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 싫어하는 투지 바탕으로 큰 무대 '도전장'

▲ 대구 모처에서 만난 배지환. 최근 메이저리그 진출을 선언한 그를 본지 스포테인먼트팀에서 만났다. 현지에서 애틀랜타행 보도가 나온 이후 본지에서 최초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사진ⓒ김현희 기자

[문화뉴스 MHN 김현희 기자] 지난 11일, 서울 소공동 '웨스틴 조선호텔 서울' 그랜드불룸에서는 내년 시즌 신인으로 활약하게 될 선수들을 뽑는, '2018 제2차 신인지명 회의(이하 드래프트)'가 열렸다. 그런데, 드래프트를 불과 3시간 앞두고 KBO로부터 긴급한 연락이 접수됐다. 그것은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를 마친 한 유망주가 결승전 이후 미국 진출을 선언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소식에 현장에 도착해 있던 전 구단 스카우트 팀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투수 강세인 이번 드래프트에서 그를 무조건 1라운드에서 뽑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선 구단도 있었다. 그만큼 아쉬움을 표하는 이들이 많았다.

발표 시기에 문제는 있었지만, 의외로 여론은 '발표 시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보다 그 유망주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는 메시지가 많았다. 그러는 한편, 척박한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격려 또한 아끼지 않았다. 바로 그 유망주가 청소년 대표팀 부동의 1번 타자이자 유격수로 활약했던 배지환(18, 경북고 3)이다. 발 빠르고, 방망이 중심에 맞추는 재주도 빼어나면서 수비력도 좋아 일찌감치 동문 선배인 김상수(삼성)와 비교되곤 했다. 일부에서는 "김상수의 경북고 3학년 시절보다 낫다."라며, 그의 1라운드 지명을 당연시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찍이 남윤성(SK)이 신일고 졸업 이후 두산 1차 지명을 뒤로 하고 텍사스에 입단했던 것처럼, 배지환 역시 스스로 도전을 선택했다.

본지 스포테인먼트 팀은 주말리그를 비롯, 각종 전국 대회에서 그의 투지 있는 모습을 지켜봤으며, 특히 이번 그의 미국 진출 소식을 가장 먼저 단독 보도하면서 근황을 예의 주시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행선지와 관련된 뉴스가 미국 현지 지역 언론지에서 보도되면서 계약이 구체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달됐다. 이 시점에서 그를 직접 만나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본지에서는 금일(15일) 저녁, 대구 모처에서 그를 만나 이제껏 경험했던 야구 인생과 메이저리그 도전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캐나다 청소년 대회 이후 근황, 그리고 미국 진출에 대한 고민

Q) 청소년 대표팀 출국 취재 이후 꽤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대회 이후 정말 정신없이 보냈을 것 같은데, 드래프트 이후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배지환(이하 '배') : 인천공항으로 귀국할 때 많은 기자님들이 오셨다. 그래서 공항에서 따로 인터뷰도 하는 시간을 가졌다(주 : 귀국 당시에는 애틀랜타와의 계약이 현지에서 발표되지 않았던 시점이었다). 그리고 이후 아직 계약이 100%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니, 미비된 점을 더 보완했다. 대략 9월 4번째 주에 애틀랜타로 출국하게 되는데, 그 전까지는 계약 사실이 발표될 것으로 보인다.

Q) 사실 미국 진출과 관련해서는 세계 대회 이전, 본 기자와 살짝 이야기를 한 일이 있었다. 그때는 미국행에 대한 확신이 없던 것인가?

배 :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그 당시에는 반반이었다. 그때는 기자님을 포함하여, 주변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털어 놓았을 때였다. 말리시는 분들과 내 선택을 존중해주시겠다는 분들이 반반이었다.

※ 청소년 대회 전, 당시 본 기자는 배지환의 미국 진출과 관련된 고민을 들은 바 있었다. 필자는 박효준(뉴욕 양키스)을 비롯하여 이학주(전 템파베이 레이스) 등의 사례를 언급하며, 정말 어려운 도전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기도 했다. 이 고민은 캐나다 선더베이에 도착해서도 계속되었다.

Q) 국내 프로야구 2~3개 구단은 이미 배지환을 1라운드에서 지명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국내에 남아 있었어도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는데?

배 : 그것 때문에 상당히 고민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배워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지금 아니면 언제 가보겠나?' 싶다는 생각에 '후회가 적게 남는 쪽'을 선택한 셈이다.

Q) 어느 시점에 미국행에 대한 확신이 들었는가?

배 : 갈팡질팡하다 이번 세계대회를 하면서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모여서 경기를 하니, 재미있었다. 그래서 여러 국적의 친구들과 야구하고 싶다는 결심이 점차 굳혀져 갔다.

Q) 이제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앞에서 고교야구 유망주들이 자신의 재주를 드러내 보이는 '쇼케이스'와 같은 공간이 됐다. 그래서 최강 전력을 구축한 미국을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직접 만나니 어떻던가?

