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내 아이에게' 리뷰 外,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들

   
 

[문화뉴스] 4월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있다. 노트에 년, 월, 일의 여섯 자리 날짜를 적다가 년도 숫자를 16 대신 14로 쓰는 것. 16 뒤로 4월, 04가 이어지므로 일어나는 실수다. 다시 날짜를 이어 쓴다. 16, 04. 다음으로 날을 적자니 얼핏 기시감이 스쳐 지나간다.

마치 특정하게 준비된 날짜가 있는 것 같은 느낌. 그 모호한 착각은 뜻밖에도 곧 구체적인 기억으로 연결된다. 실수로 6을 4로 적는 게 아닌, 그대로 14년이었던 2년 전 4월. 대한민국은 거대한 사건을 겪었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해상에서는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했다.

세월호의 탑승객 476명 중 295명이 사망했으며 9명은 여태까지도 실종 상태로 남아 있다. 사건의 피해자들과 관련이 없었던 일반 다수의 사람에게서 그날의 기억은 시간이 흐른 꼭 그만큼으로 흐려져 있다. 하지만 14년 4월 16일, 그날에 멈춰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날의 기억이 흐려질 수 없는, 혹은 그날의 기억만큼은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의 세월호 추모 연극 '내 아이에게'는 140416, 여섯 자리의 숫자에 가둬져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극은 코러스가 있는 모노드라마로 구성된다. 극은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아이의 어머니가 자신의 아이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극의 유일한 진술자는 오로지 어머니 한 사람이지만, 극은 그녀 단독의 발화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어머니의 말 사이로 끼워 넣어지는 다른 배우들의 코러스는 그 당시의 광경을 묘사해낸다. 비탄에 찬 목소리, 한숨, 부르짖는 소리. 그 모든 것들은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그 시기에 겪었던 시간으로 겹쳐진다. 관객들은 "외울 만큼" 반복해서 보고, 들었던 과거의 모습이 여전히 종료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한다. 대다수 사람들이 이미 걸어서 지나친 길에, 저 바다 깊은 데서 아직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처럼, 누군가는 계속 멈춰 서 있었음을.

어머니가 딸에게 고하는 깨달음의 내용은 그 멈춰 있던 사람들의 "손을 잡아줄" 누군가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는 말한다. 팽목항, 가족의 귀환을 기다리며 함께 텐트를 치고 머물렀던 사람들, 그 "잃은" 사람들 곁에 있다 보니 그 사람들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임을 알게 됐다고, "너를 잃고서야 알게 됐다"는 고백.

어머니는 먼저 가족들을 되찾아 이별했던 다른 유가족들이 찾아올 때면, "같은 고통을 겪은 사람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몸짓의 언어에 관해 설명한다. 등을 어루만지고, 손을 매만지고, 서로 안아줄 때, 그들 사이에서는 말 이상의 언어가 자리한다. 그래서 그들은 서로의 "손을 잡아줄" 수 있다. 하지만 손을 맞잡을 이유가 그 경험적 연대에만 한정될 수는 없다.

"장애인이 되어야만 장애인의 고통을 아는" 것처럼, 자식을 잃은 뒤에야 자식 잃은 부모의 고통을 알았다는 그녀의 말은 그들 바깥, '나'가 사실은 '그들'과 유리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한다. 누구도 전적으로 불행의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나'는 팽목항의 '그들'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나'와 '그들'로 분리되었던 '우리'로서의 연대는 재확인된다. 극은 우리의 방향을 이야기한다.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는 연대"로써.

"먼저 떠난 가족들의 자리로 옮긴다. 흔히 말하잖니, 명당이라고." 천막 속에서 딸을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는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움츠러들고, 수그러져, 점점 더 축소된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반복한다. "너는 아직 안 올라왔다." 그러나 그 축소의 과정은 끝내는 인간을 향한 확장으로 이어진다. "내 아이에게" 건네던 말은, 이제 누군가의 손을 잡아줄 이유가 된다.

시간이 흘러서 먼저 떠나보낸 딸에 관한 기억이 마모된다는 가정에, 어머니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너무 괴로울 것 같아."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는 것은 틀린 말이라고, 그건 너무 아프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호흡.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오르내릴 때마다 "네가 떠오르므로" 망각은 치유의 방법이 될 수 없을 때, 어머니는 그 맞닿음을 고통 앞에 서 있을 수 있는 단서로 잡아낸 것이다.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한 학생은 마지막으로 이러한 문자를 보냈다.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유언은 마지막으로 남길 말을 "고르는" 과정을 전제한다. 그 학생은, 그 아이는 자신의 마지막 말을 사랑을 말하는 데 썼다. 웅크린 사람의 손을 잡아주는 것은 결국 그와 다르지 않다. '우리'가 기억하기를 멈추려 하지 않는 이유는 이러한 데서 비롯된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은 이따금 울음 섞인 목소리를 낸다. 아이가 태어나던, 함박눈이 내리던 날의 행복을 회상하던 어머니의 웃음에 돌연 침묵으로 균열이 생기고, "미안하다"는 말이 토해내졌듯, 그것은 연기 과정에서 불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이다. 하일호 연출은 그래서 오히려 등장인물과 배우들 간의 거리감을 유지하는 데 주의를 기울였다고 밝힌다. 배역의 지나친 이입은 관객들이 슬픔을 투명하게 들여다볼 수 없게 한다고 본 까닭이다.

