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 홍정선 교수의 '염상섭의 만세전과 삼대'

   
홍정선 인하대 교수


[문화뉴스]
우리 사회 석학들과 현 시대의 사회문화를 조망하는 '네이버 열린연단 :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가 드디어 '한국 현대 문화'를 다룬다.

지난 16일 안국빌딩 신관 4층 W스테이지에서 열린 강연은, 시리즈 마지막 주제인 '한국 현대 문화'를 작가 염상섭과 그의 대표작에 대한 강연으로 포문을 열었다. 염상섭은 한국의 식민지 시대에 대한 '객관적 기록'을 소설에 녹여낸 작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만세전'과 '삼대' 등이 있다. 전체 강연은 인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 홍정선의 강연 이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과리의 토론으로 구성됐다. '문학과 지성사' 기획위원을 거쳐 현재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사 및 인하대 교수로 재직 중인 홍정선 강연자는 강연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던졌을까?

시대에 대한 기록으로서의 소설
홍 교수는 염상섭의 대표작 '만세전'과 '삼대'를 식민지 시대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라고 전한다. 그는 염상섭을 이기영과 최서해와의 비교를 통해 당파적 입장을 떠나 비교적 편견 없이 당대의 한국 사회를 그렸다고 밝힌다.

염상섭은 비록 자발적 선택이긴 하지만, 자신이 살았던 시대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에 소설가가 됐다고 한다. 1920년 그가 동아일보에 남긴 글 '생활의 성찰'에서는 "일체의 긍정 아니면 일체의 부정, 이 이외에 어떠한 다른 입각지를 예상하는 것은 사람의 견딜 수 없는 고통"이라며, "서로 모순되는 자기분열, 음담한 내적 고투, 이 모든 비극은 여기서 발표하는 것일까 합니다"라고 밝혔던 것이다. 염상섭은 자신의 소설적 출발을 불행한 시대를 불행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에서 시작했다.

'만세전'은 그의 소설적 출발을 여실히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원제가 '묘지'였던 '만세전'은, 자신이 조선인이라 의식하지 않았던 일본 유학생 이인화가 고국으로 돌아가며 자신의 정체성을 불가피하게 느끼게 되는 심리적 묘사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마지막에는 "이게 산다는 꼴인가? 모두 뒈져버려라!",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라는 외침으로 염상섭 자신이 품고 있던 조선 민족에 대한 탄식을 담아냈다.

 

   
 

당대 사회를 대변하는 다양한 인간 유형
홍 교수는 "염상섭은 '삼대'를 통해 식민지 사회의 모습을 비교적 입체적으로 보여 줄 수 있는 다양한 인물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전한다. 작품은 가족의 역사가 아니라 삼대를 구성하는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의 긍정, 부정적인 행태와 이들과 관련된 여러 인물들의 행태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각각 당시의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대변하던 조덕기와 김병화가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홍 교수는 조덕기를 묘사한 염상섭의 시선에 주목한다. "사회주의자인 김병화보다도 민족주의자인 조덕기란 인물이 훨씬 더 생동감 있게 그려진 것은 그의 애정과 관심이 조덕기 쪽에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뿐만 아니라, 염상섭이 작품에서 가장 부정적으로 그린 인물은 아버지 조상훈이라 얘기하며, 아들인 조덕기의 눈에 조상훈은 "경제적으로는 할아버지에게 의존하면서도 애욕에 사로잡혀 축첩을 일삼고 도박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춰진다고 전한다.

인간의 내면세계에 대한 관심의 확대
홍 교수는 한국 소설의 발전에 기여한 염상섭의 가장 큰 공적 중 하나로 "개인의 내면세계를 소설의 주요한 관심사로 끌어들여서 이에 대한 묘사를 발전시켰다"는 사실을 지목했다. '만세전'에서는 이인화의 여행을 통해 개인적인 사건과 사회전체의 모습이 어떻게 맺어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 핵심이라 한다. 소설의 전개 과정은 식민지 사회의 여러 전통과 문화를 드러내고 있다. 축첩과 조혼 제도, 전통적인 가족 관계, 당대 식민지 사회에 확산되는 자유연애 등을 그 예로 꼽는다. 이를 통해 "염상섭은 한 개인의 내면세계에 개입해 들어온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진지하게 소설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은 사람"으로 평가받아야 함을 역설한다.

 

   
 

염상섭을 다시 바라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그가 소설가로 살아가던 당시의 상황, 그리고 그 상황이 어떻게 그의 작품 '만세전', '삼대'와 긴밀한 연관을 맺어 가는지를 발견했다. 뤼시엥 골드만은 '소설 사회학을 위하여'에서 이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작품치고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없으며, 소설이란 장르는 개념화되지 않은 감정적 불만과 질적인 가치를 추구하려는 감정적 욕구가 사회의 모든 계층에 누적되어 있거나 소설가가 속한 중간 계층에서만이라도 상당량이 누적되어 있을 경우에만 발견될 수 있다"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려 했던 염상섭은 당대 사회를 대변하는 여러 인물의 유형을 소설 속에 녹여내고, 그들의 내면세계로 관심을 옮긴다. 개인의 내면을 통해 사회를 비췄던 염상섭의 소설을 되짚어보는 시간은, 한국의 식민지 문화를 살펴보며 당시를 살고 있는 예술가들의 역할을 집요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준다.

한편, '한국 현대 문화'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네이버 열린연단 '문화의 안과 밖' 강연 시리즈는 앞으로 3번의 강연을 앞두고 있다. 오는 23일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강연하는 <서정주 '미당 시 전집'>, 30일 이남호 고려대 교수의 <김동인, 이태준, 김유정, 김동리 '단편선'>, 다음 달 13일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의 <김소월 '진달래꽃', 정지용 '정지용 시 전집'>이 남았다.

[글] 문화뉴스 장기영 기자 key000@mhns.co.kr
[사진] 네이버 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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