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22일부터 23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열려

   
▲ 필립 글래스가 22일 오전 LG아트센터 VIP라운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문화뉴스] "영화를 가지고 새로운 형식의 콜라보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 예술사에 미니멀리즘을 제시하며 대중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아우르는 데 성공한 작곡가 필립 글래스가 자신의 1994년 작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La Belle et la Bete)'로 2003년 이후 13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37년에 태어난 필립 글래스는 골든글로브상에 빛나는 '트루먼쇼',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후보에 모두 올랐던 '디 아워스'를 비롯하여, 마틴 스콜세지 감독 작품인 '쿤둔',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 등에 이르는 40편의 영화음악 작곡가로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일찍이 1960-70년대에 단순한 프레이즈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강렬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미니멀리즘을 확고히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오페라, 극음악, 심포니, 실내악 등에서 로버트 윌슨, 라비 샹카, 데이비드 보위에 이르기까지 20~21세기에 큰 발자취를 남긴 예술가들과 장르를 초월하여 작업하며 현대예술의 경계를 끊임없이 넓혀왔다.

또한, 그는 지난해 10월 광주 아시아예술극장에서 공연된 로버트 윌슨의 5시간짜리 오페라 '해변의 아인슈타인'의 음악을 맡은 바 있다. 특히, 20세기에 탄생한 '영화'라는 예술 매체에 심취한 필립 글래스가 1980년대 미국의 컬트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갓프리 레지오의 '코야니스캇씨-균형 잃은 삶'으로 시작한 영상과 음악의 혁신적인 결합은 1990년대 '장 콕토 3부작'에서 절정의 미학을 탄생시켰다.

22일과 23일 LG아트센터에서 열리는 '미녀와 야수' 공연을 앞두고 22일 오전 LG아트센터 VIP라운지에서 필립 글래스 작곡가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필립 글래스는 "2003년에 한국에 온 이후, 도시가 다르게 느껴진다. 현대적인 모습을 갖춘 것에 칭찬하고 싶다"며 입을 열었다.

2003년 LG아트센터에서 필립 글래스의 '캇씨'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인 '코야니스캇씨-균형 잃은 삶'(1982년)과 두 번째 작품인 '포와콰씨-변형 속의 삶'(1988년)이 '필립 글래스(Philip on Film)'라는 제목으로 공연된 바 있다. 필립 글래스는 "영화와 음악이 상업적으로 치중되지 않은 작업을 하는가에 대한 주제의식을 다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20세기 초의 '르네상스맨'으로 다방면에서 천재적인 예술혼을 펼쳐 보인 장 콕토의 예술세계를 깊이 존경해온 글래스는, 동화의 판타지를 한 편의 시처럼 구현하여 큰 성공을 거둔 콕토의 흑백 고전 영화 '미녀와 야수'(1946년)에서 예술 창작의 본질을 읽어냈고 여기에 자신의 음악적 천재성을 불어넣어 영상의 보조로서의 음악이 아닌, 음악이 영상을 주도적으로 끌고 가는 필름 오페라라는 형식으로 탄생시켰다.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는 대사와 음악 등 모든 소리가 완전히 제거된 장 콕토의 흑백영화가 무대 위에 상영되는 가운데, 필립 글래스가 새롭게 작곡한 음악을 필립 글래스 앙상블이 연주하고 4명의 성악가(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테너, 바리톤)가 배우들의 대사에 맞춰 노래하는 특별한 형태의 공연이다. 95분간 마치 흑백 오페라를 라이브로 보는 듯한 이 작품은 초연 당시부터 오페라와 영화의 신선한 결합, 새로운 양식의 탄생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독특한 공연관람의 세계를 펼쳐 보였다. 필립 글래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작품에 대해 소개를 해 달라.
ㄴ 다수의 발레 오페라 작곡을 했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영화음악 작업을 시작해 약 40편 영화의 음악 작업을 했다.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분들은 내 나이 정도면 한 90편 정도의 영화음악을 작업했을 것이다. 보통 작곡가들은 어떻게 음악을 영화에 접목할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한다. 대부분 영화 작업엔 음악 작업이 후반부에 자리 잡게 된다.

'캇씨' 시리즈를 할 땐 다르게 시도해서 영화와 동시에 음악을 작업했다. 그래서 굉장히 공식화된 작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업방식을 찾는 것에 집중했다. 내가 작업한 40편의 영화 중 약 10편의 영화가 굉장히 다른 방식으로 작업한 영화다. 처음엔 영화 프로젝트를 시작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부탁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구상해서 전시나 다른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장 콕토의 '미녀와 야수'에 대해 소개를 하겠다. 1946년 영화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만들어진 영화다. 내가 파리에서 음악 공부를 1966년에 마무리했는데, 그래서 프랑스어를 꽤 잘한다. 프랑스 영화 역사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파리에 있는 영화관에서 학습 기회를 많이 지원해서 적은 돈을 가지고도 영화를 많이 만들었다.

