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직지코드' 우광훈 "프랑스의 '배후' 지목, 오히려 고마웠다" ① 에서 이어집니다.

그럼 프랑스는 현재 직지에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 '직지' 이외에 김홍도와 신사임당 그림 등 다른 한국 유산들이 콜랭 드 플랑시에가 기증한 프랑스 다른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것 또한 못 찍게 해서 또 몰래 들어가 찍어와야만 했다. 프랑스가 이런 면에선 상당히 권위적인 면모를 보였다.

오히려 구텐베르크에게 불리한 이야기를 하러 방문했던 독일은 우리에게 모든 걸 다 보여주었다. 우리 기준에선 맞지 않은 논리였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정확하게 논리를 내세웠다.

프랑스와 달리 독일은 어떠했는지 듣고 싶다.
└ 독일은 구텐베르크가 남긴 증거는 없더라도 1400년대에 그가 추앙받았던 점, 구텐베르크의 고향(마인츠)으로 많은 이들이 금속활자 기술을 배우러 왔다는 점을 증거로 내세웠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구텐베르크가 찍어낸 책들에는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고, 심지어 그의 제자라고 불리는 이들은 하나같이 저서에 자신들의 이름을 기록했다.

극 중에 등장하는 왈드 포겔보다 구텐베르크는 증거가 부족한데도, 독일 측은 그렇다고 증거가 없는 게 아니다는 식의 논리를 펼쳤다. 어떻게 보면, 금속활자를 만든 이들이 구텐베르크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고려 활자 설계도가 유럽에 들어와 다른 이들에게 퍼져서 유행처럼 번져 나갔을 수도 있다. 하물며 마인츠에 세워진 구텐베르크 동상 또한 프랑스가 세웠다.

 

우리는 이를 그대로 영화에 담아냈고, 편파적으로 편집되었는지 검증받기 위해 한국에 돌아와서 국내 학자들과 함께 그들의 논리 주장을 처음 보여드리면서 점검을 했다.

다큐멘터리 제작의 계기였던 엘 고어의 발언을 더 찾아보았는데, 그는 "고려활자가 먼저 발달했을 지라도 대중적으로 퍼지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구텐베르크 활자는 대중적으로 쉽게 퍼져나갔다"고 했다. 이 논리를 독일이 가져간 것 아닌가 싶은데.
└ 그 논리는 인정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유럽 쪽이 대중에게 먼저 퍼졌는데, 그들은 상업적인 용도로 최대한 많이 찍어냈다. 그 중 성경은 가장 보편적으로 많이 팔리는 것이었다.

반면, 고려 금속활자는 많이 찍어야 50권에서 100권 정도였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고려나 조선시대에 금속활자를 이용해 몇 권을 찍었는지 출판 통계가 없다. 과거 중국에서 우리에게 주문해서 납품했던 적은 있다고 하지만, 정확한 수치가 없다.

아무리 고려활자가 앞선다고 하더라도 과학적·역사적인 근거가 없으면, 추측성에 머물게 된다. 또한, '직지'보다 앞선 최초 금속활자본인 '상정예문'을 누가 찍어냈는지도 모른다. 공동 작업으로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옆에서 듣기만 해도 어떠했는지 간접적으로 느껴진다. 화제를 전환해, '직지코드' 제작에 함께 했던 정지영 감독, 그리고 데이빗 레드먼 감독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 다들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걸 거절했음에도 받아들이신 걸 보면 정지영 감독님은 의미 있는 것들을 찾으시며 언제나 생각이 열려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북돋아 주시며,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교류하며 자신이 틀리면 인정하고 물러서는 면이 있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시는 분이다.

그리고 로마에 장비를 도난당했을 때도 누굴 탓하기보단, 아무렇지 않게 재촬영 생각해보라고 묵직하고 짧은 문자를 보내셨다. 감독님의 짧은 문자는 마치 수많은 경전을 요점만 뽑아 집대성한 '직지'처럼 유럽에 나가 있는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가져다주셨다. 그 한마디가 없었다면, 우리는 재촬영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데이빗은 우리에게 귀한 존재였다. 그동안 어떤 누구도 서양인의 시각으로 우리의 문화유산을 객관적으로 접근한 적이 없었는데, 어디선가 날아와 뭔가 잘못된 것 같다는 문제점을 정확히 집어내 객관적으로 풀려고 시도했다.

그가 프랑스에서 시도했던 게 잘 안되어 한국에 오게 되었고, 한국에 와서도 진취적으로 무언가를 찾아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이 나에게도 매우 감사했다. 그가 있었기에 나 또한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물론 데이빗과 나 사이에 정 감독님과 데이빗의 친구인 장동찬 PD님의 역할도 컸다. 이런 걸 보면 동·서양의 합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웃음)

 

이 영화의 또 다른 핵심인물 명사랑 아네스 섭외는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데이빗 한 명만 주인공으로 내세우기엔 뭔가 부족해, 함께 교류하는 여주인공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선정할 때,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인물이어야 했다. 명사랑 아네스가 '부러진 화살' 촬영할 때도 함께 참여했었고, 과거 걸그룹을 했던 경험도 있었다. 대학원에서 미디어 및 유로센트리즘 등을 공부해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명사랑이 이 영화에 걸맞은 사람이었다. 지적이고, 질문하는 능력도 뛰어났다. 그 또한 독일에 가서 담판을 짓고 싶어 했고, 과거 활자로 만든 도서 출판 통계가 없다는 것에 함께 아쉬워했다.

