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계일주'는 1873년에 쥘 베른이 쓴 '80일간의 세계 일주' 소설처럼 지구 곳곳을 누비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영화 '세계일주'에 나오는 실제 이동 거리는 4호선 상록수역에서 3호선 홍제역까지 이른다. 영화에도 등장하지만 실제로 모 지도 사이트에서 검색을 해보니 32개 정거장, 46.8km 구간이다. 환승을 포함해서 1시간 27분이 걸린다. 반나절도 안 되는 시간에 왕복도 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 왜 이 여정이 '세계일주'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걸까?

아빠 '현배'(김정태)는 몇 년 전부터 아내를 하늘로 떠나보내게 한 뺑소니범을 찾기 위해 홍제역 부근의 아웃렛 앞에서 현수막을 거는 일을 계속한다. 그러다 보니 두 아이, 9살 누나 '지호'(박하영)와 7살 남동생 '선호'(구승현)는 집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현배'는 마치 '장발장'처럼 아이들을 위해 아웃렛에 있는 옷을 훔치다 걸린다. 평소 아웃렛 앞에서 현수막을 거는 것을 탐탁지 못하게 여긴 직원은 기회다 싶어 현배를 홍제역 근처 파출소로 보낸다.

이런 상황을 모르던 두 아이는 경찰서에서 온 전화에 놀라 아빠를 만나기 위해 머나먼 여정에 나서게 된다. 물론 어른들에겐 아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에겐 분명 '세계일주'같은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냥 상록수역에서 홍제역으로 바로 가면 영화가 시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작품은 여러 가지 장치를 등장시켜 긴장감을 유발한다.

   
 

출발부터 지호는 지갑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돈을 빌리기 위해 지호가 선택한 것은 마음에 있는 반 친구였지만, 자존심이 걸린 문제였기에 가는 방법만을 알고 간다. 어렵게 지하철을 타게 되지만, 동네 '초딩 일진'인 '상필'(성유빈)은 선호를 못살게 군다. 하지만 지호의 단호한 말에 오히려 상필은 첫 눈에 반하게 된다. 그래서 상필은 지호를 좋아하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선호의 가방을 가지고 지하철역에서 도망을 가게 된다. 결국, 남매는 대공원역에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치게 된다.

두 남매의 고난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남태령이라는 고개를 걸어서 넘어 사당에서 길거리 기타리스트 '필홍'(타이거JK)의 꼬드김에 의해 길거리 공연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근처 구멍가게에서 배고픔 때문에 소시지를 훔쳤지만, 오히려 굶고 다니지 말라고 떡국을 주는 주인 할머니를 만난다. 여기에 고속버스터미널에선 노숙자들에 의해 팔려갈 뻔한 위기를 당하기도 한다. 이런 고난의 여정을 통해 두 남매는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며 성장한다.

이 영화는 남매의 성장 이야기만을 담은 것이 아니다. 각박한 세상 속에 주위를 둘러보면 우리의 일상은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의도도 동반된다. 사회복지사는 자신의 책임이 크다는 생각에 계속해서 아이들을 찾으러 동분서주한다. 선호를 위해 아픈 이를 치료해주는 아저씨도 등장한다. '초딩 일진'인 상필 역시 지호를 지켜주기 위해 남매 곁에서 '병 주고 약 주고'를 선사한다. 이런 소소한 토막이야기를 통해 주변 사람들 역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이야기를 움직일 수 있게 한 어린이 배우들의 힘은 매우 컸다. 시사회 상영 후 실제 남매냐고 두 배우들이 질문을 받을 정도로 박하영과 구승현의 연기는 어른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특히 잠수교에서 남매가 서로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의 눈물 연기는 매우 인상 깊었다. 클라이막스에서 아이들의 눈물에 극장 안에 있는 어른들이 울기도 했다. 여기에 충무로의 감초 배우 김정태는 처음으로 가족영화를 도전해 철부지 아빠를 훌륭히 소화해냈다.

끝으로 어린아이의 눈높이에 맞춘 카메라 설정도 훌륭했다. 어린아이들의 키 정도에서 화면을 움직이는 장면이 많았는데, 덕분에 어른들이 지나갈 때 상체는 비치지 않았다. 이런 카메라 앵글들이 어린이들이 실제로 먼 길을 떠날 때 무서움을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한다. 여기에 하이 앵글로 아이들이 두려움에 떠는 장면을 보여줄 때도, 마치 어른들이 노려보는 시야에서 바라본 화면처럼 구성됐다.

   
 

3년 전에 촬영했고, 2013년 2월 개봉을 앞둔 상황에서 여러 사정에 인해 개봉 연기가 됐던 영화 '세계일주'. 시사회장에 무대 인사를 위해 올라온 어린이 배우들이 3년 사이에 훌쩍 커버린 모습을 보며 "2년 만에 이렇게 개봉을 하게 돼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한 이항배 감독의 말이 뇌리에 잊히지 않는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처럼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묻힐 뻔했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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