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옛날 옛적에. 순수함이 가득했을 그 시절, 어른에게 듣곤 했던 동화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동화에서 지겹도록 사용됐기 때문에 질릴 만도 하지만 여전히 그 뒤에 이어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렇다면 당신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어린이들이 아침잠을 포기하고 TV 앞에 앉도록 한 디즈니 시리즈 중 하나일 수도 있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구전동화일 수도 있다.

어느 이야기이건 전개는 비슷하다. 기승전결이 뚜렷한 서사 구조에 착한 사람은 상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 형태다. (벌을 받는다지만 나쁜 사람들이 반성하는 경우가 대다수니 결국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 맞는 경우가 다반수다.) 지금이야 동화를 읽으면 너무 뻔해서, 혹은 현실에선 불가능해서 소위 '오글'거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화를 내는가? 아니, 많은 사람이 조금은 오글거릴지라도 꾹 참고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리지 않을까.

어른이 되어서도 동화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라 동화(童話)로 다가오는 이유. 오글거린다고 치부하기엔 너무나 소중한 시절의 기억들이 담겨있어서다. 동화 속 주인공처럼 혹시 내가 공주·왕자는 아닐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하고, 역경을 극복하고 해피엔딩을 맞는 주인공을 보며 박수치기도 한 기억들. 나날이 팍팍해지는 현실 속에서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제품으로 자위하는 '키덜트(kidult)' 족이 증가하는 것도 이 같은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어른들을 위한 뮤지컬 한 편을 소개한다. 소녀들에게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캐릭터 중 하나이자, 환상의 마법으로 우리를 동화 속으로 이끌던 '신데렐라'다. 모두가 아는 동화를 바탕으로 작품은 캐릭터에 조금 변화를 줬다. 마냥 순종적이고 수동적인 신데렐라는 왕자가 자신을 찾도록 스스로 유리구두를 떨어트리고 올 만큼 진취적인 여성이며, 둘째 새언니는 신데렐라와 왕자의 사랑이 이루어지게 도와주는 조력자다. 익숙하면서 낯선 이야기 구성이 극에 매력을 더한다.

이러한 변화에도 뮤지컬 '신데렐라'는 어른이극과 아동극 중간쯤에 있는 작품이다. 원작이 동화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너무 뻔한 장면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작품을 보고 있으면 이렇게 되겠구나를 관객들이 미리 알아버린다. 결말도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데다 당연히 악역인 캐릭터가 어떻게 될지 예상돼 긴장감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다가 왕자가 신데렐라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내뱉는 "이 터져버릴 것 같은 심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와 같은 대사들은 손발을 가만히 두고 바라보기 힘든 부분이 있다.

하지만 앞서 말한 대로 오글거림을 참을 수 있는 이유. 극을 보는 내내 '엄마 미소'가 지어질 만큼 귀여운 캐릭터들 때문이다. 조금은 어설프지만 왕자님과의 사랑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신데렐라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왕자에서 당당한 왕의 재목으로 성장해가는 크리스토퍼 왕자를 보면 뿌듯함까지 느껴진다. 악역이지만 허당기가 있는 세바스찬과 계모도 미워할 수만은 없는 존재. 특히 당당한 혁명가면서 사랑하는 가브리엘 앞에서는 수줍어서 어쩔 줄 모르는 장 미쉘을 보는 재미도 상당하다. 운명 같은 사랑을 하는 신데렐라-왕자, 사랑을 자신들의 손으로 지킨 가브리엘-장 미쉘의 각기 다른 '꽁냥거림'에 미소 짓다 보면 어느새 러닝타임이 훅 지나가 있다.
 

   
 

"말도 안 돼 할 수 있어
꿈일 거야 꿈이 아냐
믿는다면 꿈꾼다면
할 수 있어

바보들이 꾸는 꿈들이 모여
말도 안 되는 일들이
기적처럼 매일매일 일어나"

뮤지컬 '신데렐라'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동화 속 마법을 구현한 장면이다. 무대 위에서 배우가 직접 연기해야 하는 뮤지컬 특성상 의상을 갈아입기 위해서는 잠시간의 퇴장이 필요하다. 등 퇴장이 반복되면 자연스레 이야기도 늘어지고 관객들의 집중도 깨지게 된다. 그래서 '신데렐라'는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옷을 갈아입는다. 마법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장 먼저 꾀죄죄한 거지에서 뭐든 할 수 있는 요정으로 변하는 마리.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았을 뿐인데 누더기가 어느새 예쁜 드레스로 변해있다. 어찌나 감쪽같은지 객석에서 환호와 박수가 나올 정도다. 하지만 역시 하이라이트는 신데렐라의 변신. 마리의 손짓에 신데렐라는 티아라를 쓰고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채 호박 마차에 오르게 된다. 머리와 의상 동시에 바꿔야 해 어떤 식으로 변신하는지 눈에 살짝 보이긴 하지만 동심의 마음으로 모른척하기로 하자.

마리 덕분에 무도회에 참석한 신데렐라. 여자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유리구두를 신은 채 왕자님과 만나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왈츠를 추게 된다. 이 장면은 별다른 무대 장치나 마법은 없지만 참 아름답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데렐라가 조명을 받으며,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미소를 띠고 왕자와 춤을 추는 왈츠씬은 가장 동화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배우들은 웃으며 계속 춤을 춰야 하고 심지어 왕자가 신데렐라를 들어 올리는 리프트 동작도 몇 차례 있어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 뮤지컬 '신데렐라' 배우 인터뷰

예쁜 드레스를 입고 왕자님과 사랑에 빠진단 말도 안 되는 꿈을 꾸던 신데렐라는 놀랍게도 그 꿈을 이루게 된다. 꿈을 꾸는 것조차 바보라며 시간 낭비하지 말란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요즘, '신데렐라'를 통해 꿈을 꿀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이 꿈이고, 그 꿈들이 모여 기적이 일어나는 게 바로 우리의 인생이지 않을까.

문화뉴스 전주연 기자 jy@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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