명사랑 아네스를 처음부터 염두했던 것인지, 아니면 몇 명의 후보군을 두고 최종 결정한 것인지?
└ 처음에는 정지영 감독님이 몇 명의 후보를 알려주셨고, 그 중 명사랑을 내심 점찍어두고 계셨으나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런데 명사랑 이외 다른 인물을 생각할 수 없었다. 또한, 그가 독일어, 영어, 라틴어에 능통해 '다빈치 코드'의 오드리 토투처럼 해줄 것 같았다. (웃음)

로마에서 장비가 도난당했던 사건 이외에 촬영 중 또다른 에피소드는 없었는가?
└ 파리에서 프랑스 도서관이 거부한 뒤로 이미 만나기로 약속된 다른 도서관들도 다 취소했을 때 황당했고,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대로 돌아가선 안 된다고 느꼈던 그때, 프랑스 현지 기자들이 우리를 많이 들어주었다. 프랑스 라디오방송에도 '직지'에 관련 이야기를 띄워주었고, 도서관에 단체로 전화해서 항의해주기도 했다.

프랑스 현지 기자들, 그리고 유럽에서 만난 학자들이 우리에게 협조적이고 열려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언제나 열린 채로 협조해줬고, 웃으면서 맞아줬는데 마치 '직지'가 말하는 것처럼 모두 하나라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들을 담은 분량은 로마에서 도난당했다.

그 외 유럽에서 만난 토마스라는 친구가 피렌체 어떤 도서관에서 중국이 금속활자로 돈을 찍어낸 흔적을 발견했다고 알렸다. 국내 학계에선 중국 측에서 동북공정 차원으로 악용할 것이라며 빼달라고 요청했지만, '직지'의 내용을 이번 다큐멘터리의 모토로 삼았기에 인류 공통의 문화유산 차원에서 공개했다. 만약 우리가 이 사실을 숨겼다면 우리 또한 프랑스 국립도서관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현재 '직지코드' 개봉관은 어떻게 되는가?
└ 28일 개봉 첫날에 40~60개로 시작하는 거로 알고 있고, 1주일 동안 관객들이 많이 봐준다면 더 늘어날 수 있다. 지난달 개봉했던 '노무현입니다'처럼, 사람들이 많이 찾아줬으면 좋겠다. 그동안 우리가 정치에 눈을 돌렸다면, 이제 문화계를 되짚어야 할 시기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직지코드'가 관객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국내 상영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직지코드가 담고 있는 메시지 등을 보았을 때 해외 상영도 필요한 것 같다. 해외 상영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 현재 영국 이스트 아시아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되었다. 촬영 중에 영국 학자들을 만나 유럽 중심주의에 대해 열띤 토론도 했었는데, 이게 좋은 영향을 끼쳐 영국에 초청받은 것 같다. 영국에서도 '직지코드'에 관심이 있으며, 이를 기점으로 세계 각국에 퍼져 이 이슈를 놓고 지속적인 토론이 이뤄진다면, 더 좋은 효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Dancing with Jikji'라고 해외판 제목을 정한 이유를 말하자면, 상반된 입장으로 토론했지만, 촬영이 끝나면 이해관계 등을 잠시 접어두고 마지막에 모두 흔쾌히 춤추는 데 응해줬기 때문이었다. '직지'가 말하는 '차별 없는 참사랑'의 순간이었고, 함께 춤을 추며 인류 공통 코드인 문화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전 세계에도 많이 퍼져 세계사에 대해서도 모두가 함께 써나가는 발판이 되었으면 한다.

프랑스도 해외수출 하는지?
└ 물론이다. 프랑스 기관만 우리를 냉대했을 뿐이지 우리가 만났던 프랑스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극 중 등장했던 프랑스 남성 두 명은 "우리가 구텐베르크로 배워서 그런 것이지, 만약 '직지'가 더 빠르게 등장한 것이라면 기꺼이 수용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가장 처음에 나왔던 프랑스 소녀 또한 우리와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등 적극적이었다.

끝으로 앞으로 당신의 계획은?
└ 처음에 쓴다고 말했던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직지' 후속편 또한 어렴풋이 계획하고 있는데, 아마 그때는 유럽이 아닌 중국이나 러시아로 향할 것이다.

한편, '직지코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고려 시대 세계 최초 금속활자본 '직지'와 서양의 최초 금속활자를 개발한 구텐베르크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데이빗(데이빗 레드먼)'과 제작진이 프랑스부터 바티칸까지 총 5개국 7개 도시 횡단을 통해 완성된 다큐멘터리 영화다.

 

syrano@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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