그때부터 장 콕토의 영화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그래서 3편의 영화를 가지고 장 콕토 3부작을 만들게 됐다. '오르페'(1993년), '미녀와 야수'(1994년), 그리고 '앙팡 테리블'(1996년)이다. 이전 작업을 고려하면 혁신적인 작업이다. 세 영화를 가지고 새로운 형식의 콜라보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를 공연이나 댄스 등 새로운 장르와 접목한 작업을 했다. 세 가지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작업 됐지만, '미녀와 야수'는 오페라 형식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 필름 오페라 '미녀와 야수' 공연 모습

영화 시나리오가 어떤 시점에 나오는지 측정해봤다. 그래서 30개의 장면으로 영화를 나눠봤다. 각 장면이 2분에서 2분 30초 걸렸다. 짧은 장면을 이어붙이는 것은 보편적인 영화 작업인데, 각 장면으로 악보를 펼치고 메트로놈도 사용하면서 각각의 음이 얼마나 긴지 측정하고, 그 음에 단어를 붙였다. 그래서 각 단어와 음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입 모양과 딱 맞게 했다.

그 작업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약 2주가 소요됐다. 빨래를 하나씩 펼쳐놓는 작업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각 단어에 맞는 멜로디를 만들어냈다. 굉장히 논리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 하나하나를 오케스트라에 맞춰 붙여나갔다.

이 과정은 흥미롭고 굉장히 쉬운 작업이라 이후에 아무도 이 작업을 시도하지 않은 것에 놀라웠다. 다음엔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서 목소리를 입히고 영상을 합쳤다. 오늘(22일) 밤 음악감독을 하는 마이클 리스만과 가깝게 작업했다.

작업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원했던 것처럼 정교하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영상을 보면서 각각의 단어와 음이 배우들의 입 모양과 가깝게 되도록 노력했다. 어떻게 보면 연기가 두 단계로 이뤄진다. 영상의 배우 모습과 무대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오페라 가수의 모습이다. 이런 방식이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어떤 방향을 보일지 궁금했다.

오늘 밤에도 비슷한 반응이 나올 것이다. 노랫소리가 영상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데, 관객들이 6분 정도 시간이 흘러야 이해를 한다. 일반적으로 관객들이 다 함께 한순간에 알아차리게 된다. "아 바로 저거구나"라는 것이 들리는 듯했다. 굉장히 놀라운 경험이었다.

아이디어에 대한 반응과 결과가 어떤지 궁금했다. 85분에서 86분 남짓 되는 영화 말미에선 관객들이 오페라 가수가 노래 부르는 것과 영상 보이는 모습을 합쳐서 작품을 인식하게 된다. 공연할 때 성악가들은 영상에 나오는 배우처럼 입지 않고, 콘서트 복장으로 관객 앞에 선다. 영상에서 배우들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페라 가수는 서로 교감하면서 공연하게 된다.

   
 

영화 작곡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ㄴ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나중에 작곡가가 되면서 영화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의아하게 생각한 것은 왜 연기가 음악과 별개로 다뤄지는 가였다. 한 다섯 편에서 여덟 편 정도 실험적인 영화를 했다. 라이브 음악을 영화와 접목한 시도가 상업적이지 않았지만, 성공적인 시도였다. 상업영화도 많이 작곡해 3편의 아카데미 후보작이 있다. LA에서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작곡가가 있는 모임에 참여하게 됐다. 그들이 영화와 음악이 다른 점이 무엇인가를 질문해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나는 브로드웨이에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하는 등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분야에서 작업했다. 이런 작업을 하면서 음악이 변화하는 것은 관객의 변화와 장소에 따라 변수가 있다고 본다. 할리우드에선 8,000명 관객 앞에서 공연도 했고, 75명의 관객 앞에서 하는 공연도 있었다.

일상생활에서도 느끼지만, 수천 수백 명 사람과 앞에서 대화할 때와 개인적 대화를 나눌 때 말투가 달라지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내가 전하는 음악의 의미는 같지만, 표현의 방식은 달라진다. 또한, 3일 동안 멕시코에서 온 인디언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면서 다른 음악적 경험을 했다. 이런 만남이 나에게 좋은 자극제가 됐고 앞으로 좋은 작업을 하도록 노력하고 있다.

