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이민혜 기자] 설 연휴를 앞두고 고전 소설 '흥부전'을 재해석해 영화화한 '흥부'(감독 조근현)가 14일 개봉한다. 영화 '흥부'는 양반들의 권력 다툼으로 백성들의 삶이 날로 피폐해져 가던 조선 헌종 14년을 배경으로 한다. 붓 하나로 조선 팔도를 들썩이게 만든 천재 작가 '흥부'(정우)는 어릴 적 홍경래의 난으로 헤어진 형 '놀부'(진구)를 찾기 위해 글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 한다. 수소문 끝에 형의 소식을 알고 있다는 '조혁'(김주혁)을 만나게 된 '흥부'는 부모 잃은 아이들을 돌보며 백성들의 정신적 지도자로 존경받는 '조혁'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깨달음과 동시에 그와 달리 권세에 눈이 먼 '조혁'의 형 '조항리'(정진영)의 야욕을 목격하면서 전혀 다른 이 두 형제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탄생한 '흥부전'이 순식간에 조선 전역에 퍼져나가게 되는데…

1988년 데뷔해 배우로서의 인생 30년에 접어든 배우 정진영이 '흥부'에서 '놀부'의 실제 주인공인 '조항리' 역을 맡았다.

문화뉴스가 '흥부' 개봉을 앞두고 배우 정진영을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영화 '흥부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보고 어땠나?

ㄴ 다 아는 '흥부전'을 모티브로 한 영화이다. 다 아는 이야기와 흥부의 이야기가 잘 결합이 될까 시나리오를 봤지만 궁금했는데 이 이야기대로의 대비된 두 형제의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아는 흥부의 뺨 때리기, 제비, 박 이런 것들이 잘 살아있어서 재밌게 봤다. 그 부분들이 우려하는 부분이었다. 섞어버리면 말 자체가 안되니까. 그런데 매끄럽게 연결이 돼서 그런 걸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국정농단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떤 부분에서 모델로 삼았는지?

ㄴ '조항리'라는 역을 의뢰받고 그냥 야심가로 가는 것은 재미가 없을 것 같았다. 용의주도하고 때로는 교활하고 때로는 천박한 그런 것들이 같이 어우러지는 인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년 사이에 여러 가지 일을 봐서 그게 다 합치면 하나의 인물이 되겠다 생각했다. (실제로 대본에 'ㅊ+ㅇ+ㅂ=조항리'라고 써두기도 했다고 한다) 어떤 인물을 연기할 때 그게 뜬금없을까 봐 걱정하는데 베이스가 있어서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어떤 부분에서 마음에 들고 참여하고 싶었나?

ㄴ 시나리오를 일찍 받았는데 다른 작품을 찍고 있는 중이어서 답을 결정 못 하다가 어떤 식으로 역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 감독님께 제안했다. 인상만 쓰는 사람은 매력을 못 느낀다고 했다. 그게 재밌겠다고 하셔서 그때 하기로 결정했다. 바로 답을 못드리고 오래  걸렸다.

연기하는 것 보면서 소품 적으로 인상 깊었던 것이 감투였다. 커다란 감투에서 부와 권력의 상징이 느껴졌는데 촬영하면서 무게감이나 느낌이 연기할 때 어땠는지?

ㄴ 말총으로 만든 거라 무겁지는 않았다. 실제 크기로 과장한 것이 아니었다. 여러 크기가 있다. 의외로 실제 감투임에도 불구하고 '조항리'라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데 있어서 엑센트가 되는 것 같다. 미술팀에서 확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권력에 눈이 어둡다고 해도 그 상황과 결과 부분에 아쉬움이 있었다.

ㄴ 시나리오 보면서 엔딩이 어떻게 맺어질 줄 알고 찍었고 그렇게 죽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조항리'라는 인물의 끝이 그거였다. 원래 흥부전의 주제가 권선징악이듯이 이것도 권선징악이다.

현장에서 주연 배우분들 중에 가장 큰 형님이다. 촬영장에서의 기준점이 되는 역할을 했을 것 같은데 후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ㄴ 주혁이나 정우하고는 붙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오히려 일파 쪽 하고 '김응집'하고 만나는 부분이 많다. 엔딩쪽에 다 모이는데 그때 워낙 정신이 없었다. 나이 많은 선배 배우라고 해서 특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 동료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는 것이 제일 좋다고 생각한다. 각자 연기를 준비해서 오는데 이래라저래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그러면 상대방이 준비해온 것을 흔들게 되고 어중간하게 된다. 감독하고 다이렉트로 이야기하는 것이 낫다.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했고 합 맞춰가면서 했다. 현장에서는 선배, 후배 없이 다 동료일 뿐이다.

 

'헌종'으로 나온 정해인이 요즘 대세인데 그때 당시엔 잘 몰랐을 것 같다.

