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윤소희, 오다애, 김의환, 이현순 배우가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불친절하다'라는 말에 감사드리고, 원하는 답이었다."

14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열리는 극단 '테아터라움 철학하는 몸' 연극,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Capital01'의 대표이자 상임연출인 임형진 연출은 작품에 함유된 다양한 주제와 장면이 관객에게 '불친절하다'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 2015년, 몸의 감각을 회복하고 사유하는 연극을 지향하는 연극 공동체로 만들어진 극단 '테아터리움 철학하는 몸'은 포스트드라마와 다큐멘터리 연극을 추구한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Capital01'은 지난해 8월 브레히트의 학습극 두 작품 '대서양 비행횡단',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을 각색해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로 첫 공연을 올린 이후 두 번째 올리는 작품이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은 서사극을 만들어낸 브레히트가 1939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이야기의 배경은 독일의 종교전쟁인 17세기 '30년 전쟁'을 담았다. 그러나 작품에서 '30년 전쟁'의 기원과 역사적 의미보다, 브레히트는 전쟁터의 군인들을 따라다니며 물건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어머니의 인생과 주변의 아이러니를 중요하게 다뤘다. 21세기 현재 우리 주변의 삶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임형진 연출을 보여주고자 한다.

임형진 연출은 이번 작품의 원제목 뒤에 'Capital01'이라는 타이틀을 추가로 붙였다. 'Capital'은 자본주의의 모순,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폐단을 이야기하고자 함이며, '01'이라는 숫자는 극단이 브레히트와 포스트드라마의 시리즈를 지속해서 제작할 계획이라는 장기적 포석을 담았다. 13일 오후 열린 프레스콜 기자간담회엔 임형진 연출을 비롯해 '억척어멈' 역의 이현순, '카트린' 역의 오다애, '이베트'·'농부 부인' 역의 윤소희, '아일립'·'슈바이처카스'·'젊은 농부' 역의 김의환 배우가 참석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 임형진 연출이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

작품에 한 가지 정답을 주지 않으며, 다채로운 소재를 담았다. 이에 대해 관객이 불친절하다는 평을 남길 수 있어 보인다. 그러한 설정을 보여준 이유는?
ㄴ 임형진 : "불친절하다"라는 말에 감사드리고, 원하는 답이었다. 연출과 배우가 친절하게 꼭꼭 씹어서, 소화까지 다 해주는 연극이 많다. 내가 생각하는 연극은 수용자가 참여해서 실제로 자기화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봤다. 직접 음식을 씹고 음미하고, 영양분으로 넘어가길 원했다. 이번 연극도 불친절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는데, 그 자체가 불친절할 수 있다. 족집게 과외가 유행인데, 과정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런데 답을 찾기는 어렵다. 훌륭한 연출가, 철학가, 사회운동가도 그 길을 걸었다. 무언가 정답을 내리기는 쉽지 않는데, 나는 그 무언가를 제시하려 했다. 연극이 어떤 재미나 일상의 고단함을 풀어주는 유희적 연극이 아니라, 자기가 누구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연극을 보는 사회적 연극을 주려 했다. 누구나 세상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지만, 연극을 보고 '세상은 장밋빛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알게 하는 최초의 시작점을 주는 것이 내 역할이다. 그 시작점 이후는 내가 할 수 없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바뀐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ㄴ 김의환 : 연극을 하면서 내 자신도 관객이라 생각했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다는 게 쉽지 않다. 나 역시 다른 분들의 생각을 통해 생각이 바뀌게 됐다. 또래 친구들과만 있다 보니 그 생각만 바르다고 봤지만, 여기 다양한 나이의 분들과 만나서 '아, 그렇구나'라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덕분에 아버지와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평소 '또라이'들이 예술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불법,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되지만 무언가 규율에 벗어나는 행동하는 사람이 예술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식 자리에서 연출님이 "깨끗해야 한다고 했다. 올바르고, 정직해야 한다"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처음에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인제야 '또라이'보다는 '올바른 또라이'가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다.

▲ 김의환 배우가 한 장면을 시연하고 있다.

윤소희 : 나는 생각이 바뀐 점이 있다고, 지금 당장 말하기 힘들다. 첫 공연이 시작되지 않았다. 준비하고, 공연하고, 정리하고, 끝내는 과정이 많이 남았다. 공연 마지막 즈음엔 내가 어떤 부분이 바뀌었고, 말로 표현할 정도까지 나올 것 같다. 확실한 것은 연출님과의 인터뷰 중 생각의 정리가 된 부분이 있다. 내가 마주한 부분이 있는데, 내 삶에서 많은 상처를 받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현순 : 나는 연극 일이 좋아서 연극배우를 하게 됐다. 계속하고 있는 일이 여타 일과 다르게 고민도 매번 해야 해서 쉽지 않다. 그 재미로 또 다음 작품을 하게 된다. 작품을 만날 때, 내용도 다르지만 만나는 사람도 다르다. 개인적으로 이 인물을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공연이 정식으로 내일(14일) 올라가는데, 아주 즐거워졌다. 어려운 점이 많았지만, 누구의 탓이 아니라 내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씩 만들어가며, 어떠한 역할을 쉽게 만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젊은 친구들도 만나는데, 거의 내가 두 배 나이가 넘어가는 친구들이라 조심스러웠다. 나 자신에 대한 염려도 있었다. 잘 섞이고 싶었는데, 그것은 성공한 것 같다. 좋은 시간이었다.