   
▲ 필립 글래스가 영화 음악을 맡았던 주요 영화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쿤둔', '트루먼 쇼', '스토커', '디 아워스'.
'미녀와 야수'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ㄴ 내 작업은 일종의 이미지인 영상을 기반에 둔 작업이다. 이미지는 영화나 연극, 이야기 등에서 따올 수 있다. 공연엔 네 가지 요소가 기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상 이미지, 동작, 텍스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댄스 컴퍼니와 여러 투어를 할 때 다양한 크기의 무대를 마주하게 된다. 무용수들은 무대 크기에 맞춰 동작을 조율해나간다. 음악도 미리 작곡된 것이지만, 작은 무대에선 좀 더 빨리 진행되고, 큰 무대에선 좀 더 천천히 연주되는 등 다양한 조율을 할 수 있다.

기술적인 측면을 떠나 작곡가가 주어진 작품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중요한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훈련을 통해서가 아니라 연습을 통해 얻어진다. 100편이 넘는 발레 오페라를 통해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리고 본능적이고, 영감적인 반응을 토대로 작업하게 된다. 내가 받은 기술적인 트레이닝도 도움이 됐지만, 작곡가와 콜라보레이터가 어떻게 예술적 영감을 끌어들일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장 콕토는 어떤 예술가인가?

ㄴ 장 콕토는 시인일 뿐 아니라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모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다방면의 재능이 있는 사람을 보면서, 그의 작업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물론 장 콕토와 한 번도 만난 적은 없다. 젊은 시기에 장 콕토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을 하면서 함께 작업했거나, 그를 만난 사람을 만나게 됐다.

단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지만, 내 인생에 중요한 사람이다. 3개의 작품으로 장 콕토 3부작을 했다. '미녀와 야수'는 1994년에 만들어진 작품이다. 22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매해 공연되고 있는 작품이다. 콕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질적인 내면을 자신의 관심으로 잘 표현한 아티스트라 생각한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사랑, 갈등 등 인간의 측면을 잘 표현했다. 이 작품을 하면서 매해 저작권료를 콕토 측에 지급하고 있다.


▲ 박찬욱 감독이 필립 글래스 작곡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LG아트센터 공식 유튜브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 등 상업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은?
ㄴ 선택을 하기보단 전화가 와서 같이하겠냐는 제안을 하면 프로젝트가 시작한다. 오페라나 교향곡보단 다수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상업영화가 금전적으로 이익이 된다. 즐거운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음악 작곡가로는 LA 할리우드에서 일하면서 자주 활동하는데, 재능있고 흥미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지금은 상업영화를 많이 하지 않는다. 1년에 한 편 정도 하고 있다. 우디 앨런이나 마틴 스콜세지 등 유명감독과 작업 했고, 한국의 박찬욱 감독도 같이했는데 내일 만날 것 같다. 이런 영화감독들도 상업적 측면을 전혀 배제할 수 없지만, 그들도 능력 있는 예술가들이라 생각하고 있다.

데이비드 보위 등 대중음악과도 교류했다.

ㄴ 어린 시절 나는 뉴욕이 아니라 메릴랜드주 불티모어에서 자랐다. 아버지 레코드 가게에서 일하고 보냈다. 아버지 가게서 일했기 때문에, 금전적 보상은 아니더라도 당시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들으며 자랐다. 그래서 흥미를 느끼게 됐다.

데이비드 보위와 브라이언 이노는 1970년대 런던 왕립예술학교 공부를 하면서 만나게 됐다. 그러면서 뉴욕에서 다시 만나 작업을 하게 됐다. 다방면 음악에 관한 관심과 흥미가 사그라지지 않아 계속해서 작업했다. 데이비드 보위의 앨범에 영향을 받아 1992년 교향곡 1번 '로우'와 1996년 교향곡 4번 '히어로즈'를 발표했다.

다른 작곡가의 아이디어나 테마를 따와서 본인의 작품을 만드는 작업은 클래식 고전음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편적 작업이다. 데이비드 보위는 세상을 떠났지만, 브라이언 이노는 아직 살아있어서 종종 만나 다른 작품을 같이 하자는 의견도 주고받고 있다.

   
 
22년간 이 작품이 어떤 이유로 관객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ㄴ 장 콕토의 작품을 가지고 오면서, 콕토가 공연예술을 깊이 이해하고 놀라운 재능이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안에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이슈, 사랑, 죽음, 삶에 대한 질문을 얘기하는 큰 주제가 있다. 이러한 작품을 접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이런 예술작품을 만들지 못했을 거라 생각한다. 원작 이상에 크게 달라지지 않게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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