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선 배우

[문화뉴스] 대학로에 젊은 여성이 연기하는 모놀로그 작품이 등장했다.

지난 17일부터 연진아트홀에서 오픈런으로 공연 중인 연극 '모놀로그 아이(i)'는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 여성 모놀로그 작품으로 어린 시절 상처를 가지게 된 주인공 '민서'의 시점을 통해 관객에게 무언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거장들이 시도할 법한 장르인 모놀로그, 과연 '젊은 여성'인 '민서'의 이야기는 어떻게 들릴까. 또 어렵다고 소문난 모놀로그란 장르에 첫 연극 도전인 조화영 배우를 캐스팅하는 등 심상치 않은 행보를 보인 이번 작품에 대해 이양우 예술감독과 3명의 주연 배우, 김고운, 조화영, 박혜선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했다.

제목이 '모놀로그 아이(i)'인 이유는?

ㄴ 이양우: 처음에는 '모놀로그 여자'였다. 어감이 이상해서 다른 걸 찾던 중 아이(i)에 꽂혔다. 나(I)면서 동시에 아이의 성장을 그리고 싶었다.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개개인이 가진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였다. 트라우마는 잊는 게 아니라 비워내야 극복할 수 있다는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고 그런 과정에서 ‘여자’보단 순수하고, 비워내기 쉬운 ‘아이’를 택했다.

이번에도 연극 경험이 없는 배우를 캐스팅했는데 캐스팅을 하는 기준이 궁금하다.

ㄴ 이양우: 우리는 다른 극단에 비해 상대적으로 신인을 캐스팅하는 경우가 많다. 신인들은 사실 많이 부족하다. 굉장히 거칠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배우들을 누가 끌어올려 줄 것인가. 이미 자리를 잡은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하니 못할 수밖에 없고 이게 쌓여서 또 되풀이되는 악순환이 생긴다. 그렇기에 신인도 과감히 기용하는데 다만 중요한 건 '성장 가능성'이다. 자기가 배워온 것을 잠시 내려놓고 우리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사람인지를 먼저 본다. 그 이후부터 우리가 원하는 캐릭터에 맞는 이미지를 따진다.
또 한가지, 오디션에서 보는 것은 다른 사람의 대사를 가져오는 경우다. 영화나 드라마 대사를 가져올 경우엔 상대적으로 선배 배우들이 몇 컷에 걸쳐 찍은 최고의 대사를 가져오게 된다. 그렇기에 그걸 따라 하려는 경우가 많은데 오디션은 '나를 보여주는' 곳이지. 무언가를 따라 하는 곳은 아니다. 연기적인 기술이 부족해도 끼 부리는데 의존하지 않고 오디션의 긴장을 이겨내는 사람을 뽑고자 한다. 그게 된다면 이후의 캐릭터를 만들고, 이미지를 잡아주는 것은 제작진이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조화영 배우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ㄴ 박혜선: 저는 '원래 사랑하고 싶다'에서 민서 역을 하면서 연출님이 준비하시는 '모놀로그 아이(i)' 대본을 계속 봤다. 처음에는 너무 욕심나고 하고 싶었는데 대본을 보면 볼수록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작품이라서 포기했었다. 그러나 연출님이 계속 용기를 주셨고 나 자신도 계속 성장해야 하는 배우라고 느끼고 더 늦기 전에 도전하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ㄴ 김고운: 모놀로그를 할 기회가 흔치 않다 생각했고, 그런데 모놀로그였기 때문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작품을 하게 됐다.

ㄴ 조화영: 혜선 씨와 비슷하다. 오디션 공고를 보던 중 '사랑하고 싶다' 공고를 봤다. 많은 작품 중에서 나를 더 훈련할 수 있는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서 '사랑하고 싶다'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연출님이 '사랑하고 싶다' 캐릭터는 이미지와 안 맞을 것 같고 차기작의 캐릭터와 잘 맞을 것 같다며 제안하셨다. 알겠다고 어떤 작품이냐고 물었더니 '모놀로그'라고 해서 "아 제가 모놀로그를요? (웃음)". 그래도 더 배울 게 많겠다 싶어 최선을 다해 참여하고 있다.

개막을 앞두고 그간 연습해온 소감이 있다면.

