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 '프라이드'는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지만, '나는 누구인가'란 보편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작품을 통해 소수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으면 좋겠다"

1958년과 2015년이 교차하며 그려지는 연극 '프라이드'는 성 소수자들이 사회적 분위기와 억압, 갈등 속에서 사랑과 용기, 포용과 수용 그리고 자신을 지지해 주는 이들과의 관계를 통해 정체성과 자긍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성 소수자'란 특정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지만, 관객들에게 '나는 누구인가?'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먹먹한 울림을 선사한다.

지난 12일 오후 연극 '프라이드' 프레스콜이 공연이 진행되고 있는 대학로 수현재씨어터에서 진행됐다. 간단한 작품 설명으로 시작된 프레스콜은 공연 하이라이트 시연과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프레스콜엔 김동연 연출, 지이선 각색가, 배수빈, 강필석, 정동화, 박성훈, 임강희, 이진희, 이원, 양승리 배우가 참석했다

   
▲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 프라이드 퍼레이드를 즐기는 2015년의 올리버, 실비아, 필립. (왼쪽부터) 정동화, 임강희, 배수빈

초연과 비교해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ㄴ 김동연 연출 : 특별히 작품을 바꾸려고 하진 않았다. 대본을 아주 조금 줄여서 공연 시간이 3시간을 넘지 않게 한 노력 정도. 새로운 배우들과 작업 하다 보니 배우들의 연기적인 아이디어에 따라 바뀐 디테일들은 있다.

배우들이 모두 바뀌었다.
ㄴ 김동연 연출 : 배우들을 캐스팅하는데 많은 고심을 했다. 작품에 얼마나 잘 어울리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올리버는 연기로만 해결되지 않는 매력이 있는데 그걸 가졌는지, 실비아는 우아함과 털털함 두 가지 양면을 모두 가졌는지, 필립은 고전적인 섹시함과 벤츠남의 매력을 가졌는지. 멀티도 다른 세 가지 역을 소화할 수 있느냐를 기준으로 뒀고, 여기 계신 분들이 합격점을 받은 배우들이다. (웃음)

초연 당시 섬세한 대사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ㄴ 지이선 각색가 : 원작 대사가 워낙 좋다. 번역 작품이기 때문에 수정 작업을 하면서 존댓말이 가장 난처했다. 한국 관객에게 조금 더 잘 전달하기 위해 어느 장면에서 어떤 식으로 존대해야 할지 많이 생각했다. 대사를 7, 80% 정도 손본 것 같다. 또, 서정적이고 시적인 언어들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특히 실비아 대사에 조금 더 힘을 줬다.

   
▲ 같은 이름을 가진 세 사람이지만 그들의 삶과 사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왼쪽부터) 박성훈, 강필석, 이진희

2년 만에 연극 무대에 올랐는데 '프라이드'를 선택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ㄴ 배수빈 : 무대에 너무 서고 싶었다. 타 매체에서 에너지가 고갈되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관객들을 마주하다 보면 항상 에너지가 다시 차오르는 느낌이 들어서 무대를 찾게 되는 것 같다.

사실 '프라이드'란 작품을 잘 몰랐었는데, 안 했으면 어쩔 뻔 했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은 작품이다. 성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어서 관객분들이 보시는데 큰 부담은 없을 거로 생각한다. 연기하면서 부담을 느낀 건 사실이지만 저도 다수와 소수의 위치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작품이 더 매력적인 것 같고, 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웃음)

영화나 드라마보다 연극에서 특히 주력하는 부분이 있는지.
ㄴ 배수빈 : 연기는 다 똑같은 것 같다.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정서를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다만 연극은 배우들과 굉장히 끈끈해질 수 있다. 긴 연습 기간 다 같이 밥 먹고 대화하고 엠티도 가면서 극의 밀도가 점점 더 쫀쫀해진다. 드라마나 영화는 외롭단 생각이 드는 시기가 많은데 연극은 서로가 기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서 더 하고 싶은 것 같다. 정서를 전달하는 것에 있어서는 똑같다고 생각한다. 정말 참 잘한 것 같다. (웃음)

작품이 성 소수자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ㄴ 정동화 : 배수빈 배우의 말처럼 어느 환경, 어느 상황에서든 소수는 있기 마련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작품이 '프라이드'다. 저도 다수일 때도 있지만, 소수일 때 목소리가 작아지거나 내뱉지 못하는 상황들이 있다. 공연을 보는 모든 관객분이 공감하실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작품을 통해 그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셨으면 좋겠다.