오다애 : 연극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나는 꾸미기를 좋아하고 겉모습에 신경을 썼던 사람 같다. 배우다 보니 예뻐 보이고 싶었고, 내면보다 외면을 보게 됐다. 연출님과 작년에 '동의에 관한 바덴의 학습극-무엇이 당신을 소진시키는가?'를 공연했는데, 그 기점으로 생각이 바뀌었다. 

예를 들어, 연극이라는 것이 삶과도 일치되어 있고, 그렇다면 내 삶이 어떤가를 되돌아볼 수 있게 된다. 연극은 사회와 정치, 문화 등 다방면을 아우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180도라고 하기엔 과하지만, 그 정도로 내 삶이 달라진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이 연극을 통해 나도 느끼는 것 많았고, 관객분들도 조금이나마 생각이 달라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지점만 나오더라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하고 있다.

▲ 오다애 배우가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 다큐멘터리 형식을 넣은 의도는 무엇인가? 그리고 출연 배우들의 어떤 내용을 보여주고 싶었나?
ㄴ 임형진 : 브레히트의 작품을 분석하니 엑기스처럼 나오게 됐다.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 구조가 있는데, 한국에서는 전쟁극 자체로 관심을 보였고 인물 간의 관계 정도에 집중했다. '30년 전쟁'을 공부하니 복잡했다. 30년 전쟁은 종교 전쟁이 아니라, 이권 다툼과 먹고 사는 문제로 일어났다. 용병도 돈을 더 많이 주는 편을 따라갔다. 요즘의 '알바 부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연극은 진보라고 해서 정치성을 띄는 것보다 방향성이 있다고 봤다. 무언가 고수하기보다 새로운 것을 따라가는 것이 예술의 생리이자 원형이라고 본다. 연극은 예술 자체로만 존재할 수 있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나, 배우, 관객의 일상과 연관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다큐멘터리 방법을 사용했다. 어떠한 현상의 울림을 통해 논리보다 개인적인 감각을 일깨우려 했다. 자칫 구시대의 운동 혹은 정치적인 해석으로 생각하지 않고 새로운 감각의 저항이 필요하다고 봤다. 연극은 저항 자체라고 생각해 이번 작업을 하게 됐다.

일반적으로 연극 작업 방식은 텍스트를 먼저 주며, 배우가 인물 분석을 한다. 그런 작업을 하면서 어떤 배우가 연출을 넘어서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연출자가 독재자 기질이 있는데, 밀어붙이면서 때로 합리적인 설명을 하는 분도 있다. 하지만 연출이 분석한 상태에서 배우가 인물로 파고들어 가는 틈이 간혹 있어서, 이론적으로 연출을 넘어서는 분이 계시긴 한다.

하지만 나는 먼저 배우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술 대신 커피나 과일을 먹으며, 충분히 이야기해서 이 배우가 어떤 사람이고 생각이 무엇인가를 듣게 됐다. 사상검증이 아니라, 이야기하면서 공통점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려 했다. 텍스트를 달라고 해서, 나중에 드릴 테니 대신 원작만 읽어달라고 했다. 그것만 파악을 하다 보면 나랑 일할 수 있는 내용이 훨씬 줄어든다고 말했다. 그래서 개인의 이야기만 주야장천 했다. 그런데 다 돈 문제로 귀결됐다.

▲ 윤소희(왼쪽), 이현순(오른쪽) 배우가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연극을 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도 돈 문제이고, 결혼하고 싶어도 책임 문제를 이야기하니 또 돈 문제가 걸려 있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못해 영화에 출연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에피소드를 자꾸 이야기하게 됐고, 그중에서 고르게 됐다. 그리고 본인의 이야기가 이 작품에 출연하는 인물과도 연관된 이야기다. 

예를 들어, '카트린' 역의 오다애 배우의 신발 이야기는 모두 진짜다. 윤소희 배우와도 결혼과 관련한 개인적 이야기를 테이블 작업을 통해 굉장히 많이 했다. '억척 어멈' 역의 이현순 배우 사연도 모두 진짜다.

김의환 배우 사연도 엄청 많았다. 그 이야기를 전통적 연극으로 하면 10편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아버지와의 사연도 연습하다가 나온 것인데, 서먹서먹한 부자지간의 감정을 노래를 통해서 이야기하게 됐다. 심지어 노래도 빌리 조엘의 'Honesty'(정직함)였다. 물론, 내가 어떤 소재가 있어서 바로 가져가겠다고 하진 않았다. 모두 개인의 이야기가 공개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동의를 얻은 후에 가져온 것이다.

윤소희 : 직접 저희에게 개인적 이야기를 대본으로 써 보라는 기회를 주셨다.

임형진 : 윤소희 배우의 '이베트'는 창녀 역할이어서, 이 작품에선 한 번도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 않는다. 부수적인 인물인데, 이 작품을 연출하면서 여성의 이야기를 주로 하면서 남성의 비중을 다 없애고 싶었다. 그 대신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상징이 있는 목소리를 넣게 됐다. 남자 중 버릴 수 없는 캐릭터는 '억척어멈'의 두 아들('아일립', '슈바이처카스')과 '젊은 농부'였는데, 한 명이 연기하는 것으로 바꿨다. 하지만 기본적인 토대는 같다. 원작 대사까지 유지하려 했고, 살짝 관점만 바꿔 진행했다.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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