ㄴ 현장에 쭉 서 있는 팬들이 있었는데 다 해인이 팬이었다. 간담회 갈 때 등퇴장로에 해인이 보러 온 팬들도 많았다. 이렇게 해인이도 나도 안 지는 얼마 안 됐으나 오랜 세월 꾸준히 해온 친구이다. 인기를 얻어서 좋은 것도 있겠지만 꾸준히 해온 것에 대한 노종 중 하나이기 때문에 좋다. 갑자기 된 애 아니다. 얘기 들어보면 오랫동안 해온 친구이다. 고등학생처럼 보이지만 나이가 꽤 있다. 해인이 다음에 드라마도 찍고 있는데 좋은 일이니 아주 축하해주고 격려하고 있다.

'조항리' 모습대로 표현하고 싶다고 했는데 톤을 어떻게 맞췄는지 궁금하다. 악한 면도 강하게 주고 동시에 웃음도 주는데.

ㄴ 악당이다. (웃음) 이 사람은 사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으로 연기 고안을 했다. 조금씩 편집하다 보니 잘리긴 했는데 굉장히 재밌게 했다. 감독님하고 현장에서도 죽이 잘 맞았고 '조항리'를 만들어가는 데 있어서 굉장히 재밌게 찍었다.

 

'김응집'과의 대립이 있는데 '조항리'와 '김응집'은 악인에 있어서 차이가 어떤 것인가?

ㄴ 영화 속에서 묘사된 것은 이야기상으로 가문의 차이인데 굳이 표현하자면 기득권 내의 주도권 싸움이다. 차이를 서로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 서로 대립하는 부분에서 워낙 김원해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다 보니 붙으면 톤을 쫙쫙 높여놔서 재밌었다.

김주혁이랑은 형제이지만 전혀 다른 역인데 촬영하면서 어땠나?

ㄴ 주혁이랑 직접 붙는 장면은 몇 장면 안 된다. 좋은 배우이고 선한 사람이고 멋있는 배우이다. 우리가 아는 그의 모습 그대로이다. 사고당하기 일주일 전쯤에 포스터 촬영한 것이 본 게 마지막인데 그때는 촬영 다 끝났으니 이런 저런 얘기하고 그 친구랑 아주 재밌게 계속 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허망하다.

 

사고사 관련 기사를 쓰면서 울컥했었다. 기자들에게도 특별했는데 동료나 배우로서 더 그랬을 것 같다.

ㄴ 허무하다. 영화 홍보하고 그러면서 주혁이 얘기하는 것이 조심스럽다.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긴 한데 자꾸 얘기하는 것이 고인에게 누가 될까도 조심스럽고 한편으로는 그걸 너무 마케팅 적으로 볼까 봐 조심스럽다. 엊그제 때 시사회에서 '살아있는 우리 옆에 있는 우리 배우 김주혁으로 생각하자'고 했던 게 그런 의미에서 부탁한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잘 안된다. 영화 보면서 관객들도 애써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어려운 부탁이고 바람이다. 영화 속에서 우리는 같이 있고 같이 있을 것이다. 겹쳐 보이는 것이 관객분들에게도 어려울 것 같다.

조선판 '1987'을 보는 느낌도 들었다.

ㄴ 그렇다. 근데 사실 이 영화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만든 것은 아니다. '1987', '강철비', '택시 운전사' 등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영화들이 있지만, '흥부'는 '흥부전'을 모티브로 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든 형식, 변주의 형식이 이 이야기의 본질이 아닐까 생각한다. 형제의 모티브를 가진 자와 백성의 이야기를 구도로 수천 년 동안 인류가 해온 이야기이다. 힘없고 핍박받는 백성과 그들의 삶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고위 관리들과의 갈등 등은 보편적인 이야기이다. 본래 '흥부전'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해온 이야기인데, 우리가 2년 사이에 큰 촛불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하면서 같이 느꼈기 때문에 그게 더 보이는 거 아닌가 싶다. 시사회 끝나고 감독님하고 제작사하고 밥 먹으면서 얘기하는데 그거를 의도하고 따오고 그런 건 아닌데 그게 투영이 된 것 같다. 우리가 공유한 역사적 경험이 맞닿아있기 때문에 더 구체적으로 보이는듯하다.

 

출연한 작품들이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들이 많은 것 같은데.

ㄴ 작품을 고를 때 꼭 사회적 메시지가 있는지 없는지를 판별하지 않는다. 물론 가산점을 주기는 하지만 결국 고르는 것은 다양한 영화를 해보고 싶어서 시도한다. 코미디라면 코미디, 공포라면 공포, 영화 자체가 주는 매력이 강하다면 영화의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런 영화를 하고 싶어 한다.

촬영장에서 의상과 분장하고 힘들었을 텐데 에피소드가 있나?

ㄴ 에피소드에 좀 약하다. (웃음) 봄에서 여름까지 찍었으니 더위와의 싸움이 있었다. 묘한 것이 촬영은 여름하고 겨울에만 하는 것 같다. 추울 때와 더울 때. 다른 것도 했는데 기억에 안 남는 것인지. 늘 그렇듯 재밌다.

