임없는 설득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를 과단성 있게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동계도 투쟁을 위한 투쟁과 반대를 위한 반대에서 과감히 벗어나 합리적 대안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사용자 역시 노동에 쏟는 정성이 경영의 가치가 된다는 신념으로 성숙한 노사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자세로 설득과 포용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어렵게 경사노위가 가동한 만큼 타협점을 찾아 투쟁보다 대화로 경제 활력을 불어넣을 마중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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