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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MHN 석재현 기자] [문화 人] '1987' 장준환 감독 "우현·문성근, 그리고 강동원 출연 감사하다" ①에서 이어집니다.

김윤석은 '화이' 이후 재회한 건데, 어떤 점에서 다시 함께 하게 되었나?
└ 윤석 선배는 미리 무언가를 재단하지 않는다. 어떤 작품이 있으면 그 인물의 백지상태에서 본질이 무엇인지 심도 있게 연구하면서, 연기의 일정한 패턴에 갇히지 않는다. 기본적인 재능도 출중한 데다가 태도와 노력이 병행되니까 막강하다고 생각했다.

영화 설정에서 인상 깊었던 게, '박 처장' 집단을 완전한 악역으로 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집단을 어떻게 그리고자 했는가?
└ 악역이지만, 좀 더 강력해지고 힘을 발휘하려면 폭넓고 단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의 전사를 부여한 것이고, 이 영화가 1987년만 담은 게 아닌 그 이전까지 전쟁의 트라우마와 이념을 겪었던 세대를 아우를 수 있다면 영화의 폭이 넓어지지 않을까 의미였다.

몇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지만, 인간에 대한 고찰 등에서 등장인물을 좀 더 풍부하게 해보자는 느낌으로 접근해봤다. 하지만 박 처장은 분명 악역이고 나쁜 놈이라는 기본 틀은 확고했다.

▲ 영화 '1987' 스틸컷

박 처장 손에 호두를 쥐고 있는데 눈에 띄었다.
└ 일종의 클리셰일 수도 있는데, 보통 영화를 보면 악역들이 뭔가 하나를 하고 있다. 당시를 대변하는 기성세대들이 하는 행동을 보니까, 혈액순환 때문에 호두를 가지고 손 운동하는 건데 거기에 전사를 넣었다.

박 처장 손을 보면 손이 나갈 정도로 흉터가 깊다. 그 흉터가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극복하고 자기 의지로 건강을 유지했다는 의미, 그리고 잡히면 반드시 때려잡겠다는 의지와 시대성 등을 내포하고 있다.

'1987'를 만들 때 상당히 부담이 많이 되었을 것 같다.
└ '충분히'가 없을 정도로 조심해야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드라마로서 가지는 이야기로서 매력과 힘은 같이 가져가야 했기에 균형을 맞추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균형이라 함은 무슨 뜻인가?
└ 각자 기준이 다르겠지만 최대한 사실을 담아내면서, 얼마만큼 극적인 인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리고 분별력이 확실한 모두가 주인공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

박처장의 부하 조반장의 "받들겠습니다"를 왜 의미심장하게 말하는 걸로 설정했는지 궁금하다.
└ 그 부분도 김경찬 작가님의 대본 초기부터 있었던 설정이다. 30년 밖에 안됐지만, 그때는 매우 폭력적이었고, 조직의 규율이나 소위 말해 군기 등을 굉장히 강했던 시대로 기억하고 있다.

▲ 영화 '1987' 스틸컷

특히, 대공 같은 조직은 인간이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를 계속해야 하니까 조직적인 규율이나 체계나 견고해야 하고 자기들만의 규율과 체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하기 어려운 일을 던져줬을 때도 "받들겠습니다"는 충성심을 내비치는 묘한 말로 그려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1987년을 조성하는 데에도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웠다고 들었다.
└ 고작 30년밖에 안 됐는데도, 한국은 엄청 많이 변화했다. 현재 국내에서 30년 전 모습으로 남아있는 게 거의 없었다. 오픈 세트를 지어 명동이나 연세대 앞을 CG로 구현해야만 했고, 연희네 가족이 운영하는 연희슈퍼를 찾는 데 지방까지 내려가 찾을 만큼 몇 달 걸렸다. 무엇보다 그 당시 모습을 그대로 살려야 했기에 장소나 소품 하나 가벼이 할 수 없어서 힘들게 작업했다.

'1987'이 실제 명동성당 안에서 촬영했다고 들었다. 참 대단했다.
└ 맞다. 한국영화 최초였다. 명동성당 측에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뜻에 동참해줬기에 허락해준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다들 뿌듯해했고, 이 부분에 대해 자랑스럽게 여긴다. 1987년 명동성당에서 항쟁은 또 하나의 드라마였다. 그때 성당이 포위되었고, 그 안에서 며칠간 항쟁해야 했다. 그걸 본 시민들이 스스로 모금했고 이웃 고등학교에선 도시락을 들고 나눠주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안타깝고 아쉬운 게 있다면, 당시 천주교 신부님들의 희생과 민주화를 향한 노력을 알고 있기에 故 김수환 추기경을 넣고 싶었으나, 만들다 보니 빠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 영화 '1987' 스틸컷

그동안 영화계에서 1987년 이야기를 많이 안 만들었다는 사실이 참 의외였다.
└ 나 또한 왜 여태껏 안 만들었나 생각했다. 이렇게 극적이고 커다란, 의미 있는 이야기를 왜 하지 않았는지 말이다. 그런 부분이 안타까웠고, '1987'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던 부분이기도 했다.

