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컴퍼니의 서영은 작 윤석화 각색 연출의 먼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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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은(徐永恩 1943~)은 강원도 강릉 출신 소설가다. 아버지 서장일과 어머니 신봉진 사이에서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신학교를 졸업한 지방 지주의 아들이어서 유년 시절 비교적 넉넉하게 생활했다. 1950년 강릉초등학교 2학년 때 6·25전쟁을 겪었다. 11세 때 한국외국어대학 영어과에 재학 중이던 오빠에게 매를 맞아가며 영어를 배웠고, 그 덕분에 1955년 강릉여자중학교에 입학해서 영어를 잘하는 학생으로 교사들로부터 인정을 받으면서 병적인 수줍음과 비사교적인 성격이 다소 교정되었다. 이 무렵 정비석·김말봉·김내성 등의 소설을 탐독하였다.
 
1958년 강릉사범학교에 입학한 뒤, 시를 쓰는 남자 선생을 연모하여 후에 소설 <황금깃털>을 쓰게 되었다. 이즈음 오빠가 정기 구독했던 <사상계>에서 김동리의 <등신불>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 1961년 강릉사범학교를 졸업한 뒤 교사임용시험을 거부하고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가 사망하자 서울로 이사했다. 1963년 건국대학 영문과에 입학했으나 1965년 중퇴하였다.
 
 1967년 <현대문학> 창작 실기 강의에서 알게 된 박경리가 최초의 습작 <교 橋>를 보고 김동리에게 보내 <현대문학> 추천을 부탁했으나 수필적이라는 평을 받았다. 1968년 <사상계> 신인작품 모집에 단편 <교>가 입선하고, 1969년 <월간문학> 신인작품 모집에 <나와 '나'>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후 1970년 단편 <단식>·<뒤로 걷기>·<연주회에서 생긴 일>을 발표했으나 평론가 정창범으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1972년 <러브 스토리>·<당신은 잠이 잘 옵니까>를 발표하면서 작가로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1973년 11월에 창간된 <한국문학>에 경리 겸 기자로 입사하여 발행인 김동리와 편집장 이문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975년 이문구의 권유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에 가입했고, 한국문학사를 그만둔 이듬해 문학사상사에 입사했다. 이즈음부터 <사막을 건너는 법>(1975)·<살과 뼈의 축제>(1977)·<술래야 술래야>(1980)·<황금깃털>(1980)·<산행>(1983)·<먼 그대>(1983)·<삼각돛>(1984)·<수화>(1986)·<사다리가 놓인 창>(1989)·<꿈길에서 꿈길로>(1994) 등의 소설을 발표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넓혔다. 1987년에는 원로 소설가 김동리와 30년이란 나이차를 극복하고 결혼해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소설집으로 <사막을 건너는 법>(1977)·<살과 뼈의 축제>(1978)·<술래야 술래야>(1981)·<황금깃털>(1984)·<강물의 끝>(1984)·<그리운 것은 문이 되어>(1989)·<사다리가 놓인 창>(1990)·<길에서 바닷가로>(1992)·<꿈길에서 꿈길로>(1995) 등이 있고, 산문집으로 <새와 나그네들>(1987)·<낙타 수첩>(1988)·<내 마음의 빈들에서>(1991)·<한 남자를 사랑했네>(1993) 등이 있다. 그녀는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수법으로 자아의 갈등을 작품화했는데, 현실적인 삶의 조건에 대해 더 인간적인 관찰을 거쳐 초월적 입장에서 어떤 절대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을 보인다. 
 
<먼 그대>는 서영은이 1983년에 쓴 단편소설로 제7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고, 1990년 <사다리가 놓인 창>으로 제3회 연암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996년부터 계간 <라쁠륨> 편집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06년부터 추계예술대학교에서 강의도 했다.
 
 <먼 그대>의 주인공은 나이 사십이 다 되어 가는 문자라는 여인으로, 아동도서를 간행하는 H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보는, 10년 경력의 말단 사원이다. 노처녀인 그녀는 전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남루한 옷차림에 비참하고도 힘든 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는 타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가꾸고 누리며 살아간다. 한수라는 사내를 알게 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겐 이미 처자식이 있음을 알게 되어 결혼을 하지 못하고 그냥 함께 살게 된다. 그녀는 한수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한수의 본처가 와서 빼앗아 갔다. 사실 한수의 처는 문자와 한수의 살림살이까지 부수어 놓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문자의 방에는 부술 경대도, 화장품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이만 빼앗가 갔다. 문자는 광산업에 실패한 한수가 자신을 묶어 놓으려고 한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옥조를 데려가도, 세 들어 사는 집 주인 여자가 억지를 써 가며 집세를 올려 받아도,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자기 맘 속의 어떤 그윽하고 힘찬 그 무엇으로써 생활해 나간다. 그러나 한수는 무직자가 된 이후로 문자를 찾아오면 소주나 마시고 거기다가 돈을 요구한다. 문자는 직장의 월급을 모두 털어 주고도 모자라면 빚까지 내어다 준다. 어느 날, 한수가 물주를 만나겠다고 거액의 돈을 요구해 왔을 때도 문자는 돈을 구하러 이모네 집을 찾아갔다. 이모는 문자에게 좋은 신랑감이 있으니 이번에는 꼭 결혼하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녀의 승낙을 받지 못한 이모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돈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이모네에서 돈을 구해 왔을 때 이미 한수는 술에 곯아떨어진 뒤였다. 그러나 문자는 담담한 얼굴로 한수에게 돈을 내어 준다. 그녀는 혈육마저도 소유의 집념에서 초극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또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낙타'를 끌어내어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살아간다. 한수가 끊임없이 요구해 오는 돈을 구해 주면서도 원하면 원하는 만큼 그 물질에 철저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문자의 말없는 묵묵함은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절대 긍정의 자신감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한수의 모질고 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을 그녀에게 한층 더 큰 시련을 주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멀어지는 신의 등불처럼 여긴다.
 
무대는 배경 막 앞에 중간 막 역할을 하는 번쩍이는 비닐 가리개를 무대 좌우에 설치했다. 그 뒤에 콘드라 베이스의 연주석이 있어 극의 진행에 맞춰 연주자가 연주를 한다. 무대 중앙 객석 가까이에 사각의 입체 조형물을 놓고 연극의 도입에 출연자가 거기에 앉아 수화로 의사표시를 하고, 음성녹음으로 관객에게 내용전달을 한다. 그 후에는 모노드라마로 극이 펼쳐진다. 나긋나긋한 음성으로 속삭이듯 극을 시작하다가, 감정이 북받쳐 오르면 절규하듯 대사를 내뱉고, 그러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밝고 방글거리는 미소로 연극을 이끌어 간다.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 일희일비가 관객의 가슴에 전달되고, 객석전체에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여성관객은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극 속에 몰입하게 된다. 대단원에 주인공의 밝은 얼굴과 그 예쁜 보조개를 보이며 퇴장을 하면 극장은 우레와 같은 갈채로 가득 차게 된다.
 
나장균의 콘트라베이스가 극의 분위기를 상승시키면서 윤석화가 모처럼 모노드라마에 출연해 자신의 진수를 드러낸다.
 
공연이 끝나고 필자가 세월이 많이 흘렀음에도 더욱 예뻐진 모습이라고 하자, "선생님 마음이 예쁘셔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는 화답을 하는 그녀의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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