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는 항상 옳은가' 엘지아트센터서 3일간 공연

   
 

[문화뉴스] "전통을 뒤흔드는 파격의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Thomas Ostermeier)가 150분간 쉴 새 없이 달리는 연극 '민중의 적'으로 돌아온다.

세계적으로 많은 팬을 보유하고 있는 스타 연출가 오스터마이어는 2005년 LG아트센터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는데, 첫 내한작 '인형의 집-노라'에서 주인공 노라가 남편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파격적인 결말을 통해 국내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바 있다.

2010년 남산예술센터에서 '햄릿'을 선보이기도 했던 그는 2016년 5월 26일부터 28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헨리크 입센의 고전 '민중의 적'을 가지고 세 번째로 한국 관객을 만난다.

토마스 오스터마이어가 연출한 '민중의 적'은 2012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서 초연 후 런던 바비칸센터, 미국 BAM(브룩클린 아카데미 오브 뮤직)을 비롯해 독일, 캐나다, 뉴질랜드, 아르헨티나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과 주요 페스티벌에 초청,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 베를린 샤우뷔네 극장의 예술감독으로 17년째 고전과 현대극을 오가며 사회 비판적 메시지와 중산층의 위기를 담은 논란과 화제의 작품들을 발표해 온 그는 '민중의 적'을 통해 다시 한번 그의 연극 세계를 명징하게 전세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있다.

1882년 헨리크 입센에 의해 쓰여진 사회문제극 '민중의 적'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를 만나 현대적 감각으로 되살아났다. 오스터마이어는 작품의 시대적 배경을 현대로 옮겨와 주인공들을 원작보다 훨씬 젊은 30대 베를린의 힙스터로 설정한다.

오스터마이어는 원작보다 주인공들의 나이를 젊게 설정한 것과 관련하여 "베를린에는 매우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깨우친(enlightened) 젊은이들이 많다. 그러나 사회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행동을 한다거나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상황에선 매우 유약한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로 그런 젊은이들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민중의 적'이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초청을 받는 것은 "이것이 단지 독일 젊은이들에게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라 전세계 젊은이들이 가지는 공통점이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젊은 아내와 갓난 아이를 둔 스토크만 박사는 온천 도시로서 이제 막 각광받기 시작한 이 마을의 온천수가 근처 공장 폐수에 의해 오염된 사실을 알고 이를 언론에 폭로하려고 한다. 하지만 시의원인 형 피터는 관광도시로서 받게 될 엄청난 경제적 타격과, 수도관을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이 사업을 추진했던 자신의 정치적 입지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동생의 폭로를 저지하려 한다. 오염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당시에 기사화를 약속했던 신문기자들 역시 스토크만 박사의 형의 외압 속에 지지를 철회한다. 사면초가에 몰린 스토크만 박사는 '직업, 집, 앞으로의 미래'를 송두리째 잃게 될 절체절명의 순간에 관객들을 향해 외친다.

"진실의 최악의 적은 침묵하는 다수다.
이익을 위해 침묵하는 다수, 진실을 외치는 소수, 누가 민중의 적인가!"

스토크만 박사가 시청에서 군중을 모아 두고 벌이는 연설은 '민중의 적'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데, 오스터마이어는 이 장면에서 실제 관객들을 토론자로 끌어들인다.

독일, 영국, 프랑스, 미국, 호주 등을 투어하며 관객과 배우들 사이에 열정적인 토론이 펼쳐져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관객들은 배우들이 마치 진짜 정치인들인 것처럼 공격하기도 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화가 난 관객들이 배우와 30분간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관객들은 이 문제를 단지 개인의 용기나 도덕적 청렴함의 문제가 아닌,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정치, 경제적 현실로까지 그 이슈를 확장시켜 '내가 스토크만 박사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

오스터마이어는 한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라, 이런 연극적 경험을 통해 현실 속에서 "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일상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희망사항(wishful thinking)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파격적인 스토리전개, 시각적 명징함(visual clarity), 음악성(musicality)으로 관객들이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작품을 발표해 온 오스터마이어는 이번에는 무대 세트를 과감히 걷어내고 검정색 거대한 칠판을 벽으로 사용, 그 위에 젊은 부부가 살고 있는 집의 가구며 풍경을 매일매일 화가로 하여금 새로 그려 넣게 한다. 무대를 최소화하여 오로지 '텍스트의 핵심에 집중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2시간 30분 동안 관객들에게 인터미션도 없이 적극적으로 사유하게 만드는 '민중의 적'은 세계 투어를 하며 관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 냈다. 작품에 대해 한국 관객들은 과연 어떻게 대답할 지 기대를 모은다.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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