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교향악단의 내한 러시속에 꺽이지 않는 중마의 선두”

1026() 저녁 8시 롯데콘서트홀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가을부터 이어진 외국 교향악단들의 러시속에 꺽이지 않는 국내 교향악단의 중마를 확인하고 싶어서였을까.

서울시향의 김선욱의 모차르트와 슈트라우스 공연이 열린 지난 1026일 목요일 저녁. 건너편 합창석은 물론이고 좌우 사이드석까지 잠실 롯데콘서트홀을 가득 메운 관객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9월부터 12월초까지 외국 교향악단들의 국내 공연러시가 예정돼있는 가운데 국내 교향악단의 공연에 대한 진공(眞空)사태가 우려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우려를 여지없이 깨트리는 관객들로 객석이 가득차서다.

이날 서울시향이 연주 레퍼토리들로 선곡한 연주곡들도 기존의 서곡, 협연곡, 교향곡 연주의 순서에서 변형돼 지휘자와 피아니스트 역할을 이중 짊어진 김선욱이 전반부에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을 연주했고 교향곡이 보통 연주되는 후반부에는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 <장미의 기사> 모음곡으로 슈트라우스의 관현악법을 마음껏 과시하며 유럽 콘서트홀에 갖다놔도 손색없을 레퍼토리들을 선보였다. 서울등 국내 클래식 공연장에서 올 가을 유독 국내외 오케스트라의 공연들이 많은 가운데 살아남아야 한다는 서울시향 관계자의 전언(傳言)이 연주자들의 연주에서도 간절하게 묻어났다.

올 가을 외국 교향악단들의 국내공연 러시속에서 꺽이지 않는 중마의 선두로서 연주 긴장도에서 뒤지지 않은 서울시향의 리허설 장면. (사진 서울시향)
올 가을 외국 교향악단들의 국내공연 러시속에서 꺽이지 않는 중마의 선두로서 연주 긴장도에서 뒤지지 않은 서울시향의 리허설 장면. (사진 서울시향)

"연주 긴장도에서 서울시향의 연주 결코 뒤지지 않아

내가 9월부터 시작된 올해 서울 클래식 무대에서의 외국 교향악단들의 내한무대는 피에타리 잉키넨이 지휘한 도이치방송교향악단의 부천아트센터 무대, 에드워드 가드너가 지휘한 런던필의 부천아트센터 무대, 예술의 전당에서의 세묜 비치코프 지휘 체코필 무대를 접했지만 연주 긴장도에서 서울시향의 연주가 결코 뒤지지 않아 꺽이지 않는 중마의 선두에 서울시향이 있음을 증명해줬다고 본다.

또 하나의 이날 공연의 관전 포인트는 지휘와 피아노 연주의 두 마리 토끼를 함께 거머쥔 경기필 음악감독으로 내년초 낙점된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지휘자로서의 연착륙이다.

2021년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지휘 무대에 대해 필자는 어느 모 매체에 올해 처음 지휘 무대 포디엄에 선 김선욱이 본업인 피아노연주를 관두고 본격 지휘자 세계로 뛰어든다는 것은 현재로선 너무 앞서가는 얘기가 될 것이다. 2020년 정명훈 지휘의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와 함께 녹음한 브람스 피아노협주곡 1번 음반의 발매나 20214월에는 베토벤의 후기 피아노 소나타 3곡을 담은 신보를 발매해 BBC 뮤직 매거진으로부터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연주된 숭고한 음악이 담긴 음반이라는 찬사를 받은 그의 최근 행보를 봐서도 그렇다.”고 기고한 적이 있다.

그러나 김선욱이 킬릴 카라비츠가 이끄는 본머스 심포니의 협연자이자 지휘자로 드보르자크 첼로협주곡과 브람스 교향곡 2번 무대를 선보였고 9월에 마드리드 엑셀렌티아 재단과 베토벤 프로그램으로 스페인 관객을 찾은 것을 비롯, 지난 6월에는 마카오 오케스트라와 지휘로 데뷔한 것을 보면 지휘자 행보가 김선욱에게 심상치않은 페달을 밟고 있음을 감지하게 된다.

