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말하는 '五色 공연'

   
 

[문화뉴스] "총 5번의 공연을 색깔에 비유한다면, 금색, 갈색, 검은색, 빨간색, 흰색이다."

피아니스트 김다솔, 바이올리니스트 박혜윤, 바이올리니스트 조진주를 거쳐 '2016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네 번째로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선정됐다. 상주음악가 제도(Artist In Residence)란 음악, 미술을 불문하고 예술가에게 작업에 집중할 기회와 타 예술가 및 새로운 환경과 접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더 깊은 예술세계로 인도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금호아트홀에선 2013년부터 보다 심화한 아티스트 지원을 위해 '상주음악가' 제도를 국내 공연장 최초로 도입했다. 금호아트홀 관계자는 "연중 5~6차례 다양한 구성의 무대를 통해 클래식 유망주를 한국 관객에게 소개하고, 연주자에겐 작업에 집중할 기회와 새로운 도전의 장을 마련해 한국 음악계에 안정적 안착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혔다.

'2016년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쇼케이스가 15일 오전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금호아트홀에서 열렸다. 선우예권은 2009 인터라켄 클래식 국제 음악 콩쿠르, 2012 윌리엄 카펠 국제 피아노 콩쿠르, 2013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 2014 베르비에 콩쿠르, 2015 인터내셔널 저먼 피아노 어워드를 포함, 7개에 달하는 저명한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서울예고 졸업과 동시에 미국으로 날아가 커티스 음악원, 줄리아드 음대 등에서 수학하며 활동해온 선우예권은 국내에선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8년 카네기홀 뉴욕 데뷔를 포함해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 벨기에 국립 오케스트라, 프랑스 매로크 필하모닉 등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해왔다. 올해는 한국 피아니스트 최초로 저명 음악 축제인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서 성공적인 독주회를 선보였다.

15일 오전, 선우예권은 취재진에게 모차르르 피아노소나타 제10번 K.330 1악장과 리스트 초절기교 에튀드 중 '라 캄파넬라', 그리고 그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선사하고 싶은 라흐마니노프 소나타 2번 2악장을 연주했다. 이후 송현민 음악칼럼니스트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참석한 기자간담회가 진행됐다. 두 인물의 대화와 질의응답을 통해 선우예권의 음악 이야기와 함께 내년에 그가 상주음악가 자격으로 선보일 공연 이야기를 들어본다.

   
▲ 선우예권이 모차르르 피아노소나타 제10번 K.330 1악장을 연주하고 있다.

상주음악가가 된 소감을 듣고 싶다.
ㄴ 연주자의 길을 간다는 것은, 연주 기회가 지속하여야 가능하다. 그런 의미에서 콩쿠르는 큰 타이틀과 집중할 힘을 주지만, 연주 기회와는 비례하지 않다. 이번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것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감사한 일이다. 5번의 연주회를 한다는 것이 가슴 벅차다.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그리고리 소콜로프가 시즌을 하면 연주 횟수가 엄청나다. 완벽이라는 이상적 연주를 위하고 있는데, 젊은 연주자로 그렇게 하기엔 어렵고, 동시에 다양한 무대를 보여야 하므로, 여러 무대를 꾸밀 수 있는 이번 선정이 너무나 감사하다.

최근 근황은 어떠한가?
ㄴ 11월엔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데뷔 무대를 포함해 독일 4개 도시에서 총 6회의 리사이틀 투어를 마쳤다. 이번 달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리 주미 강과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듀오 무대를 가졌다. 엊그제 귀국했고, 연말에 일정이 많이 잡혀서 내년 2월 초까지 한국에 있을 예정이다.

일곱 번의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콩쿠르는?
ㄴ 꽤 많은 국제 콩쿠르를 우승했고, 감사하게 좋은 기회를 많이 얻기도 했다. 하나하나가 소중하지만, 콩쿠르 자체에 큰 의미는 두지 않는 편이다. 어떻게 보면 부질없는 느낌도 드는 것 같다. 그래도 가장 뜻깊었던 콩쿠르는 2013 센다이 국제 음악 콩쿠르였다. 약간 차가운 면이 가족에게 많았다. 특히 어머니에게 더 그렇다. 파이널 당시엔 어머니가 말씀 안 하시고 일본에 오셔서, 약간 죄송한 마음도 들었다. 나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엘리베이터도 안 타고 계단으로 올라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울컥했다. 당시엔 콩쿠르에 집중하기 위해 냉철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게 콩쿠르의 단점일 수 있겠다.

가장 힘들었던 콩쿠르는 무엇인가?

ㄴ 콩쿠르 준비를 성실히 하는 편이다. 그런데 거의 준비를 하지 못한 적도 많다. 지난 '쇼팽 콩쿠르'처럼 안 좋은 결과가 오기도 했다. 그랬던 콩쿠르가 꽤 있다. 예선 때 곡을 바꾸려고 했는데 바꾸질 못했다. 참가할 상황이 아니었는데, 왜 갔는지를 모를 정도로 갔다. 이건 내 잘못이기도 했다.