ㄴ 박혜선: 한번 포기했던 만큼 정말 힘들고 화도 나고 정이 안 갈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연습에 들어가보니 연습기간이 짧았는데도 그 안에 많이 혼나고 깨지고 훈련받으며 다 싫어지는 슬럼프가 왔던 걸 극복하게 됐고 생각보다 '하면 되는구나, 칭찬받고 성장하는구나' 싶었다.

ㄴ 김고운: 역시 '모놀로그는 힘들구나' 하고 느꼈다. 무대 위에서 도망갈 곳이 없다. 매번 연기를 잘할 수는 없는데 다른 경우에는 과감하게 몇 마디 던진 후 다시 잡아갈 수 있는데 모놀로그는 다른 누군가에게 기댈 수 없으니 정리하고 가는 게 너무 버거웠다. 도망가고 싶고 '내가 괜히 한다 그랬나? 때려치우고 싶다. 아니야. 한번 넘어가면 성장할거야.' 싶고. 지금도 내가 '민서'를 완벽히 만났다 생각되진 않는다. 과정 중인 것 같다. 여러 가지로 인해 오는 스트레스도 많다. 그러나 기대되는 것은 이 도전이 끝난 후 "그래 힘들지만 좋은 도전이었어."라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싶다.

ㄴ 조화영: 신기하게 따로 말한 적은 없는데 셋 다 비슷한 걸 느낀 것 같다. 제 경우도 혼자 하는 것도 알고 대부분 경험과 연륜 있는 선배들이 "내 10대는 이랬고 20대는 이랬고 40대 50대 다 살아보니 이렇더라"하고 하시는 작품인 것도 알고 있는데 이제 겨우 2, 30대 여성들이 모여 모놀로그를 한다는 게 어려움이 있겠다는 부분이 현실로 와 닿기 시작하니까 두려웠다. 상대와의 호흡에 기댈 수도 없고, 요즘 인터넷은 또 얼마나 빠른가(웃음). 가뜩이나 저는 대학로 첫 공연이라 '내가 내 무덤을 파고 있구나. 어떡하지? 도망갈까?' 싶었다. 큰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남들은 '이 작품 별로였어'라고 말하더라도 여기서 배운 것을 통해 다음에는 더 나은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 그래도 스트레스는 크다(웃음).

2, 30대 여성을 주체적으로 내세운 작품이다. 다른 작품에 참여할 때와 차별점이 있다고 보는데 흥행이나 다른 여러 가지 부담감이 있지는 않은지.

ㄴ 박혜선: 저는 여기서 막내고 연기적인 경험도 별로 없다. 그러므로 잘 모르니까 모놀로그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큰 부담을 못 느꼈다. 아직 어려서 모르나 보다(웃음). (조화영: (박혜선 배우 가리키며) 저희 중에 천진난만함을 맡고 있다.)

ㄴ 김고운: 저는 나이 많은 배우와 젊은 배우가 더블 캐스팅으로 연기하는 모노드라마를 본 적이 있다. 수십 가지의 역할을 해야 하는 작품인데도 젊은 배우 역시 참 잘하더라. 그런데 그런 작품들이 대부분 남자 배우들을 위한 작품이어서 아쉬웠다. 또 대부분 제가 욕심나는 역할들은 남자 캐릭터가 주인공인 작품들이 많았다. 그래서 이런 작품이 무척 필요하다 생각됐는데 여자를 위한 창작 모놀로그가 쓰였다는 점에 무척 감사한다. 하지만 이런 생소한 작품은 관객들에게 익숙하지 않기에 뚜껑이 열렸을 때 비판 혹은 비난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악플 대비해서 보험에 들어야 할 것 같다(웃음). 또 주제가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기도 한데 관객들이 내 연기가 도움이 돼서 주인공에게 투영돼 자신들이 가진 상처를 작게나마 내려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ㄴ 조화영: 영화 드라마 통틀어서 지금은 남자 배우가 '대세'다. 뮤지컬, 연극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오디션 보러왔을 때 연출님이 "모놀로그는 왜 나이 많은 사람만 하는가. 왜 여배우에겐 기회가 적은가. 너희를 찾아와서 캐스팅할 수 있게끔 하고 싶다."며 작품을 쓰셨다고 하셨다. 또 한가지는 현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 혹은 여러 가지 작은 문제들부터 시작해서 지금 취업이 안 되고 결혼이 어렵고 사는 게 힘든 2, 30대들에게 그 나이 또래인 우리가 진심으로 연기해서 한 명이라도 공감해준다면 감사하지 않을까 싶긴 하다. 그런데도 괜히 시작했나 싶게 매일 부담을 느낄 만큼 어려운 도전이다.

