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西毆)냐, 동구(東毆)냐의 구분 별 의미 없을 시점도 조만간 다가올 듯”

213() 저녁 730분 부천아트센터 콘서트홀

동구권(東歐圈) 오케스트라들에 대한 국내 클래식팬들의 인식과 반응은 사실 서유럽 오케스트라 연주들에 비해 그 평가나 반응이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난해 가을 한바탕 국내 클래식 무대에서 오케스트라 대전을 벌였던 연주단체들이 대부분 베를린필이나 빈필, 암스테르담 콘서프헤보우등 서구 오케스트라들이 주역들로 서울 클래식 무대를 누빈 것도 이런 인식과 무관치않아 보인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 서구 오케스트라 일색의 연주 러시속에서 꿋꿋한 연주실력을 보인 체코필이나 그 이후 내한연주를 가졌던 슬로박필, 올해 1월의 프라하심포니, 2월에 연주회를 가진 바르샤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접하면서 특히 바르샤바 필의 경우 서구의 오케스트라들과 견주어도 손색없을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을 볼 수 있어 유럽의 오케스트라들의 클래식 구도에서 이제는 더 이상 서구냐, 동구냐의 구분도 별 의미가 없을 시점도 조만간 다가올 것 같다.

여러 작곡가들의 섬세하면서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새롭게 흥미로웠던 바르샤발필 내한공연 장면. (사진 부천아트센터)
여러 작곡가들의 섬세하면서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새롭게 흥미로웠던 바르샤발필 내한공연 장면. (사진 부천아트센터)

바르샤바필, 서구 교향악단과 견주어도 세련된 연주

이런 판단을 내리게 된 근거는 지난 213일 음향이 최근 좋기로 소문난 부천아트센터의 Prime Classic Series의 일환으로 무대에 오른 바르샤바 필하모닉이 자국의 작곡가 루토스와프스키의 작은 모음곡(Little Suite)’이나 자국 소팽콩쿠르에서 우승한 라파엘 블레하츠와의 협연 슈만 피아노협주곡무대, 그리고 브람스의 교향곡 제2번으로 서구 교향악단과 손색없을 면모를 보였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사실 유투브등에서 들을 수 있는 바르샤바 필의 베토벤교향곡들 연주나 슈만심포니 No.4,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루토스와프스키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콘체르토등을 들어봐도 동구권 오케스트라라고 볼 수 없는 서구권 오케스트라들의 섬세한 연주력을 느낄 수 있어서다. 바르샤바필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우승한 쇼팽콩쿠르의 협연 오케스트라로만 내게도 인식이 굳어져 있어왔던 판에 서구 오케스트라들과 견주어도 세련된 여러 작곡가들의 섬세하면서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새롭게 흥미롭다.

이런 바르샤바필이 섬세하면서 세련된 연주를 들려주는 까닭은 국내 관객들에게도 사실 잘 인식이 안되어 있지만 바르샤바필이 이미 100년이 넘게 1901115일 새로 건립된 필하모닉 홀에서 첫 연주회를 가진 오랜 구력(球歷)이 전통으로 바탕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첫 연주회에서는 필하모닉의 공동 창립자이자 첫 번째 음악감독, 그리고 수석 지휘자였던 에밀 므위나르스키(Emil Mlynarski)가 지휘하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lgnacy Jan Paderewski)가 출연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이전과 세계대전 기간동안에 이 단체는 폴란드 음악생활의 주요 중심지이자 유럽 최고의 음악기관으로 자리잡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에는 연주홀이 없어 열악한 환경속, 경기장과 극장에서 연주회를 열어야 했고 1955221일 독일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옛 필하모닉 홀을 뒤로 하고 새로운 필하모닉 홀이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바르샤바필하모닉은 폴란드 국립 오케스트라로 승격되어 비톨드 로비츠키(Witold Rowicki)의 지휘아래 폴란드 최고의 음악기관으로서 그 위상을 드높히기도 했다.

1955년부터 1958년까지는 보단 보디츠크(Bohdan Wodiczko)가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는데 그후 1958년 비톨드 로비츠키가 다시 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및 수석지휘자로 임명되었고 1977년 카지미에시 코르트(Kazimierz Kord)가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는 국내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협업하기도 한 안토니 비트(Antoni Wit)가 경영과 예술감독을 맡았고 2013/2014 시즌에는 쇼팽콩쿠르 우승기념으로 조성진과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서 국내관객들에게 친숙한 야체크 카시프시크(Jacek Kaspszyk), 2019/2020 시즌 이후부터는 안제이 보레이크(Andrzej Boreyko)가 현재까지 예술감독직을 맡고 있다.

바르샤바필은 5개 대륙에서 150회가 넘는 순회연주를 통해 세계 주요 콘서트홀 무대에 섰으며 뛰어나고 역동적인 연주로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과 음악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블레하츠는 슈만 피아노협주곡에서 절도있고 명료하고 가볍고 활달한, 깔끔한 연주를 선보여 예전 내한 피아노 독주회에서의 숭고한 터치와 대비됐다. 

