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애매한 상황들을 만든 것도, 여자가 오해할 만하게 한 것도 분명 '그'이다. 그런데 사과해야 할 그 남자가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다. 한 주 사이 '벤츠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똥차', '암을 유발하는 남자'라는 평까지 듣고 있는 드라마 '연애의 발견', '남하진'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 잘못은 했지만 구석에 몰려 버렸으니까. 더 변명할 말도 없어진 상황에서 오히려 울컥해버린 것은 어쩌면 조금 이해해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인 '여름'이 오해하고 신경 쓰는 대상인 '안아림', 그 앞에서 오히려 그 애의 편을 들었고, 화를 냈고, 무엇보다도 '여름'을 두고 그 애를 따라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 더 이상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행동이다.

물론 알고 있다. 그가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함께 지냈던 '아림'에 대해 갖는 애틋하고 안쓰러운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잘 커 준 것에 대한 대견함, 거기에 더해 이제 알려진 비밀에 의하면, 그 애가 입양되어야 했을 집에 자신이 대신 들어가 지금껏 잘 먹고, 입고, 사랑받고, 공부하며 커 왔으니 그가 그 애에 대해 가지는 무한한 죄책감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자신의 생각과 마음에 대해 한 번도 입 밖으로 내어 설명한 적 없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전혀 모르고 있음에도 무조건 '여름'이 자신을 믿고 이해해주길 바라는 그의 생각은 너무도 자기중심적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한 '여름'의 대처는 이만하면 훌륭하다. 아르바이트를 마친 후 곧장 학교로 가야 하는 '아림'에게 '하진'이 서프라이즈 아침을 차려주다 '여름'에게 들켜버린 '연애의 발견' 7화 이후, 관련 기사에 대한 네티즌들의 반응은 꽤 격했다. 대체 저 상황에서 어떤 여자가 저리도 침착하게 넘어갈 수 있느냐고, 이미 하진과 여름 사이에 사랑이 없는 것은 아닌지, 작가님이 아무래도 연애를 안 한지 꽤 되었나 보라고 등.

나의 상황이라고 대입해 상상해보아도 이내 열이 오를 만큼, 분명 그 상황은 어떤 이유로든 이해될 수 없는 것이었다. 혼자 사는 남자가 손수 아침을 차려 집으로 어린 여자를 들여 밥을 먹인다. 어떻게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 있을까 이 상황을. 그럼에도, 여름은 침착하려 애썼다. 그 기막힌 상황에서, 최대한 차분하게 상황을 이해하려, 하지만 더는 방관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둘에게 설명하고, 경고했다. 그녀는 왜 그랬을까. 첫 번째로 사랑하는 '하진'에게 속좁지 않은 괜찮은 여자이고 싶었을 거고, 둘째로 아무 문제 없던 연인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도록 하는 것이 겁났을 테고, 마지막으로, 정말 내 오해이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관계를 '무언가가 있는 관계'로 스스로 규정하거나 인정해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잘못했다 빌고, 앞으로는 그 애를 사적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에 '그럼 당연하지 절대 안 그래'라고 고개를 끄덕인 '하진'은, 마음 한구석에 불편함을 지니고서도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오히려 나와의 약속을 왜 지키지 않았냐고 말하는 '여름'에게 왜 그런 불가능한 요구를 한 거냐며 역정을 낸다.

그가 진심으로 미안했다면, 평생의 짝이라고 생각한 여자가 의심하도록 만든 것을 반성하고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면, 그에게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보육원의 아이들을 도와주긴 하겠지만, 더 이상 개인적인 연락은 하기 어려우니, 보육원의 수녀님을 통해 연락하겠다고 할 수 있었고, 혹은 '아림'과 자신의 관계를 '아림', 그리고 '여름' 모두에게 밝혀 떳떳해지는 방법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 중 무엇도 하지 않았고, 단지 나는 너무나 떳떳한데 왜 의심을 하는 거냐며 서운해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여기서 '헤어지자'며 그와의 관계를 끝내버리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여름'은 생각하고 다시 이해해야 한다. 이 남자가 왜 이러고 있는 것인지를.