   
  ▲ 김고운 배우

그렇다면 그런 힘든 상황에서 꺼낼 수 있는 나만의 매력이 있다면.

ㄴ 박혜선: 저는 상큼하다(웃음).

ㄴ 조화영: 혜선 씨는 귀여움을 담당하고 있다. 꼭 써달라(웃음). 에이핑크 부럽지 않다.

ㄴ 김고운: 저는 주인공처럼 삶에 있어 많은 상처를 가진 것 같다. 지금도 힘든 상황에 있고. 그래서 조금 더 '민서'의 아픔을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ㄴ 조화영: 저는 키다 크다(웃음). 학창시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대극장 세워놨을 때 멋있다고(웃음). 농담이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무거운 작품이지만 저는 어떤 곳에서도 '희'가 빠지면 안 된다 생각한다. 그래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애가 왜 이리 밝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재밌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다 생각하기에 무겁지만, 또 무겁지만은 않은 좋은 작품을 만들 거라고 기대한다.

다른 두 배우에 대해 칭찬 한마디씩 해보자면.

ㄴ 박혜선: 고운 언니는 연기적인 그림을 그렸을 때 제가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서 부럽다. 그래서 그런 부분을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화영 언니는 키다(웃음). 실제로 무대 위에서 가득 찬 느낌을 주는 비주얼을 가져서 너무 부럽다. 장난이고 무대에서 재밌는 호흡을 가지고 있어서 부럽다.

ㄴ 김고운: 젊음을 살 순 없다. 혜선이랑 11살 차이 나는데 연기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상큼했다. 나는 20대를 '연기'해야 하는데 혜선이는 그냥 그대로 하면 되니까. 또 스폰지 처럼 습득이 빨라서 좋다. 디렉팅을 주면 바로바로 받아들인다. 화영이는 타고난 감각이 있다. 연습하다 한번은 질투 나서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웃음에 대한 코드가 있다. 나는 정박이라면 화영이는 엇박이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게 있다.

ㄴ 조화영: 저는 키밖에 없나 보다(웃음). 고운 언니는 러시아에서 오래 공부했는데 정말 특이한 뭔가가 있다. 연출님이 자유방임주의여서(웃음) 뛰어놀라고 하셨는데 뛰어노는 방법을 몰라서(웃음) 나와 혜선 씨 둘 다 고운 언니 연기를 보고 틀을 잡았다. 그리고 목소리도 좋고, 연기도 섬세하다. 혜선 씨는 나이가 어려도 뭔가 배울 게 있다 느껴져서 말을 낮추지 않는다. 그렇다고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 친근함도 있다. 연기에 감각도 있고 열심히 하고 어리고 예쁘고 해맑다(웃음).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친구다.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조화영: 젊은 여자가 하는 모노드라마가 아마도 처음일 것이라고 연출님이 말씀해주셨다. 그만큼 처음이라 낯선 작품일 수 있지만 '어디 한번 두고 보자'가 아니라 '조금 못하더라도 응원해줄게'란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한다. 흠이 있는 건 알지만 그 흠을 조금이라도 채우고 싶어서 시작한 거니 냉정한 평가를 하되 '죽어봐라'하고 말씀하시지만 않으셨으면 좋겠다.

ㄴ 김고운: 그냥 마음을 비우고 와서 보고 느끼고 돌아가시면 좋겠다. '어디 여자 모놀로그 얼마나 잘하나 보자'하기보단 편하게 와서 봐주시면 좋겠다.

ㄴ 박혜선: 저는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한 만큼, 또 20대 모놀로그인 만큼 부족한 게 많아도 그런 것들을 '그럴 수 있지, 나중엔 더 성장 헀으면 좋겠다'고 봐주시면 좋겠다. 귀엽게 봐주시고 사랑해주시면 좋겠다.

ㄴ 조화영: 스물여섯이 추는 '쿵따리 샤바라'와 '흥보가 기가 막혀' 춤을 보고 싶다면 꼭 방문해달라.

ㄴ 김고운: 우리 것은 안 보면 어떡하나.

ㄴ 조화영: 하나라도 잘되면 좋지 않나(웃음).

문화뉴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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