배 : 확실히 신체 조건은 동양인보다 좋았다. 그리고 힘이 좋다. 파워 위주의 타격을 펼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의 장점을 살리면(빠른 발) 승산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Q) 오히려 겁나지 않던가? 저 친구들과 이제는 루키리그나 싱글 A에서 밥먹듯이 만나게 될 텐데?

배 : 그런데 내 생각은 또 달랐다. 잘하는 선수들을 상대하니, 야구가 더 재미있어졌다. 결국 이런 모든 사항들을 종합하다 보니, 미국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해지고, 또 확고해졌다.

Q) 청소년 대표팀 동료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본 기자도 여러 차례 밀착 취재를 했지만, 정말 팀 내 분위기는 좋았다.

배 : 그런데, 대표팀 분위기가 어수선해질까봐 미국으로 가겠다는 이야기를 안 했다. 결승전 끝나고 말하고 나니, 다들 '같이 프로야구에서 못 뛰게 되어서'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처음에는 왜 가냐고, 우리들이랑 같이 야구 하자고 했지만, 결국은 다들 응원해줬다. 그래서 나중에 성인 대표팀에서 이 친구들을 다시 만나고 싶다.

Q) 3학년 입장에서 본 2학년 듀오(김기훈, 서준원)는 어떻던가?

배 : 둘 모두 장난끼 많아서 붙임성도 좋았다. 결국 둘이 잘 뒷받침해 줘서 준우승이 가능했다고 본다. 내년에 분명 더 잘 할 것 같다. 둘 다 겸손한 태도를 잃지만 않는다면, 1차 지명도 가능할 것 같다.

▲ 청소년 대표팀 합숙 당시 김성훈 마산용마고 감독으로부터 타격 지도를 받는 배지환. 사진ⓒ김현희 기자

배지환의 야구 인생, 그 첫 걸음!

Q) 미국 얘기는 이따 좀 더 해 보기로 하고, 잠시 옛날 이야기를 해 보자. 야구는 언제 시작했는가?

배 :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는 그저 취미로 했다. 그러다가 본리 초등학교로 전학을 가면서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야구를 할 때 조건을 거셨다. 반드시 공부를 병행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말로 대구중학교 3학년 때까지는 그렇게 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중학교 때에는 나름 성적이 상위권이었다(웃음).

Q) 지인들의 SNS를 통하여 우연찮게 배지환 본인의 초등학교 시절 사진을 본 일이 있었다. 그때도 참 지기 싫어하는 모습이 얼굴에 묻어났던 것 같다.

배 : 얼굴에 '투지'라고 씌여져 있지 않던가?(웃음).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고, 지기 싫어했다. 당시 아마 동메달을 땄었을거다. 동메달도 대단한 것이라며 칭찬을 받았지만, 정작 나는 더 잘 할 수 있었다는 후회감에 스스로에게 화가 많이 났던 것 같다.

Q) 대구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됐다.

배 : 박상길 감독님께서 오라고 하셔서 주저 없이 가게 됐다. 그래도 우리 학교(경북고)가 대구에서 가장 전통이 있는 학교 아닌가. 그래서 더욱 망설임이 없었다. 1, 2학년 때 2루수를 보다가 올해부터 유격수를 봤다.

Q) 유격수가 지닌 매력이 무엇이라 보는가?

배 : 가장 타구가 많이 오니, 이것을 아웃 처리하는 쾌감이 상당히 크다. 특히, 어려운 타구를 처리할 때 드는 쾌감은 상상 이상이다.

다시 메이저리그, 그리고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Q) 이제 다시 미국 얘기를 더 해 보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가게 된 소감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배 : 애틀랜타는 우리나라와 전혀 무관한 도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예전 봉중근(LG 트윈스) 선배님도 마이너리그 때부터 몸담으셨고, 정진 코치(개명 전 정성기)님도 애틀랜타에서 뛰시지 않으셨는가. 더 다행인 것은 LA처럼 교포가 많아 많이 안정될 것 같다는 점이다. 또한, 다행히 마이너리그 팀들도 같은 주(州)에 있다고 한다. 승격이 되어도 이동 거리가 짧아진다는 점도 좋은 것 같다. 그래서 여러모로 감사하다. 사실, 애틀랜타 스카우트 팀에서 1학년 협회장기 출장했을 때부터 나를 지켜보셨다고 한다. 오랜 기간 관심을 가져 오셨기 때문에, 그래서 더 결심을 굳히게 된 것 같다.

Q) 귀국 인터뷰에서 '성공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겠다.'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배 : 정말이다. 될 때까지 해 볼 생각이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내 스스로 힘에 겨워서 돌아오지 않겠다는 점이다.

※ 스스로 힘에 겨워 돌아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배지환의 이야기에 필자는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이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뉴욕 양키스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뛰고 있는 최지만이 그 주인공. 그 역시 동산고 시절, 성공하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고, 그 다짐대로 현재까지 미국에서 야구를 하고 있다. 결국 미국 진출의 성공 유무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데에 있다.

Q) 그러고 보니, 미국 동부와 중부에 유난히 한국인 마이너리거들이 몰려 있다. 뉴욕 양키스의 최지만(AAA)과 박효준(A), 시카고 컵스의 권광민(R) 등이 그러하다. 충분히 상대 팀으로 만날 수 있다.