   
▲ 송현민 음악칼럼니스트(왼쪽)와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오른쪽)이 간단한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콩쿠르 우승을 7번 했다. 그동안 몇 번의 콩쿠르를 나갔는가? 콩쿠르는 연주자에겐 큰 압박감일 것이다. 자기 수련을 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 이유는 무엇이며, 앞으로는 콩쿠르보다 연주를 중점으로 할 것인가?
ㄴ 콩쿠르는 만으로 16~17살쯤에 나가서, 매년 2~3회는 한 것 같다. 계산은 못 하겠지만, 10여 회 이상은 나간 것 같다. 작은 콩쿠르부터 큰 콩쿠르 모두까지 모두 나갔는데, 상금에 대한 욕심과 연주에 대한 욕심은 물론 있었다. 콩쿠르를 할 당시엔 상금, 연주, 무언가 나아가고 싶은 목표가 있었는데, 지금은 감사하게 여러 연주 기회가 주어지고 있고 국내에선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알려지기 시작하기 때문에, 딱 하나를 생각하고 있다. 말씀은 드릴 순 없다. 젊을 땐 모르겠는데, 매년 나이 먹어갈 때마다 큰 중압감을 느끼고 연주 무대와 다르게 몇십 배 떨리고 더 잘하려고 할 수밖에 없다.

나이 잘하는 친구들이 열정과 패기로 올라오기 때문에, 심리적 부담감이 있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표현할 수 없다. 콩쿠르 음악은 부담감이 많이 되는 것 같다. 그걸 극복하기 위해 체육 하시는 분들과 정신적으로 비슷한 것 같다. 모든 것을 차단한다. 메신저도 안 하려고 한다. 그래서 사실 콩쿠르는 더는 안 했으면 좋겠다. 연주로도 음악적 표현을 하는 데 더 힘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질투가 난 또래 피아니스트가 있다면?
ㄴ 또래 피아니스트 중 한국에서 연주 활동하는 친구들이 있다. 잘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움도 있고 질투심도 있을 것이다. 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와 동료여서 자랑스럽다고 생각하는 느낌이 제일 크다. 조성진 씨도 쇼팽 콩쿠르 우승했지만, 가장 존경하는 분은 임동혁 씨다. 음악을 들으면, 뜨거운 감정을 일으키는 무언가가 있어서 더 좋아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음악인 것 같다. 반듯하고 완전하게 하는 음악이 아니다.

   
▲ 선우예권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앞서 질문했듯이 지난 10월, 쇼팽 콩쿠르 예선에서 떨어졌다. 당시 대회를 우승한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대한 의견도 말해달라.
ㄴ 쇼팽 콩쿠르는 정말 후회가 많은 부분이다. 새로운 에티듀드를 1주일 만에 하는 건 무리다. 쇼팽 콩쿠르를 위해 연습한 총 시간이 5시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틀 전에 다른 콩쿠르가 있었고, 새로운 곡을 배워야 했다. 내 관리가 소홀히 한 부분이고, 연주자에겐 있어서도 안 될 부분이어서 크게 혼난 것 같다. 이번 콩쿠르 무대를 보면서 본 조성진 군은 정말 훌륭한 피아니스트다. 단점이 없는 것이 단점일 정도다. 존경하는 다른 연주자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롤모델로 삼고 있는 피아니스트가 있다면?
ㄴ 감사하게도 존경받는 분들에게 사사를 하기도 했고, 훌륭한 음악가가 너무 많다. 몇 명을 꼽자면 머라이 프레이어, 그리고리 소콜로프도 좋아한다. 리차드 구드 선생님께 최근 2년간 사사했다. 그분도 존경한다. 그의 삶을 보면 음악을 위해 헌신하시고, 음악을 위해 사는 것이 보였다. 배우면서 많은 것을 느낀다.

커티스 음악원에서 6년간 배운 세이무어 립킨 선생도 있다. 그분이 몇 주 전 11월 말에 89세 나이로 돌아가셨다.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 가면서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내 것을 만들 시기였는데, 그분에게 배운 음악적 영감이 많이 있다. 그분을 보시면 89세까지 살면서도 아침 몇 시간씩 본인이 하시는 연습이 있다. 그런 것을 게을리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신다. 최근 2년 전까지만 해도 베토벤 리사이틀 등 공연을 하는 모습을 보며 너무 배우고 싶었다. 이렇게 롤모델로 삼고 싶은 분이 너무나 많다.

올해 스위스 베르비에 페스티벌에 한국 피아니스트 최초로 참석했다.
ㄴ 지난해 베르비에 콩쿠르 우승자가 다음해 독주회의 혜택을 갖게 됐다. 그만큼 가치가 있던 콩쿠르였다. 이번 여름에 다녀왔다. 상당히 큰 무대여서 긴장도 많이 했는데, 어떤 의미였는지 모르겠다. 너무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아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집중도를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는 무대였고, 음악 자체에 힘을 쓰는 자리였다. 그래서 어떤 면에선 편안한 연주를 할 수 있었다. 관객들의 호응도 좋았다.

