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이 배우를 향한 수식어가 셀 수 없었기에, 어떤 것부터 나열해야 할지 기사를 작성할 때부터 고민이 많았다. 얼굴에 '잘생김'을 함부로 묻히고 다니는 배우, 연예계 대표 몸짱 미남이자 정장핏의 대표주자, 눈웃음이 매력적인 미남배우, '역대 최연소' 청룡영화상 남우주연상 수상(27세), 한국 배우 중 최초로 '청룡영화상 3관왕(신인상·조연상·주연상)' 모두 석권한 배우,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흥행보증수표', 전부 한 배우를 관통하고 있는 표현이다.

수많은 수식어의 주인공은 바로 배우 이정재다. 1993년에 데뷔한 이래, 그는 쉬지 않고 해마다 새 작품으로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많은 작품을 거쳐오면서, 이정재는 카멜레온처럼 변신했다. '암살'에선 관객들의 분노를 샀던 변절자 '염석진'을, '관상'에선 이른바 '폭풍간지'로 미친 존재감을 발산했던 '수양대군'을, '신세계'에선 이중신분으로 내적갈등을 겪었던 '이자성'을 완벽하게 연기했다.

이정재는 자신의 26번째 작품 '대립군'을 들고 찾아왔다. '대립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주로 피란 간 선조 대신 어린 '광해(여진구)'가 '분조'를 맡아 임금 대신 의병을 모아 전쟁에 맞서기 위해 머나먼 강계로 떠나는 과정에서 남의 군역을 대신하며 먹고 사는 '토우(이정재)'를 수장으로 둔 '대립군'을 만나 함께 나아가는 여정을 그린 영화다. 이정재에게 '대립군', 그리고 '토우'는 어떤 의미인지,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언론시사회 때, '대립군'에 대한 반응이 상당히 좋았다. 알고 있는가?
└ 나는 당시 배급사 쪽 관계자들과 영화를 봤기에 잘 몰랐다. 여기선 웃음코드가 나오는 부분에서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기에, '대립군'이 별로였나 싶어서 걱정을 많이 했다. 정말 다행이다. (웃음)

'대립군'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 어떤 점이 끌려서 하게 되었는가?
└ 대본을 읽으면서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 조선시대에도 진짜 이런 일이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작은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옮겨오면서 극대화한 부분은 존재하지만, 대본을 읽으면서 오늘날 관객들이 '대립군'이 보면서 공감할 수 있는 게 많겠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대립군' 기획 자체가 참신해 보이기도 해서 선택하게 되었다.

 

언론시사회에서 완성본을 처음 봤을 텐데, 대본에서 봤을 때와 차이점은 있었는지? 감독님은 비정규직 이야기를 언급하셔서 처음부터 그 부분에 설정을 둔 것인가?
└ 차이점은 조금 있었다. 감독님은 갈등의 요인을 다른 부분에 중점을 두신 것 같다. 그래서 정치적이고 무거운 주제가 전면에 드러나는 게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인간이라면 모두가 느낄 수 있는 공통부분에 대한 주제를 내세우는 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본상에서는 그것이 '두려움'이었다.

계급을 막론하고 왕부터 '대립군', 백성들까지 전란을 겪으면서 두려움을 다 같이 느끼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나를 비롯한 모든 이들 또한 큰일을 겪게 되면 두려움을 느낀다. 극 중 '토우'의 대사 중에 "두려워도 이겨내야 합니다"는 대사가 이 영화의 주제라 생각했다.

두려움이라는 단어가 영화 중간중간마다 등장하여 주제로 보일 수도 있었으나, 일부 부분이 완성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편집되었다. 두려움이 잘 드러나지 않았던 게 개인적으로는 아쉬웠다.

두려움에 관련된 씬 중에 편집된 부분은 구체적으로 어떤 씬이었는지?
└ '광해'에게 향하는 대사 하나, 그리고 '대립군' 동료들에게 향하는 대사 하나가 편집되었다.

공교롭게도 '대립군' 영화 개봉 시기가 얼마 전에 치렀던 장미 대선과 맞물렸던 같은데.
└ 제작 단계에선 대선이 당연히 겨울이라고 생각했고, '대립군'을 그 시기에 맞춰 개봉하자는 계획을 세운 뒤 지난 9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장미대선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영화 개봉시기를 놓고 한참 동안 회의를 진행했고, 결국 예정보다 많이 앞당겼다. 그 과정에서 후반작업시간이 조금 모자랐던 게 아쉬웠다.