배 : 하지만, 타국에서 같은 국적의 선배님들을 만난다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선배님들로부터 어떻게 사는지 배우고, 또 많은 조언을 구하고 싶다.

Q) 생각해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이 언어 문제다. 언어 때문에, 본인이 잘못하지 않아도 벌금을 부과 받는 경우도 분명 있다.

배 : 영어는 중학교 때 배웠던 기본이 있어서 어느 정도 할 줄은 아는데, 완벽하게 구사할 줄은 모른다. 그래서 사실 올해 초부터 '시원스쿨'로 꾸준히 공부하고 있었다. 들리는 것은 아직 미숙하나, 말하는 것은 어느 정도 된다.

Q) 이왕 태평양을 건넜으나, 빅리거라는 큰 꿈을 꿔야 하지 않겠는가?

배 : (고개를 끄덕이며) 3~4년 내에 메이저리그 그라운드에 서고 싶다. 지금 주전 멤버들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또 작년에 입단한 케빈 마이탄(17)과의 경쟁에서 이기고 싶다.

※ 사실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배지환을 영입하기 전, 지난해 베네수엘라 출신의 16살 유망주, 케빈 마이탄(Kevin Maitan)을 425만 달러에 영입했다. 186cm, 74kg의 체격 조건을 갖추고 있으며, 본 포지션은 배지환과 같은 유격수다. 줄곧 애틀랜타 프랜차이즈 스타인 '치퍼 존스'와 비교되곤 했다. 이에 애틀랜타 지역 언론지인 AJC의 오브라이언 기자는 '배지환의 영입으로 마이탄의 수비 위치가 3루수나 1루수로 변경될 수 있다.'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Q) 개인적으로 올해 배지환 최고의 인생 게임을 뽑는다면?

배 : 청룡기 경주고전에서 나왔던 끝내기 3점 홈런, 이 경기가 정말 인생 경기였다. 초, 중, 고등학교롤 거쳐 생애 첫 홈런이었으니, 당연히 아직까지 기억이 생생하다. 사실, 올해 초부터 체격이 제법 커져서 장타 욕심을 내 봤는데, 그래도 장타가 잘 안 나오더라. 그러다가 중요한 순간에 나왔다. 생각해 보니, 장타를 노렸다고는 해도 정작 스윙은 1년 내내 똑같았던 것 같다(웃음).

Q) 대구에 내려오기 전, 일부 야구팬들의 질문을 받았다. 올해 전국체전 참가가 가능한지 여부다. 어떠한가?

배 : 미국에 가서 10월 22일 언저리에 돌아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0월 22일에 첫 경기를 펼친다고 한다. 만약에 그 전에 귀국하면, 첫 경기부터 뛸 수 있다.

Q) 미국으로 가는 데 감사 인사를 해 줘야 할 분들이 많을 것 같다.

배 : 박상길 감독님을 비롯하여 미국행을 지지해 주신 경북고 동문 관계자 분들과 부모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또한, 마이너리그 생활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신다고 하신 애틀랜타 관계자 분들께도 모두 감사드리고 싶다.

Q) 마지막 질문이다. 배지환에게 야구란 무엇인가?

배 : 내 전부다. 8년 동안 나를 지탱해 준 존재다. 그래서 더 오래 하고 싶고, 이왕이면 야구로 미국에서 성공한 이후 금의환향하고 싶다.

▲ 후배 배성렬(사진 우)과 함께 한 배지환. 공교롭게도 경북고는 '배씨 성'을 지닌 3학년 3명(배지환, 배현호, 배창현)이 모두 프로행을 결정지었고, 내년에는 배성렬이 그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김현희 기자

※ 특별 코너 : 나의 아들, 배지환에게 보내는 메시지

처음 야구를 시작할 때 공부하는 조건으로 시킨다고 했고, 그 약속을 지키고자 초/중학교 때에는 학교 학습 보장을 요구하고, 맞으면서 야구시키기는 싫다고 감독들에게 미리 이야기하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요구임에도 별난 학부모로 찍힌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환이도 마음고생 심하게 하면서 야구해왔는데, 다행히 아들은 그 모든 것을 잘 이겨 내고 한눈팔지 않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열심히 해 줬습니다.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국내에서 익숙한 환경에서 빨리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으나, 도전하는 아들의 결정을 존중해주고 싶습니다. 사실, 삶의 성공이라는 것은 부(富)도 아니고 명예도 아니라 자신이 느끼는 행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디서 야구를 하든, 하고 싶은 야구를 하면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합니다. 모두들 열심히 했지만, 더 일찍 야구를 그만두어야 할 친구들을 생각하면 같은 부모 마음으로 안타깝기도 하고, 그런면에서 보면 자기가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고, 새로운 세계로 도전할 수 있다면 자체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아들을 응원합니다. 아들 사랑한다.

※ 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정성스럽게 작성해 주신 배지환의 모친, 정태옥 원장님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동대구, eugenephil@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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