지난해 20221216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베토벤 교향곡 9합창을 지휘, 낙상(落傷) 사고로 국내에 들어올 수 없었던 상임지휘자 오스모 벤스케 대신 대타로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급히 섭외된 것 치고는 악보에서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것 같았다는 리허설 기간도중 베토벤 교향곡 제9합창(Choral)’ 지휘를 앞둔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술회를 감안해볼 때 그의 지휘에 대한 갈망이나 관객들의 반응 역시 만만치 않았다.

현재대로의 피아니스트 김선욱의 지휘에 대한 열정이라면 피아니스트로서 출발해 지휘자로 본격 전향한 국내 아티스트중 대표격인 정명훈이나 외국 아티스트인 아르헨티나 출신의 다니엘 바렌보임과 미하일 플레트네프 같은 행보의 코스를 향후 점쳐보는 것은 너무 앞선 지나친 비약(?)일까 하고 생각해보게 된다.

“<잠미의 기사> 모음곡, 서울시향의 최근 연주사이클에서 르네상스의 서막 알려주는 듯

연주내용에 있어서도 꺽이지 않는 중마의 마음으로 무장한 서울시향 단원들과 의욕으로 채워진 신예 지휘자 김선욱이 가세한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부터 열띤 연주회 분위기로 달아올라 외국 교향악단들의 내한무대 열기에 못지 않았다.

실내악을 기반으로 해 같은 아티큘레이션과 같은 프레이징, 같은 다이내믹을 공유하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부터 연주내용을 뜯어볼 때 모차르트는 형식은 관련이 있지만 내용은 완전히 대조적인 걸작들을 많이 남겼다. 1785년에 발표한 피아노 협주곡 21C장조(K467)는 그 전신이라 할 수 있는 D단조를 작곡한 지 한 달 만에 완성한 곡이다. 두 곡은 교향곡적 일관성, 구조의 독창성과 (호른, 트럼펫, 팀파니를 활용한) 관현악의 힘도 흡사하지만, 극적인 임팩트는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로 완전히 다르다. 강렬하며 육감적인 K467은 너무나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데 서울시향과 김선욱이 강렬하며 육감적인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제21번을 만들어내는 데서 전반부 연주부터 열기가 달아올랐다.

사실 이날 김선욱이 후반부에 선보인 서울시향의 연주 레퍼토리들,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장미의 기사. 모음곡> 역시 유럽 클래식 무대에 갖다놔도 손색없을 레퍼토리들. 슈트라우스의 죽음과 변용은 죽음의 너무 어렵고 철학적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주제를 김선욱의 optimistic한 지휘의중이 반영돼 다양한 주제들과 탐미적인 선율들이 탁월한 관현악 기법을 통해 다채롭고 극적으로 펼쳐내는 연주를 펼쳐보였다.

구조적으로나 조형적으로도 완벽한 이 작품은 크게 죽음에 직면한 사람을 표현하는 Largo와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Allegro molto agitato,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Meno mosso, 변용의 모티브가 등장하여 현실의 삶 너머의 세계를 그리는 Moderato, 이렇게 네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 너머의 감정의 소용돌이로 감정이 들어있는 연주를 전하겠다는 지휘 김선욱의 바램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진 느낌이었다.

서울시향의 마지막 연주곡 슈트라우스의 <잠미의 기사> 모음곡도 서울시향의 최근 연주의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려주는 듯 싶었다. ‘장미의 기사 모음곡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한 전 3막의 오페라 장미의 기사, Op.59(Der Rosenkavalier)의 악곡 일부를 발췌하여 쓰인 단일 악장의 작품. 모음곡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이 작품은 오페라에 등장하는 7개의 장면과 장면마다 흐르던 악곡이 끊이지 않고 연주되는 단일악장으로 쓰여있는 특징을 갖고 있는데 죽음과 사랑,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음악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주게 하는 음악 너머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아름다움이 전해졌다.

(: 음악칼럼니스트 여 홍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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