당신의 전작들처럼 이번 '대립군'에서 맡은 '토우' 또한 선이 매우 굵은 인물이었는데, 역할에 대한 부담감은 없었는지?
└ 큰 틀에서 보면 '토우' 또한 선에 굵은 역할이긴 하다. 하지만, 좀 더 세분화하면 기존 역할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만약 '왕' 역할이었으면 아마 못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다행히 '대립군' 역할을 제안 받았다. 그동안 해보지 않았던 역할이었기에 하게 되었다.

▲ 영화 '대립군' 스틸컷

'토우'라는 인물을 관객들에게 어떻게 보여주고 싶어서 연기했는지?
└ '토우'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거친 남자다. 관객들이 봤을 때, 나하고 거리감 있는 인물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토우'의 외모나 계급에서 오는 표현방법 때문에 거칠게 보이는 것이지, 힘든 일상생활을 매일 꾸역꾸역 이겨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모습과도 많이 맞닿아 있어 그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

톤에 대해 연구한 흔적이 눈에 많이 띄었다. '토우'를 연기하면서 목을 긁는 게 많아 보였는데, 고충은 없었나?
└ '토우'가 내는 목소리 톤도 역할을 위해서 만든 건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는 게 최우선이었고, 그 톤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도 상당히 고민했다. 자칫 잘못하면 마당쇠처럼 "예~ 마님!" 같아서 마당극이 되어버리니까 말이다. (웃음) '토우'가 '대립군'을 인솔하는 선임하사 같은 역할이 강했기에, 그에 적합한 톤을 찾기 위해 리허설을 많이 했다.

계곡에서 탈의할 때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상체가 상당히 말랐는데, 일부러 설정상 한 것인지?
└ 그게 '토우'에게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다. 나 자신만 생각한다면 이두, 삼두박근을 멋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토우'는 근육질과는 전혀 안 어울리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 영화 '대립군' 스틸컷

'토우'가 매번 자신의 몸을 과감하게 내던지길래 처음에는 가족이 없는 줄 알았다.
└ '대립군'에서 아주 중요한 내용인데, 이 '대립군'이 누구를 위해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가족이다. 대본을 받은 후부터 촬영하는 내내 "'토우'에게 반드시 가족이 있다"고 감독님에게 말하면서, "'토우'의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완성본에 최종 반영되지 않았지만, 사실 '토우'의 가족에 대한 부분도 촬영했다.

하지만 감독님은 '토우'의 가족을 보여주는 걸 부담스러워하셨다. 왜냐하면 '대립군'이 맞춰진 초점은 '대립군'보다는 정확하게 '광해'에게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님 말씀이 맞는 말인 게, 2시간이라는 상영시간에 모두 다 반영한다는 게 쉽지 않다. '광해'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삭제되었다.

극 중에서 인물들의 이름이 한 번도 밝혀지지 않은 채, 흘러가는 게 특이했다.
└ 최대한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기로 정했고, 그게 영화 설정 중 하나였다. '대립군'들이 남의 이름으로 대신 군대에 끌려와서 사는 허깨비들과도 같았기에, 각자 고유의 이름은 없었다.

처음 여진족과의 전투 끝나고 '토우'가 초년병사에게 "너란 놈은 없다. 너란 놈을 머릿속에서 지워라"라며 말했다. 그리고 그다음 씬에서 군관이 호명할 때, "아 그게 내 이름이지. 하도 이놈 저놈 살다 보니 요번 이름은 디게 안 외워지네"라는 대사 또한 대표적인 예다.

 

언론시사회에서 무술을 전통무예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웠다고 밝혔는데, 최대한 고증을 통해 한다는 것 때문에 특별히 그런 선택을 한 것인가?
└ 맞다. 극 중에서 '토우'가 장검을 사용하는데, 다른 작품에서처럼 칼끼리 부딪치고 피하고 하는 동작들이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싶어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웠다.

장검을 실제로 봤는데, 사람을 해칠 수 있는 날이 굉장히 넓었다. 상대방과 붙게 되면, 훨씬 더 치명적이고 사실적인 액션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른 작품들과 달리 색다른 면이 많았다.

[문화 人] '대립군' 이정재 "산, 가마, 여진구, 그리고 호패" ②로 이어집니다.

syrano@mhns.co.kr 사진제공= ⓒ 20세기 폭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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