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매년 6월이면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 등의 성소수자들의 '자긍심(pride)'을 높이기 위한 퍼레이드가 열린다. 이 퍼레이드는 '프라이드 퍼레이드(Pride parade)' 혹은 '퀴어 퍼레이드(Queer parade)'라고 불린다.

이들이 자기 자신을 향한 '자긍심'을 주창하기 위한 열렬한 행진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극 '프라이드'는 그것에 대한 이유를 1958년과 2015년의 게이 커플의 모습을 그리며 얘기해준다.

   
 

연극 '프라이드'는 1958년과 2015년의 필립과 올리버 커플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게이'라는 존재들을 고민하게 만든다. 게이를 인식하는 방식과 시선이 많이 달라진 만큼 게이들의 고민도 많이 달라졌다. 1958년의 올리버와 필립은 아주 근본적인 고민에서부터 갈등을 일으킨다. 자신이 게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실비아와 결혼한 필립은 남성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쉽사리 인정할 수 없고, 동화작가인 올리버는 자신이 게이임을 인정하지만 그것을 세상에 드러낼 수는 없다. 그러나 2015년의 필립은 올리버의 바람기 때문에 맘고생을 한다. 2015년이라고 해서 여전히 게이들을 향한 모든 시선이 고울 수만은 없지만, 이들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박해하던 사회적 시선이 사라지자, 이들은 여느 연인들처럼 서로에 대한 '신뢰'에 대한 문제로 이 관계의 갈등을 경험하게 된다.

   
 

1958년과 2015년. 이 시대간 흐름에서 가장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바로 실비아다. 그녀는 '행복했기' 때문이다. 필립이 자신의 사랑을 솔직하게 인정할 수 있는 2015년에 와서야, 드디어 그녀는 비로소 행복해졌기 때문이다. 필립을 사랑하는 실비아는 필립과 절대 이루어질 수 없다. 필립은 동성에게서 사랑을 느끼는, 정확히 말하자면 올리버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필립이 그 사실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 실비아는 행복의 당락이 결정됐다. 1958년의 실비아는 필립의 침묵이 자신을 기만하고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올리버, 나는 텅 비어 있어요. 난 결혼했고 남편도 있는데 무거운 이불을 덮고 있는 것 같아요. 어둡고 무겁고 숨이 턱턱 막혀요." 필립의 행복한 미소, 그것은 실비아가 절대 볼 수 없는 것이었고, 올리버와 함께 있는 필립에게서만 발견될 수 있는 것이었다. 실비아는 비참할 뿐 아니라 불행했다. 필립이 나를 사랑하는 척하는 것이 비참하기도 했지만, 너무도 사랑하는 그가 스스로 불행해지기를 선택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멀리서 속삭일게요.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괜찮아요. 다 괜찮을 거예요."

실비아는 자신의 감옥 안에 사는 필립에게 속삭인다. 다 괜찮다고, 모두 괜찮아질 거라고 말이다. 필립을 향한 위로의 메시지는 수많은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들을 뛰어넘어 모든 사람에게 이르고 있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했다. 필립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조차 위선으로 가장하고 있는,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지 않을까.

   
 

"그냥 둬 보자.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2015년을 살아가는 필립의 대사다. 해피엔딩과 새드엔딩, 그것은 오로지 작가 혼자만의 '엔딩'이었던 것은 아닐까. 그 이야기를 직접 살아가고 있는, 자신만의 역사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은, 자신의 삶이 계속 허락되는 한, 이 엔딩을 뛰어넘는 또 다른 에피소드들을 무수히 만나게 될 것임이 분명했다. 필립과 올리버, 그리고 실비아. 이들이 모두 온전히 자기 자신일 수 있는 세상을 응원한다. 그러나 그 세상은 반드시 우리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오롯한 모습을 당당히 인정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겠다.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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