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리핀은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루손, 비사야, 민다나오 세 지역으로 나뉘며, 우리가 흔히 세부라 부르는 곳은 바로 비사야 제도의 중심 섬이다. 세부시티에서 북쪽으로 배를 타고 이동하면, 작은 점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섬 말라파스쿠아(Malapascua)에 닿는다. 길이 2.5km, 폭 1km 남짓한 작은 섬이지만, 다이버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성지다.
말라파스쿠아의 이름은 ‘불행한 크리스마스’라는 뜻을 지닌 스페인어에서 유래했다. 옛날 폭풍우 속에서 표류하던 스페인 선원들이 크리스마스를 이 섬에서 맞으며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금 이 섬은 다이버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목적지다.
환도상어를 만나는 바다
말라파스쿠아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환도상어다. 길게 뻗은 꼬리로 유명한 이 상어는 보통 수심 200m 이하의 심해에 서식하지만, 이곳 모나드 숄(Monad Shoal)에서는 일출 무렵 얕은 바다로 올라와 청소 물고기들의 도움을 받는다. 다이버들은 새벽 배를 타고 나가 바다 밑에서 장엄한 장면을 목격한다. 몇 미터 앞을 유영하는 거대한 상어와 마주하는 경험은 말 그대로 경이롭다.
이 외에도 작은 만다린 피시의 짝짓기를 볼 수 있는 '선셋 다이빙’, 가토 섬의 동굴 구경, 바다 거북, 다양한 산호 어종들이 여행자를 기다린다. 바다 속은 늘 다른 얼굴을 보여주기에 며칠이고 머물러도 지루하지 않다.
섬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섬의 인구는 약 5천 명. 육로가 없어 오토바이 트라이시클이나 작은 배가 주요 이동 수단이다. 관광객을 위한 리조트와 다이빙 숍이 늘어서 있지만, 뒷골목에서는 아이들이 공을 차고, 주민들이 바닷가에서 그물을 손질한다. 현대적 편의와 전통적 삶이 공존하는 풍경이다. 전기가 제한적으로 공급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대부분의 리조트에서 24시간 전기가 들어오고, 인터넷도 어렵지 않게 연결된다. 다만 민물은 귀해 샤워 물줄기가 약한 것은 감수해야 한다.
드래곤제이원 리조트, 한국인의 거점
섬 한켠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드래곤제이원 리조트 & 다이브 센터’가 있다. 다이빙 보험, 민물 샤워, 와이파이, 그리고 다이버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자체 전기 제동기까지 갖춘 곳이다. 자체 수영장과 카페도 있는 데다가 한국인 강사들이 상주하고 있어 초보자도 안심할 수 있으며, 새벽 다이빙과 깔랑가만 섬 투어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식사와 환전까지 도와주니, 말라파스쿠아에 처음 발을 딛는 여행자들에게는 든든한 거점이 된다.
여행자를 위한 팁
세부 시내에서 차로 4시간, 다시 배로 30분. 쉽지 않은 길이지만 도착 후 마주하는 바다의 매력은 그 모든 수고를 잊게 한다. 체험 다이빙 위주라면 2박 3일, 본격적인 다이빙 여행이라면 최소 5~7일은 머무르는 것이 좋다. 무엇보다 바다는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환도상어든 작은 해마든, 만남의 순간은 언제나 우연에 가깝다. ‘꼭 봐야 한다’는 기대보다 ‘어떤 모습이든 받아들인다’는 태도가 여행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
말라파스쿠아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다. 바다와 인간이 공존하는 현장이자, 우리가 잊고 살던 자연의 리듬을 다시 배우는 학교 같은 곳이다. 바다 위의 작은 점 같은 섬에서, 오히려 거대한 세계와 맞닿게 되는 경험. 그것이 이 섬이 다이버들을 끊임없이 불러들이는 이유일 것이다.
![[글] 여행전문가 이민혜 (콜콕 대표)](https://cdn.mhns.co.kr/news/photo/202509/725636_846432_513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