극은 그 절제의 경계를 통해 슬픔을 한층 예리하게 잡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비극의 정면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며, 공감의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극단 종이로 만든 배는 이번 무대가 관객들에게 상기시킬 슬픔이, 세월호의 진실을 기억하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말을 전한다. 지금도 14년 4월 16일에 갇혀 있는 사람들의 년도가 14에서, 현재로 바뀔 수 있도록.

연극 '내 아이에게'는 예그린 씨어터에서 4월 17일까지 공연된다.

▶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들

무대는 광장으로 확장되기 위해 마련되어 있다. 공감을 나누며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말할 수 있는 광장. 세월호 2주기, 사람들은 또 어떤 광장으로 모여 세월호를 기억하고 있을까.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식들을 살펴본다.

   
 

망각의 강물을 마시기에는 아직 이르다…… '김옥선 사진전'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김옥선 사진전 '이젠 레테의 강을 건너고 싶다'가 4월 13일부터 19일까지 한벽원미술관에서 열린다.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으로 건너오는 망자가 기억을 잊게 하는 레테의 강이 사진전 이름에 걸려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현실의 삶 속에서 세월호 사건은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기억되며 또 잊히고 있는 걸까?" 김옥선 사진전은 이러한 물음에서 시작됐다. 김옥선의 작업은 은유적인 표현법을 사용하되, 올곧음에 대한 지향을 놓지 않는다. 작가는 작업 과정에서 줄곧 중심을 지키며 소통을 시도한다. 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반복적인 시각 노출로 트라우마의 중화를 꾀한다.

이번 전시는 마모되어가는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망각의 경계에서 다시 기억의 대상으로 끌어둔다. 작가는 사진을 통해 세월호 사건에 대한 기억을 환기하며, 레테 강의 '망각의 물'을 마시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버지들의 꿈은 좌초되지 않는다, 영화 '업사이드 다운'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그날에 관한 4명의 아버지와 16인의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식을 떠나보낸 아버지들이 회고하는 그날의 광경과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려는 전문가 16인의 끈질긴 노력. 영화는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한국사회의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고자 한다.

"잊지 않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기억하는 것이 최소한의 해야 할 일"이라는 한 관객의 말은, 사회적 연대의 의미를 되새긴다. "같은 아버지로서 우리 아버지들의 싸움을 힘껏 응원하고 함께하겠다"는 지지에서부터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오해를 벗고 생각을 바꾸게 된 사례까지,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잊혀가는 세월호 참사의 슬픔을 공동체 구성원들이 다시 나눌 수 있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 '업사이드 다운'은 "최소한의 할 일"에 대한 공통의 합의의 가능성을 믿는 아버지들의 꿈을 품고, 4월 14일부터 관객들을 찾아간다.

   
 

기억의 추모제

세월호 2주기를 맞아 4월 16일 오후 8시, 광진교 8번가에서 음악 밴드 및 댄서들의 추모 공연이 마련된다. 공연 관람은 무료이다. 퍼포먼스 팀 #Gestesign과 여성 팝핀팀 #Rudesoul, 그리고 12인조로 이루어진 #Laonbigband가 모여 공연을 결성했다.

이번 공연은 아직도 많은 사람이 세월호를 잊지 않고 있음을 전달하는 자리가 되도록 꾸며질 예정이다. 이번 공연에서는 본 무대와 더불어, 세월호 유가족들과 아이들에게 전달할 응원의 메시지를 모으고 있다. 메시지는 010-3203-6574 연락처로 모집 중이다.

   
 

잊지 않고 있어요…… '잊지말아요 0416'

부천시와 한국만화박물관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 전시 '잊지말아요 0416' 만화전이 부천시청 1층 로비에서 개최된다. 4월 11일부터 16일까지 세월호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만화 총 27점이 전시되며, 한국만화가협회, 우리만화연대, 한국카툰협회, 대한민국 만화인행동에서 후원했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추모에 동참하고자 하는 시민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다.

   
 

작은 일상의 거대한 붕괴가 남긴 것. 연극 '그녀를 말해요'

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는 올해 두 번째 시즌 프로그램으로 3편의 작품을 연달아 공연하는 주제기획전 '귀.국.전'을 4월 7일부터 24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선보인다. 4월 14일부터 17일간 상연되는 이경성 연출가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는 세월호를 주제로 한다.

이경성 연출가의 신작 '그녀를 말해요'는 지난해 '비포 애프터'의 연장 선상에서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한다. 전작 '비포 애프터'가 여러 인물의 기억을 통해 거시적으로 세월호 문제를 과감하게 끄집어냈다면, 이번 '그녀를 말해요'는 세월호 참사로 딸을 잃은 엄마들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을 위해서 출연진은 희생자 어머니들을 지속해서 만나 한 가정의 평범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수집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하나의 세계가 실제로 얼마나 따뜻하며 생기 넘치고 거대한 시간을 품고 있었는지 선명하게 대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뉴스 김미례 기자 prune05@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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