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일: 2024.03.31
캐스팅: 전동석, 여은, 최기호, 조삼희, 이한주, 전일준, 정다운
장소: 샤롯데씨어터
좌석: 14열 중앙

폐허나 다름없는 허름한 뮤지컬 세트장 무대 위로 한 무리의 밴드가 자리를 잡는다. 곧이어 비워둔 중앙 자리로 반짝이는 한 사람이 요란하게 걸어들어온다. 부드럽게 찰랑이는 금발 머리, 눈이 부신 의상과 메이크업에다 능숙한 쇼맨십까지. 슈퍼스타의 면모를 뽐내며 마이크 하나로 관중을 휘어잡는 그, 혹은 그녀의 이름은 바로 헤드윅이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와 함께 헤드윅과 밴드 Angry Inch의 하룻밤 한정 공연이 화려한 막을 올린다. 

헤드윅의 이야기는 그녀가 동독에 살던 평범한 소년, 한셀이었을 때부터 시작한다. 음악을 사랑하던 그는 암울한 환경 속에서도 록스타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을 이 지겨운 도시에서부터 탈출시켜 줄 한 남자를 만난다. 그 남자의 요구대로 그에서 그녀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어머니의 이름, 헤드윅으로 바꾸고 미국행을 택한다. 그러나 성전환 수술은 실패로 끝이 나고, 그는 평생 1인치의 치부를 안은 채 반쪽짜리 인생을 살게 된다. 이 때문에 건너온 미국에서도 사랑에 버림받고 상처로 가득한 삶을 살게 된 헤드윅. 그녀를 비추는 무대의 밝은 불빛 아래서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헤드윅’, 그, 혹은 그녀의 화려한 one night show​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헤드윅’, 그, 혹은 그녀의 화려한 one night show​

 

베를린 장벽이 나라를 반으로 갈라버린 독일의 암흑기,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갑갑한 현실 속에서 꿈의 씨앗을 키우던 작은 소년이 있었다. 그에게 꿈을 심어준 건 다름 아닌 음악이었다. 그가 듣던 음악은 그냥 음악이 아니라 자유와 사랑을 노래하는 음악,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미국의 록 음악이었다. 우울한 공기를 활기찬 희망으로 물들이는 짜릿한 선율을 느끼며 아이는 그 멜로디에 조심스레 자신의 목소리를 얹어본다. 그 음악을 따라 걸어갈 미래가 얼마나 험난할지를 예상하지 못한 채…

헤드윅의 삶은 듣기만 하는 것조차 괴로울 정도로 고통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아버지는 괴물 그 자체였고 어머니는 어린 자식에게 무관심했으며,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모두 반쪽짜리 거짓이었다. 혼란을 가득 안은 채 도착한 낯선 땅, 미국에도 자유는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미국 땅을 밟자 힘겹게 떠나온 고향에서는 장벽이 무너지며 자유가 찾아온다. 그의, 그녀의 삶은 끝나지 않는 장애물 달리기와도 같았다.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허들이, 또 하나를 넘으면 그다음 허들이 이어지는 고통의 반복이었으니 말이다. 

넘어지고 찢기며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부여잡고 그녀는 계속 뛰었다. 멈추지 않았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무대의 반짝이는 불빛을, 자신의 빛나는 꿈을 놓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에 올라 당당히 자신만의 노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자신은 그가 1인치를 가진 반쪽짜리 인간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그녀의 무대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온전하고 완벽한 하나의 존재임을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진심 어린 목소리로 세상 앞에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던 헤드윅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그가 항상 바라왔던 것은 진실된 사랑이었다. 자신이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주고 사랑해 줄 영혼의 반쪽이 나타나기를, 어머니가 해주시던 옛이야기에 나오는 환상과도 같은 사랑이 이뤄지기를 한없이 꿈꿨다. 그러나 그가 살면서 겪은 건 마음을 주면 배신을 당한다는 것과 세상에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절망적인 사실뿐이었다. 언제나 자신보다 자신의 반쪽, 즉 사랑이 먼저였던 그녀는 공연 막바지에 다다라서야 찾아 헤매던 반쪽 대신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나의 반쪽보다 소중한, 나 스스로의 존재를.

헤드윅이 그, 혹은 그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을지는 나도 모른다. 그건 내가, 아니 그 누구든 함부로 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닐 뿐더러 그다지 중요한 것도 아니다. 헤드윅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하는 것보다 그녀가 멋진 록스타이고 그의 노래가 세상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훨씬 더 중요하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반으로 갈라져 있던 시민들에게 자유를 주었듯, 우리가 헤드윅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보이지 않는 장벽을 거두어 그녀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어떨까. 그저 헤드윅, 별다를 것 없는 그 존재 자체를 별다를 것 없이 바라보는 것이 그를, 그리고 우리를 반쪽이 아닌 온전한 한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헤드윅’, 그, 혹은 그녀의 화려한 one night show
​사진 = 강시언 / [리뷰] 뮤지컬 ‘헤드윅’, 그, 혹은 그녀의 화려한 one night show

 

뮤지컬 ‘헤드윅’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인 ’헤드윅‘ 역을 맡은 전동석 배우는 헤드윅의 모든 기억과 감정을 예술로 완벽히 승화시키며 눈부시게 빛나는 록스타의 면모를 가감없이 보여준다. 최근작인 ‘오페라의 유령’, ‘드라큘라’에서의 고전적이면서 카리스마 있는 이미지를 완전히 탈피하고 발칙하고 솔직한, 흥이 넘치면서 유쾌한 분위기를 내뿜는 전혀 다른 이미지의 역할을 환상적으로 소화해 내는 그의 모습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뮤지컬 배우가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꾹꾹 눌러 담아 관객에게 선보이는 듯한 감동을 받았다. 

헤드윅의 남편 ‘이츠학’ 역의 여은 배우와 Angry Inch 밴드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여은 배우는 넘버에 딱 들어맞는 벼락같은 가창력으로 시종 시선을 사로잡으며 확실한 존재감을 뽐낸다. 록과 팝,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폭넓게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Angry Inch 밴드의 연주는 무대를 신나는 록 비트로 가득 채운다. 마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시절부터 함께 해 온 것처럼 완벽한 호흡으로 극의 매력도를 한껏 끌어올린다. 멋진 무대를 보여준 모든 배우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뮤지컬 ‘헤드윅’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가는 헤드윅의 여정을 담은 진솔한 작품인 동시에 록 음악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유쾌한 작품이다. 헤드윅과 밴드 Angry Inch가 들려주는 슬프고도 희망적인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그들의 one night only, 하룻밤 쇼의 관객이 되어보기를 바란다. 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함께 공연을 만들어가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뮤지컬 ‘헤드윅’은 6월 23일까지 샤롯데씨어터에서 공연된다. 

문화뉴스 / 강시언 kssun0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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