블레하츠, 슈만 피아노협주곡에서 절도있고 명료하고 가볍고 활달한, 깔끔한 연주

이번 올해 2024년 바르샤바필 내한공연 무대에서 내게 더 특별하게 연주회가 다가온 까닭은 많은 음악애호가들에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2005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제15회 쇼팽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 라파우 블레하츠의 슈만 피아노협주곡협연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블레하츠의 올해 부천아트센터에서 연주를 보면 슈만 피아노협주곡 2악장 인터메조의 절도있고 명료하고 가볍고 활달한, 깔끔한 연주등이 2017년 첫 내한 독주회에서 보였던 거장적 숭고한 터치와 대비돼 흥미로웠다. 오는 227일 라파우 블레하츠는 The Great Pianist Series 일환으로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다시 독주회를 갖게되는데 쇼팽의 녹턴 , Op.55 No.1, 마주르카, Op.6, Polonaises, Op.40등의 레퍼토리들 외에도 드뷔시의 Suite Bergamasque, L. 75,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No. 11, 그리고 시마노프스키의 Variations in b-flat minor, Op. 3등의 연주곡들을 어떻게 들려줄지 피아노연주 애호가들의 기대가 매우 높다.

폴란드 출신의 라파우 블레하츠 역시 2017 10 14일 토요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쇼팽의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빚어낼 때 관객들이 최고의 피아니즘에 넋을 잃는등 후반부의 연주자나 관객의 몰입도가 더 진하고 높았던 이날 블레하츠가 쇼팽 피아노소나타 제2III. Marche funebre: Lento에서꿈속의 몽환을 걷듯 연주, 3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불구 거장적 터치에 의한 목가적이면서 숭고한 음색이란 표현이 전혀 무색치 않았던 연주를 들려주던 것을 감안하면 1975년 열여덟살의 나이로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선배 크리스티안 짐머만(68)이 수차례 내한공연을 가져 친숙한 반면 블레하츠(39)의 피아노 리사이틀이 국내무대에서 자주 펼쳐지지 못했던 것은 적지않이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동구권 오케스트라들의 면면이 서구권 오케스트라들에 못지않다는 인식을 갖게 만든 연주회들은 우선 가장 최근 지난 가을 서구 오케스트라들의 서울 대전 각축속에서도 체코필이 지난해 1024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공연을 통해 상임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지휘로 드보르자크의 작품만을 선보여 사육제 서곡’, ‘교향곡 7을 비롯, 무대에서 자주 만나기 힘든 피아노 협주곡 g단조를 오리지널 버전으로 연주해 기라성같은 유럽의 메이저급 오케스트라 군웅할거(群雄搳據) 시장에서도 우뚝 서있었던 것은 이런 한 단면이다.

지난해 강동아트센터에서 연주회를 가진 슬로박필의 경우도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들이 세계적인 사운드를 지향하고 있는 반면 슬로박필은 슬라브 정통 사운드를 유지하며 이를 긍지로 여긴다. 이런 슬로박필의 슬라브 정통 사운드는 첫 연주곡 얀 레보슬라프 벨라의 서곡 내리마장조에서부터 현현(顯現)되어 슬로박필의 레퍼토리 구성은 안토닌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비롯해 선우예권이 협연한 알렉세이 쇼어의 피아노협주곡 여행 노트와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 랩소디등 초겨울의 서정과 담뿍 어울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로 구성되어 이채를 띠었다.

지난 118일 처음 내한공연을 가진 체코 프라하심포니의 경우도 네임밸류에서 그리 높지않은 것이 사실이었으나 필하모닉이라는 명칭을 갖는 연주단체들이 더 비중있고 고급스러운 연주를 들려주는 것 처럼 느껴지는 것이 클래식애호가들이 갖는 일반적인 심성이지만 이것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프라하 심포니 오케스트라 공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거의 30여년전 넘게 프라하 심포니의 Libor Pesek지휘의 드보르작 신세계나 벨라홀라베크 지휘의 독일 Alte Oper 프랑크푸르트 드보르작 페스티벌에서 연주된 Slavonic Dance No. 8, 그리고 Vaclav Neumann이 지휘한 프라하 심포니의 베토벤교향곡 제8번 유트브 동영상 연주들만 들어봐도 체코필과 연주차이를 느낄 수 없는 거의 대등한 연주실력을 보여준다.

올해 2024년 신년들어 신년공연이 대부분 왈츠와 폴카등 신년음악회 레퍼토리들로 채워지던 형국에서 프라하 심포니 내한공연은 체코 작곡가인 드보르자크의 전설 Op.59, No.1, 첼로협주곡, 교향곡 9번 신세계등 올 정통 클래식 곡들의 진가와 가치를 일깨웠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달랐다.

(: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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