'대장 김창수'(감독 이원태)는 근대사를 그렸다. 여러 역할을 해왔는데 세세한 차이를 주는 편인지?

ㄴ 작품마다 원하는 캐릭터가 있다. 톤이 다르기 때문에 작품마다 달라지기는 한다. 이 영화에서는 묵직한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지만 해학이 바탕이 되어있는 영화이다. 그렇기에 더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책을 던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CG였는지, 한 번에 간 건지 궁금하다.

ㄴ 한 번에 갔다. 들어갈 거라고 생각 안 하고 던졌다. 소품 책이라서 무게 조절 안 맞으니까 찍고 저쪽에서 뒤집어서 찍을 때 받게 하면 된다고 감독님하고 편하게 하기로 하고 찍었는데 정확히 전달됐다. 몇 번을 던졌는데 다 들어갔다. 재밌었고 좋았다. 희한하게 작품을 하다 보면 풀릴 때가 있고 안 풀릴 때가 있는데 사소하게 그것조차 풀린 작품이었다.

영화가 희망에 대해 얘기하고 꿈에 대해 얘기하는데 어떤 희망을 영화 속에 투영시키고 싶은지?

ㄴ 영화에 투영은 잘 모르겠지만 꿈과 희망에 대해 얘기하자면 당연히 있다. 사람한테는 꿈과 희망이 꼭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게 없으면 참 힘든 것 같다. 대단한 부귀영화가 안 일어나도 자기가 소망하는바, 뭘 하고 싶다든지, 다음 주에 어떤 친구를 만날 거라고 하는 것도 한 주간의 희망 아닐까 싶다. 가장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극대치의 희망이 연애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언제 보나? 언제 만나지?'에 대해 생각하면 신나니까. 요즘은 문자를 하니까 그런 게 없지만 핸드폰이 없을 때는 만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게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거 아닐까 싶다. 그런 기쁨에 의지해서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조항리'는 꿈을 꾸는 것도 죄라고 하니 나쁜 놈이다. (웃음)

 

캐릭터 여러 가지 하면서 빠져나오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지?

ㄴ 힘든 작품 할 때는 내면적으로 힘든 것이 있다. 예전보다는 빨리 빠져나오는 것 같다. '왕의 남자'(감독 이준익) 할 때는 꽤 오래 갔다. (극 중 '연산 왕' 역을 맡았다) 워낙 내면이 아주 복잡한 역이었다.

이번에 홍상수 감독과도 작은 작품을 하는데, 배우로서 어떤 부분에서 끌렸나?

ㄴ 장률 감독님하고도 '거위를 노래하다'라는 작은 영화를 준비했다. 워낙 저예산이니 제작사 돈이 없다고 해서 일주일 전에 엎어졌다. 작은 영화들만이 가지는 자유로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큰 영화를 하게 되면 제작자도, 감독도, 참여하는 배우도 부담이 있다. 특히 제작자, 감독, 투자사는 옴짝할 수가 없다. 그 큰돈을 회수 못 하면 어떻게 책임질지에 대한 압박이 엄청나다. 그거로부터 자유로운 작품은 그런 부담이 적으니까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바탕이 되는 것 같다.

 

연출이나 제작 쪽에 관심은 없는지?

ㄴ 어릴 때 꿈은 영화감독이었다. 연극에서 연출도 하긴 했지만, 직업 배우로 살면서 엄두를 못 냈다. 오랜 시간 동안 주류 영화계에서 보다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 작은 영화 경험하면서 나도 남에게 피해 안 주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얘기는 해보고 싶다는 꿈은 가지게 되었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꿈이 있다는 것으로 힘이 된다. 시나리오 썼다가 지우고 버리고 그랬는데 필요한 꿈이다. 남들에게 필요한 꿈이 아니라 영화를 못 만들어도 나에게 힘과 기쁨을 주면 너무 고마운 거다. 계획이 있다는 것은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해보고 있다. 어릴 때 꾸던 꿈이니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할 수 있다면 생각하고 준비하는 것이 즐거운 시간이다. 

관객들이 흥부를 보고 희망을 느꼈으면 하는 것과 관객에게 바라는 것은?

ㄴ 영화는 관객들이 보고 마음대로 해석할 권리가 있다. 이 영화는 애초에 생각했던 것보다 묵직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마지막에 '조혁'의 말 중에 '꿈을 꾸며 세상을 바꾼다'는 그런 말이 있는데 나를 위해서 꿈을 꿨으면 좋겠다. 이 영화의 관람 팁이 아니라 영화는 영화대로 보시고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꿈을 꾸는 것도 죄라고 하는 사람하고는 상종하지 말기. (웃음) 꿈은 정말로 중요하다.

pinkcat@mhne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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