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와 ‘희망’에서 ‘낭만적 아름다움’으로의 전환”

공연일시: 10.7-10.14, 예술의 전당

코로나와 이태원 압사(壓死) 사고의 여파속에 열린 최근 1-2년전의 서울국제음악제 주제가 위로희망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 관객들이 음악을 통해 음악의 낭만적 아름다움을 되찾아 이를 다시 되늦껴볼 때가 됐다.

서울국제음악제를 주최하고 있는 오푸스()측이 낭만시대의 거장 브람스의 음악과 현 시대의 류재준의 음악은 힘든 시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저력이 될 것이라는 홍보카피에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올해 제15회째를 맞은 서울국제음악제는 크게는 실내악들 공연과 SIMF오케스트라의 개막 및 폐막공연으로 나뉘어 예전 음악제들에 비해 비중이 다소 떨어져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런 음악의 낭만적 아름다움을 관객이 되찾도록 하는데에는 적절한 레퍼토리들의 선택이 이뤄지지 않았나 본다.

2023 서울국제음악제는 '위로'와 '희망'의 콘서트 컨셉에서 올해 음악의 '낭만적 아름다움'으로의 전환을 느끼게 한 음악제였다.
2023 서울국제음악제는 '위로'와 '희망'의 콘서트 컨셉에서 올해 음악의 '낭만적 아름다움'으로의 전환을 느끼게 한 음악제였다.

시류의 흐름 정확히 간파한 레퍼토리들

한마디로 제15회 서울국제음악제가 시류의 흐름을 정확히 간파한 레퍼토리들로 무대에 올려졌다는 얘기다.

우선 음악제의 주제관점에서 위로희망에서 낭만적 아름다움으로의 전환은 지난해 2022년의 서울국제음악제를 돌아보더라도 명확히 드러난다. 작년 20221022일 토요일 오후 압도적인 절대자보다는 행복을 갈구하는 인간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는 모차르트 미사 18, K. 427 ‘대미사부터 1030일 일요일 오후 펜데레츠키카디쉬(기도)’까지 2022년 제14회를 맞은 서울국제음악제는 당초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보낸 우리를 어루만지고 달래주는 우리를 위한 기도(Pray for us)를 드린다는 취지로 기획됐었다.

그러나 지난해 1029일 토요일 서울 이태원 핼로윈 파티가 진행되고 있던중 해밀턴 근처의 골목에서 발생한 159명의 불행한 압사(壓死) 사고로 인해 작년의 서울국제음악제는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Pray for the Deads)’가 되어버렸다.

여전히 전세계에서 끊이지 않고 벌어지는 전쟁과 갈등, 빈부격차와 환경위기는 사람들을 여전히 괴롭게 하지만 음악으로 위로하고 함께 하며 밝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고자 한다는 취지에서 어려운 시기에 음악이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 서울국제음악제의 폐막공연에 앞서 류재준 음악감독은 무대에 나와 1분 추모의 기도를 올리자며 뜻하지 않은 압사참사를 겪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들을 건네며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Pray for the Deads)’에 서울국제음악제가 큰 역할을 하도록 해 시의적절한 뜻깊은 무대가 됐었다.

지난해 1030일 폐막공연날 첫곡으로 연주된 류재준작, ‘현악 사중주 협주곡(세계 초연)’은 류재준의 스승인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서거를 기리기 위해 아담 마츠키에비츠 협회의 위촉으로 작곡되었던 곡.(Commissioned by the Adam Mickiewicz Institute)

이태원 압사참사의 여파 때문인지 1악장부터 추모의 리듬으로 들렸는데 이 곡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에게 역시 헌정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모두 쉼없이 진행하는 세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에 관해 각 악장에 관한 작곡자의 설명대로 바이올린의 백지영과 송지원, 비올라의 김상진, 첼로의 김민지등 현악사중주가 전통적인 현악사중주의 역할을 벗어나 각 악기의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눈에 두드러졌다.

이런 느낌은 클로드 드뷔시의 녹턴, L. 91에서도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처럼 들리는데서 이날 서울국제음악제에 참석한 음악애호가들의 정서에 이태원 압사참사의 심성이 은연중 많이 스며든 듯 했다. 주목할 만 했던 것은 클로드 드뷔시가 빛, , 바람, 안개, 파도등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대상을 표현의 대상으로 삼아 이를 위해 그가 사용한 다양하고 독특한, 일반적이지 않은 작곡 기법으로 몽환적인 음향을 만들었던 인상주의 작곡가의 편린이 투영된 1악장 구름이나 2악장 축제’, 그리고 3악장 사이렌의 인상주의 음악이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처럼 관객들의 심성에 겹쳐 울렸다는 점이다.