엔딩에서 아내인 배우 문소리의 목소리 출연을 빼놓을 수 없다. 문소리의 감독 데뷔작 '여배우는 오늘도' 어깨연기 출연에 대한 보답인가? (웃음)
└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웃음) 문소리 씨가 마지막 데모 장면에서 출연자들에게 직접 연기지도를 했는데, 직접 해본 사람이다 보니 왜 스크램블을 짜야 하고 리듬을 타야 하는지 족집게 선생님처럼 정확하게 콕 집어 가르쳐주니까 매우 좋았다. 출연자들이 쉽게 알아듣더라. 많은 도움을 받았다.

혹시, 의도하지 않았는데 놀라게 한 애드리브가 있었는가?
└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그중 대표적인 건 역시 김윤석 선배님의 "탁 치니 억!" 대사였다. 그 부분은 많은 스태프가 감동했다. 촬영할 때 대사 하는 사람이나 이를 듣는 사람이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풍부하게 사실감을 줘야 하는데 "어?" 하는 추임새가 이렇게 절묘한 건 영화를 만들면서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 그 대사가 개봉 전인 예고편 영상에서 숱하게 등장하여 많은 이들도 거의 유행어처럼 알고 있다.
└ 지금까지 너무나 말도 안 되는 유행어다. 30년 전인 그때도 그 말은 유행어였다.

시사회 때 유족분들이 영화를 보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 김윤석 선배님이 박종철 열사 누나분과 통화하다가 날 바꿔줬다. 그분이 "이 소재를 가지고 영화화하겠다는 걸 많이 봐왔고, 그중에 만족스럽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영화로 만들어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해주셨다. 그래서 마음 한 켠에 조마조마했던 게 내려갔다.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공개하기 전까지 유족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제일 걱정이 컸었는데, 그 말을 듣고 매우 감사했다.

▲ 영화 '1987' 스틸컷

설경구가 연기한 김정남의 추격 장면이 긴장감 있게 그려졌는데, 영화 '아르고' 공항 장면이 연상되었다. 이 교차편집이 스릴감 넘쳤다.
└ 실존 인물인 김정남 선생님은 실제로 굉장히 점잖으신 분이다. 그래서 영화적인 긴장과 재미를 가져가야 되지 않을까 싶어 영화적 장치로 스파이물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그러면서 성당 안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이나 십자가, 명동성당과 이어지는 비둘기 등을 연결해 장르 영화가 아닌 또 다른 측면으로 더 관객이 즐길 수 있게 만들어보자는 의도가 있었다.

엔딩에 나오는 노래 '그날이 오면'은 누가 부른 것인가?
└ 이한열 합창단의 합창과 어린 친구의 목소리가 같이 섞여 있다. 대중가요로 많이 불렸던 노래라 많은 분이 기억하고 있을 텐데, '그 날'이라는 게 무엇이며, 언제 올 것이며 각자에게 어디로 가고 있나 그런 의미로 '그날이 오면'이 장식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 ⓒ CJ 엔터테인먼트

마지막 질문이다. '1987' 이후 당신의 차기작은 언제 볼 수 있을까?
└ 차기작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는 '1987'을 최선을 다해 잘 마무리하는 게 임무다. 다음 작품을 만드는 데 10년이 걸릴지, 더 걸릴지 모르겠다.

예전에는 성격상 작품 하나를 만드는데 너무 완벽해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그러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씨가 한 말을 보게 되었다. 정경화 씨가 "어렸을 때는 음표 하나 틀린 것으로 잠을 못 잘 정도로 괴로워하고 힘들어했는데 나이 들어서 음표 틀려도 괜찮더라. 얼마나 이 곡의 정수와 힘에 집중한 게 중요하다"고 하셨다.

그 말이 나에게 힘이 되었고, 도움도 되었다. 완벽해지려고 노력해도 결국 완벽해지는 것도 아니고, 결국 전하고자 하는 핵심을 가지고 다가가는 게 더 중요하더라. 세부묘사의 완성도뿐만 아니라. 뭔가 만날 수 있고 쓰일 수 있다면 좋겠다.

syrano@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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