   
▲ '프라이드'는 다양한 목소리로 각자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들의 이야기는 때론 슬프고 때론 아름답다.

프라이드에서 실비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ㄴ 이진희 : 개인적으로 실비아에게 닿을 때까지 노력하는 중이다. 처음 대본을 봤을 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멋진 여자라고 생각했다. 실비아는 진심으로 필립이 원하는 것을 찾길 바란다. 그래야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다른 것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했을 때 본인도 행복해하는 멋진 여자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프라이드'에서 중요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그와 관련된 대사들이 많아서 그 대사가 잘 전달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ㄴ 임강희 : 실비아란 여자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연습 마지막까지 올리버와 필립을 굉장히 사랑하는 감정보다도 실비아의 개인적인 입장과 많이 싸웠다. 실비아와 닿는 게 굉장히 어려웠는데, 오히려 공연하면서 이 여자가 이러한 것들을 거쳐서 필립과 올리버를 진정으로 사랑했구나를 알게 됐다. 이제야 깨닫고 더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상대 배우와 케미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한 게 있다면 말해달라.
ㄴ 강필석 : 대화를 굉장히 많이 했다. 동성애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하는 것들은 있지 않은가. 이태원이나 프라이드 퍼레이드에 가서 그들의 모습을 직접 보고 어떤 방식인지 체험해봤다. 결국 남녀의 사랑과 본질은 똑같다고 생각해서 올리버 두 분을 굉장히 사랑하려 노력하고 있다.

1막 5장에 민망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 장면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미뤄둔 숙제처럼 여겼었는데, 정작 필립의 감정에 몰입해서 공연할 때는 그 장면이 너무나 쉽게 풀렸다. 올리버를 마음으로 사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ㄴ 박성훈 : 케미를 위해 따로 노력한 건 없다. 분석이나 대화를 많이 하고 체험도 해봤는데 결국 중요한 건 마음인 것 같다. 서로 상대에게 집중하고 더 사랑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기보다 상대방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했다.

ㄴ 배수빈 : 커피를 많이 사줬다. (웃음) 힘들어하는 것 같으면 챙겨주고 했는데, 의외로 필립이 좋아지고 있다. (웃음) 아무래도 같은 배역을 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강필석 배우와 비슷하다. 힘든 것도 같고 문제도 같은 곳에 봉착해서 서로를 다독거리다 보니 필립이 좋아졌다. 무대에 함께 오르는 일이 없어서 참 애석하다.

올리버를 연기하는 두 배우 덕분에 색다른 재미가 있다. 매일매일 다른 연인을 만나는 느낌이다. 워낙에 차이점이 많은 배우라 무대에 오를 때마다 오늘은 어떤 모습으로 마주하게 될까 기대하게 된다. 그날의 몸 상태, 정서 상태에 따라 공연이 달라지기 때문에 매 공연이 조금씩 다르다. 이게 공연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 앞으로도 더 돈독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를 지원할 예정이다. (웃음)

ㄴ 정동화 : 이전에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을 했었다. 어떻게 보면 여배우보다 더 몰입이 잘 된다. 배역 이외에 자연인으로서 강필석, 배수빈을 바라보고 그 사람들의 기본적인 기질과 성품들을 알게 되면 무대 위에서 생각하는 1차원적인 사랑 말고 고차원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 여배우보다 남자 배우들한테 더 그런 것 같다. 평상시에도 장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장점을 발견하면 새로운 매력을 느끼고 사랑에 깊이가 생긴다.

ㄴ 배수빈 : 그런데 실제로 만나면 주로 육아 이야기만 한다. (웃음)

   
▲ 작품은 특별한 암전 없이도 1958년과 2015년이 교차한다.

남자 역할이 웃음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대사에 묵직한 메시지가 있다.
ㄴ 이원 : 희극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 자체가 편견이라고 생각한다. 초연 당시 같은 역을 했던 최대훈, 김종구 배우한테 들었던 이야기가 자신이 등장만 해도 관객분들이 웃는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대사를 살펴보면 그 사람이 직업을 갖기까지,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수많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걸 잘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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