이날 폐막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펜데레츠키의 카디쉬(기도-한국초연)가 장식했는데 카디쉬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유대인의 기도문으로 1악장의 소프라노 이보나 호싸(Iwona Hossa)가 열창하는 나는 얼마나 슬픈 순례자인가?’, ‘내 육체가 죽었는지 몰라도 내 영혼은 살아있다는 등의 소프라노 열연의 감동이 그대로 살아 전해져오는 공연이었다. 펜데레츠키의 카디쉬는 흡사 펜데레츠키가 생전시 예술의 전당 무대 포디엄에 올라 지휘봉을 잡던 거의 10여년전 때를 내게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 됐다.

브람스의 SIMF 연주들, 차분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매력 간직

브람스(독일)는 보수적이고 내성적인 로맨티시스트였다. 그 음악은 행동적인 바그너(독일)나 리스트(헝가리)처럼 화려하고 위압적인 울림은 모자라지만, 차분하고 보석처럼 빛나는 매력을 간직하고 있음을 올해의 SIMF오케스트라는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이나 비극적 서곡, Op. 81, 브람스의 교향곡 제4번과 1번 교향곡의 연주를 통해 다시 보여줬다. 지난 여름 클래식무대를 풍미했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들보다 숙성된 앙상블 사운드를 들려주는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의 느낌이었다.

때문에 음악사상 특히 획기적인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닌 브람스가 바흐나 베토벤과 나란히 칭송되는 일이 있음은 독일 음악의 정신적인 전통을 더없이 풍부하게, 또 엄숙하게 이어받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1011일 수요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칠레 출신의 지휘자 파올로 보르톨라메올리가 지휘봉을 잡은 SIMF오케스트라 공연은 브람스의 대학축전 서곡과 바이올린 및 첼로를 위한 이중협주곡, 교향곡 4번이 연주됐는데 류재준 음악감독의 말(!)마따나 기막힌 연주앙상블이 이어져 특히 브람스 교향곡 4번이 요하네스 브람스 마지막 교향곡이자 필생의 역작으로 꼽히며 프리지아선법(Phrygian mode)이나 파사칼리아(Passacaglia)와 같은 옛 시대의 음악 기법과 양식을 당대의 음악 양식과 결합시켜 교향곡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공연 내용이었다.

폐막음악회였던 1014일 토요일 오후 5시의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공연은 브람스의 비극적 서곡과 류재준의 트럼펫 협주곡(세계 초연), 브람스의 교향곡 1, Op.68이 연주돼 특히 바실리 페트렌코가 지휘봉을 잡은 올해의 폐막공연 레퍼토리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은 새삼 전체적으로 브람스 특유의 절제되고 단정한 오케스트레이션과 탄탄한 형식미를 제대로 보여주는 작품임을 내게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내용적인 측면에서 베토벤이 연상되면서도 베토벤과는 또 다른 브람스 특유의 분위기가 드러났는데, 베토벤의 음악이 좀더 초월적인 이상향을 추구하고 있다면 브람스는 훨씬 내면적이고 사색적인 분위기를 갖고 있어 이러한 분위기는 이후에 그가 쓴 다른 3곡의 교향곡에서도 계속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서울국제음악제가 지난해 폐막공연의 핀란드 출신 오코 카무에 이어 7년동안 오슬로 필하모닉을 이끌다 로열 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는 올해의 지휘봉 바실리 페트렌코, 미국 명문 악단 피츠버그 심포니를 이끌고 있는 지휘자 만프레드 호넥이 내년 2024년에 내한해 서울국제음악제의 지휘를 펼치는 중진 지휘자들로 지휘계보가 이어지는 것은 성년을 향해가고 있는 서울국제음악제의 행보에 대해 해외연주자들이나 지휘자들의 시각이 이 음악제에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 감을 갖게 한다.

이런 관점에서 올해 제15회 서울국제음악제가 실내악 I,2 공연과 피아노works등으로 채워지던 것과 달리 보다 비중있는 교향곡등으로의 콘서트 레퍼토리들의 연주들로 전환하려면 한화그룹과 현대자동차등 클래식 지원에 관심많은 기업들의 후원이 더 많아져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글 / 음악칼럼니스트 여홍일 2820co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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