   
▲ 선우예권이 포토타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주 징크스가 있다면?
ㄴ 징크스라고 하는 건 없다. 연주회 당일에 꼭 한 번은 분위기를 천천히라도 훑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무대에 서면 긴장이 많이 된다. 그런 것을 징크스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방금 오기 전에 피아노 의자의 레버를 조절한 것은 내가 일찍 와서 해보질 않았기 때문에 한 것이다. 또한, 건반의 먼지가 있으면 방해가 되고 신경이 쓰인다. 조그마한 머리카락도 거슬려서 건반 손질을 하긴 한다.

상주음악가를 하면서 총 5개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색깔에 비유한다면?
ㄴ 1월 7일 신년음악회는 금색 황금빛이다. 신년 하면 떠오르는 색이다.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를 위한 라 발스 등 춤곡의 느낌도 있어서 화려한 색채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5월 26일 '올 슈베르트' 공연은 갈색과 맞는 것 같다. 잘 지은 흰색 대리석 집도 멋지긴 한데, 갈색을 떠오르면 통나무집의 매력적인 느낌이 난다. 슈베르트의 갈색과도 비슷한 것 같다.

6월 9일은 '스크리아빈, 생상스, 그리고 리스트'다. 1부는 스크리아빈 '왼손을 위한 프렐류드와 녹턴', 생상스 '왼손을 위한 6개의 에튀드'를 연주할 예정이고, 2부가 리스트의 곡이다. 그날 프로그램은 약간 검은 색에 비유하고 싶다. 기교적이고, 악마적인 분위기가 있으므로 어두운 검은색일 것 같다. 모든 색을 한꺼번에 어우러지면 검은색이 나오고 섞게 된다. 리스트만 보아도 12가지 페인팅 같은 느낌이 들고, 이를 하나로 합치면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9월 8일, 프로코피예프의 '전쟁소나타' 전곡 분위기는 빨간색이다. 프로코피예프 하면 강렬하고 뜨겁고, 신랄한 빛이 많이 있는 곡이다. 다양한 캐릭터가 있어서 빨간색이 적합한 것 같다. 12월 15일에 열리는 마지막 공연은 피아노 듀오로 앤-마리 맥더모트와의 공연이다. 그 분과 2번을 같이 했다. 흰색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체임버를 많이 하는데, 피아노 듀오는 많이 해 본 경험이 없다. 피아노 듀오를 한다면, 흰색 도화지를 만난 것처럼 많은 상상을 하고 기대를 하게 된다.

이번 무대를 통해 어떤 음악가로 거듭나고 싶은가?
ㄴ 어떻게 보면 도전적인 무대들로 꾸며봤다. 어떤 이들은 베토벤이나 바흐 같은 전통적이고 고전적인 레퍼토리는 안 하느냐고 묻는다. 그것도 많이 생각해봤다. 한국에서 많이 꾸며지지 않은 무대를 하고 싶었고, 지금 나이가 만으로 26세이기 때문에 하고 싶은 레퍼토리를 생각하다가 꾸미게 됐다. 5번의 무대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은 내 개성을 관객들에게 각인시키고 다양한 면모를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이는 음악적으로 지향하는 것이다. 하나하나 소중하게 여기고 열심히 준비를 해야 한다.


▲ 선우예권이 취재진에게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 제10번 K.330 1악장과 리스트 초절기교 에튀드 중 '라 캄파넬라'를 선보이고 있다.

평소 성격은 어떠한가?
ㄴ 겉으로 보면 잘 웃어서 낙천적이고 긍정적이라고 보실 때가 있는데, 친구들은 정반대로 생각한다. 가까운 지인들이 말하는 성격이 맞는 것 같다. 지인들에게 제대로 된 성격이 나오니, 까칠한 성격이 맞는 것 같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처럼 관객들도 연주를 보시고 다양함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여러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한국에서 뒤늦게 주목받는 것이 아쉽지 않은가?
ㄴ 만약 30살을 넘어서 알려졌다면, 그땐 아쉬움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평생을 갖고 갈 직업이고 기량을 갈고닦고, 앞으로 음악적으로 깊숙하게 가야 할 것도 있어서 그런 생각보단 음악엔 집중하려고 한다.

국내 피아니스트들이 여러 개인 음반을 내고 있다. 음반 발매 계획이 있는가?

ㄴ 2013년에 센다이 콩쿠르 우승하고 2014년 솔로 앨범을 일본에서 낸 적이 있다. 다른 기회는 없다. 하지만 사비로 투자해서 만들고 싶진 않다. 그런 기회가 들어온 곳이 없어서, 만약 있다면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해보고 싶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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