그는 사실 충분히 스스로 꺼림칙할 만한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지속하고 오히려 나를 믿지 못하느냐며 화를 내는 것은 '너에게 그 아이의 의미가 그만큼 큰 것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그보다도 어쩌면 이 연인이 이제껏 맺어왔던 관계와 연관되는 것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그는 '폭발해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평소 연인의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행동도 귀엽게 보고 이해하며 넘어가 주던, 자신의 기분보다는 그녀의 기분과 그녀가 웃는 것이 중요하고, 그녀가 손가락 튕기는 흉내만 해도 이미 저 멀리 날아가 있던 그런 남자였기 때문에, 자신을 믿지 못하는 '여름'에 대해 과도하게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평소에 잘하는 나인데, 이만하면 믿을만한 나인데, 왜 어떤 상황에서든 믿어주지 못하는지, 그런 상대에 대해 서운함과 이제껏 눌러온 마음이 왈칵 튀어나온 것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하는 상대의 입장에서는, 평소 그랬던 남자이기에 더욱. 이 상황과 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을 수밖에 없다.

   
 

어찌되었든 지금 이 상황에서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놔두는 것'뿐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지금 네가 평소 같다고 생각하느냐며 다그쳐 보았자, 그가 스스로 깨닫기 전에는 그저 엇나갈 뿐이다. 시간을 준다면, 그는 분명 다시 생각하고, 상황을 정리하고, 그녀에게 사과하겠지. 그는 그렇게 할 만한 좋은 남자라고 아직은 믿고 있다.

더불어 시청자들의 욕을 무더기로 먹고 있는 '안아림'은 남자들이 좋아할 만한, 그리고 여자들이 경계할 만한 '캔디형의 여우'가 맞는 듯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열을 내기 전에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에 이보다 더 이상한 여자들이, 또 이상하지 않더라도 누군가로부터 유혹될 기회는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이다. 더 여우같고, 겉과 속이 다르고, 약은 수를 쓰는 여자라고 해도, 실은 내 남자와 엮인 그녀가 아니라, 그녀들과 어떤 식으로든 엮여 들어가는 내 남자가 문제인 것이고, 그 남자가 정신 차리는 것이 이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안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두 남주인공 중 아직 '하진'의 편에 서 있는 필자이기에 넓은 마음으로 그를 이해하려 해 보았지만, 결국 지금의 이 상황을 만든 장본인은 '남하진'이다.

주변 여자들에게 자상한 것뿐 아니라, 스스럼없이 내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의 몸에(그게 어깨이든, 손이든, 머리든) 손을 대는 버릇은 아주, 매우 경계할 만하다. 여자의 말이나 요구를 정말 따를 생각도 없으면서, 일단 '물론, 오케이'라고 답하고 그 상황을 웃으며 종료시키려는 것도 아주 나쁜 버릇. 먼저, 자신들의 관계에 제3자를 끼어들게 했고, 자신은 절대 여자로 느낀 적 없다면서, 결국 그 애가 내 여자를 우습게 보게 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여름'이 옛 애인이 아닌 누구를 따라갔다고 하더라도 화낼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그가 그렇게 아끼고 애틋하게 여기는 '아림'에게도 결코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 있는 행동을 하면서, 이건 그냥 행동이고 물건일 뿐이니, 의미를 두지 말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진'과 '아림', 이 둘의 관계는, 과거가 없이도 이미 충분히 의미 있게 진행되어 가고 있다. 그래서 아림이 자신을 남자로서 좋아하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방치하는 그는 유죄이다. 결국, 지금 그는 두 여자 모두에게 상처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상대를 의심하는 마음이 시작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의 불안과 걱정이, 작은 단서로도 얼마나 많은 상상과 망상을 가능하게 하는지, 그 위험성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한 번도 의심하지 않는 관계는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불신하고 의심하게 된 관계를 되돌리는 것은,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렵고, 어떤 견고했던 관계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일 수 있으니 말이다.

[글] 아띠에떠 미오 artietor@mhns.co.kr

미오(迷悟): 좋아하는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여주인공 이름이자, '미혹됨과 깨달음'을 통틀어 의미하는 말.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심리학, 연세대 임상심리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임상심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필자 블로그 방문가기  * 아띠에터는 문화뉴스 칼럼니스트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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