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우린 그저 공평한 거래를 하고 싶을 뿐이야!"

1899년 7월 21일, 미국 뉴욕의 뉴스보이(신문팔이) 청소년들이 브루클린 다리에 모였다. 이들은 조지프 퓰리처의 '더 월드'와 랜돌프 허스트의 '저널'지를 상대로 처우 개선을 바라며 파업에 돌입했다. 약 2주간에 걸친 파업 끝에, 퓰리처는 '더 월드'의 판매 부수를 줄여 뉴스보이들은 기존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 약 100년이 흘러, 1992년 월트 디즈니 픽처스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뉴스보이(원제 : Newsies)'를 만들었다. '뉴스보이 파업'을 이끌었던 '루이스 발렛'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인 '잭 켈리' 역할엔 크리스토퍼 놀란 시리즈의 '배트맨'을 연기한 크리스찬 베일이 맡았다. 그러나 1,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뉴스보이'는 281만 달러의 처참한 박스오피스 성적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등 디즈니 황금기 애니메이션을 작곡한 알란 맨켄도 나섰지만 '흥행 참패'를 경험해야 했다. 지난 2월 말, 한국을 찾은 디즈니 씨어트리컬 국제 전략부 필리페 감바 디렉터도 "영화를 찍을 당시엔 기대치가 매우 높았다"며 사람들이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니까 뮤지컬 영화도 사랑해 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세상 잘못된 생각이었다. 영화는 폭삭 망했다"고 이야기했다.
 

   
▲ 1992년 영화 '뉴스보이'엔 크리스찬 베일(맨 앞 가운데)이 출연했다.

필리페 감바 디렉터는 "워싱턴포스트가 쓴 리뷰 기사 문구인 '시대와 조합되지 않는다'는 코멘트를 아직도 기억한다"며 "우리가 시대를 잘못했나 생각했다.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담아낸 것이었다"고 밝혔다

이후 디즈니는 'Seize the Day' 넘버 가사처럼 "목소리 높여 앞으로, 용감하게 전진"했다. 비디오 발매 이후 '팬시즈'라는 말이 등장할 정도로 미국의 컬트 팬 문화로 발전했다. 실제 뮤지컬 제작 요청도 늘어났다. 결국 2011년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으로 초연된 뮤지컬 '뉴시즈'는 호평에 힘입어 브로드웨이로 입성했다. 천 회가 넘는 공연이 이뤄졌고,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다녀갔다.

그리고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서 공연되어 관객들을 찾게 됐다. 일반 대중들이 알고 있는 디즈니 뮤지컬들은 주로 디즈니 원작 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다. '라이온 킹', '알라딘', '미녀와 야수' 등이 있으며, 앞으로 '겨울왕국', '피노키오' 등이 뮤지컬로 제작될 예정이다. 결국, 마법의 세계나 말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소재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뮤지컬 '뉴시즈'는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하며, 최근 디즈니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는 '사회 문제 해결 방법'을 직접적이면서도 유쾌하게 풀어냈다. 지난 2월 개봉 후 입소문을 타며 400만 관객을 동원한 애니메이션 '주토피아'도 동물들을 통해 약자와 강자, 인종차별, 여성의 권리 신장 등 사회적 이슈를 비유적으로 보여줬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내용의 '종교자유법안'을 낸 미국 조지아주에 대해서 "월트 디즈니와 마블 스튜디오는 성차별 하지 않는 회사다. 조지아주가 종교자유법을 강행하면 영화나 TV 촬영지를 다른 주로 옮길 계획"이라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필리페 감바 디렉터의 당시 의견을 변형한다면,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가족용 콘텐츠의 대명사인 디즈니의 변화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강자에 대해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사회적 흐름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사회적인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을 다룬 이야기를 담아낸 작품은 관객들의 호평을 받는 때가 됐다.
 

   
 

뮤지컬 '뉴시즈'는 19세기 말 '뉴스보이'들의 파업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21세기 현대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에게 위로를 안겨준다. "우리가 행동해야만 그들이 들어준다"는 내용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다는 만고의 진리임을 일깨워준다.

'퓰리처'로 대변되는 '갑의 횡포'도 살펴볼 수 있다. 언론과 문화 분야의 권위 있는 상인 퓰리처상이 그의 사후에 만들어졌지만, 실제 퓰리처는 선정적 신문보도를 일컫는 용어인 '황색 언론'(옐로우 저널리즘)의 개념을 탄생시킬 정도로 독자의 시선을 끄는 범죄, 성적 추문 등을 과다 취재 및 보도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작품에선 전형적인 '꼰대'의 기질들을 보여주며, 관객들의 화를 유발한다.

또한, 여성참정권도 제대로 주어진 시기가 아니었던 당시, '커리어우먼'인 '캐서린 플러머'가 영화와 다르게 새롭게 뮤지컬에서 등장했다. 자신만의 솔로 넘버인 'Watch What Happens' 넘버를 통해 "이 땅의 낮은 목소리, 그 외침을 들려주겠어. 펜 한 자루와 카메라를 들고 싸운 여기자, 또 소년은 전설이 될 거야"라고 외치는 대목은 '캐서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 최수진(사진), 린아가 '캐서린 플러머'를 연기한다.

한편, 주요 넘버인 'Carrying the Banner', 'Seize the Day', 'Santa Fe'에선 알란 멘켄의 작곡 능력을 여지없이 들을 수 있다. '디즈니스럽다'는 표현이 진부할 지 모르겠지만, 후크송처럼 공연장을 빠져나온 후에도 넘버들은 자연스레 귓가에서 맴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야! 꼰대들 비켜라, 한물간 이 세상 바꾼다" 등의 가사에서 보여주듯이 번역도 깔끔하게 이뤄졌다.

여기에 누군가 날아다니거나, 동물이 나와서 대화를 하는 뮤지컬이 아니므로 '뉴시즈'는 배우들의 몸짓이 매우 중요하다. 'Carrying the Banner'로 본격적인 1막을 시작하는데, 약 20명의 배우가 열정적인 군무를 보여준다. 아크로바틱한 몸짓을 보면 한 편의 현대무용을 보러 온 것이 아닌가라는 착각이 들게 될 정도다.

또한, 2막 첫 넘버에선 단체 탭댄스도 등장하며 볼거리를 더한다. 공연이 끝난 후, 배우들이 땀으로 흥건해지는 장면을 보면 절로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어진다. 현재의 슈퍼스타는 없지만, 미래의 슈퍼스타를 확인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뮤지컬이다.

[글]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사진] 오디 뮤지컬 컴퍼니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