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양미르 기자] [문화 生] '남배우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 "피해자 고통주는 보도, 그만둬라" ② 에서 이어집니다.

"가해자의 인성은 관심 없다. 언론은 더 이상 소설을 쓰지 말라."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변호사회관빌딩 조영래홀에서 '남배우A 성폭력 사건 항소심 유죄 판결 환영'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번 기자회견은 여성영화인모임, 장애여성공감,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125개소),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찍는페미, 평화의샘, 한국독립영화협회,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여성장애인연합 등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엔 김민문정 한국여성민우회 상임대표, 조인섭 변호사, 백재호 한국독립영화협회 운영위원,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 김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이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느낌, 감정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감독의 연기지시가 제대로 전달되거나 상대 배우의 이해를 얻기란 어려운 일"이라면서, "이번의 항소심 판결은 연기 중이더라도 상대 배우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고 밝히며 연기를 빌미로 한 범죄 행위라고 명확히 했다. 상호 간의 합의해야 하고 합의는 결국 구체성을 통해 얻어질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을 이었다.

끝으로 안 위원장은 "이제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라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도록 영화를 만드는 모든 현장에 부탁의 말씀을 드리겠다. 혹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의 목소리가 들리면 영화라는 오해를 벗고 일단 잘 들어봐 주길 바란다. 영화계 내 성폭력이 사라지는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발표를 끝냈다.

▲ 김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

김미순 한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상임대표는 "2017년 10월 13일, 2년 6개월의 사투가 끝났다. 영화계에서 성폭력, 폭언, 성상납 등이 오랜 기간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됐었다"라면서, "그런 면에서 이번 판결은 관행이라는 이름의 고리를 끊는 유의미한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사회적 편견과 맞서 고군분투해준 피해자분의 용기 결과다. 다시 한번 연대와 지지의 마음을 보낸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성적 자기결정권은 존중되어야 한다. 당연한 판시인 것"이라고 입을 열었다.

김 상임대표는 "그런데 이번 재판부의 결정에 환영하는 이 자리가 왠지 씁쓸하다"라면서, "공대위는 피해자를 1심 판결 후에 만났다.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보이는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알려지는 것들에 망설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서다. 성폭력이 범죄임은 우리 사회 구성원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지만 피해자들은 시민, 사법부의 성폭력에 대한 통념과 싸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건으로 들어가면 성폭력으로 인정받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성폭력 피해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업무상(연기상 배역에 몰입하면)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억울한 마음에 다소 과장해서 표현한 것으로 보이며, 이를 그대로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1심 재판부의 시각을 돌리기 위해 피해자와 공대위는 영화계의 다양한 전문가를 만나고 결과를 재판부에 전달했다"라고 언급한 김 상임대표는 "이러한 일들을 피해자 1인이 나서서 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재판부와 검찰이 특수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수사해 판단하기를 요구한다. 이번 항소심 결과의 유의미한 판단에도 양형의 판단에 아쉬운 지점이 있다"라고 밝혔다.

김 상임대표는 "'피고인은 연기자로서 감독의 일방적인 지시에 따라, 순간적·우발적으로 흥분하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며, 계획적·의도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라며 양형상 감형의 이유를 판시했는데 가해자가 가진 왜곡된 성적 규범이나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들의 무시 태도를 우발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성폭력에 대한 왜곡된 통념의 하나이며 지금껏 성폭력이 성폭력으로 인정되지 않은 주요한 결과이기도 하다"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의 피고인은 오랜 경력의 연기 전문가다"라면서, "순간적·우발적 흥분 상태가 되더라도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 제어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것이 전문가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본 사유는 양형상 감형의 요소에서 배제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끝으로 이번 사건은 앞으로 연기를 시작하는 그리고 배우 활동 중이지만 부당한 행위에도 불구하고 연기 생활에 방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참아왔던 많은 분에게 용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도 저희는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서 더 많은 분이 용기 낼 수 있도록 활동하겠다"라고 발언을 마무리했다.

▲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여성연예인인권지원센터 소장은 "지난 13일 남배우A 사건의 2심 재판 결과가 나왔다"라면서, "그 직후부터 지금까지 가해자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놓고 억울하다는 인터뷰를 지속해서 하고 있다.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쓰면서 가해자의 처지를 대변하는 기사를 무차별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실제로 1심의 관련 기사는 채 30건도 되지 않지만, 현재 포털에서는 이와 관련된 기사가 500건이 훌쩍 넘고 있다"라고 밝혔다.

윤 소장은 "이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릴 때는 언론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가해자가 얼굴과 실명을 공개하고 무죄를 주장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라면서, "내용 또한 문제다. 가해자가 영화 이름, 피해자가 극 중 이름을 여과 없이 인터뷰했다고 해도 언론은 성폭력 보도준칙에 따라 피해자를 특정할 수 없도록 여과해서 보도해야 한다. 그러나 언론들은 이를 아무 고민 없이 보도해 피해자들의 신상이 드러나게 하는 등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주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윤 소장은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라면서, "가해자의 인성이 좋다. 가해자는 성가대 활동을 했다. 가해자는 욕도 못한다 등 성폭력 사건과 관계없는 가해자의 인성을 운운하면서 그의 무죄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또한 큰 문제다. 인권위에서 제정한 성폭력 보도준칙에는 피해 사실을 자세하게 보도하지 말 것을 언론에 요구한다. 그런데도 이번 사건에서 심지어 한 방송사는 여성의 상의가 찢겨 검정 브래지어가 드러나는 장면을 일러스트로 그려서 내보내는 등 선정적 보도를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 언론이 보여주고 있는 소설 같은 보도는 이러한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문제를 더욱 키우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면서, 윤 소장은 "이제 가해자의 거짓된 입장만을 대변하는 보도는 멈춰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영화 현장에서, 연예 현장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고 앞으로 이를 어떻게 근절시킬 것인가를 고민하는 언론 본연의 역할을 기대한다. 또한, 영화계, 나아가 연예계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폭력이 더는 발붙일 수 없도록 함께 노력해 주시길 간곡하게 당부한다"라고 발언을 끝냈다.

한편, 피해자 배우는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았으며, "같음을 인정받고, 다름이 이해되다"라는 제목의 서면을 제출했다. ▶ '조덕제 성폭력' 피해 여배우 "그건, 연기가 아니라 성폭력입니다" (입장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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