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리디아가 만나는 대한민국 최고예술가 100'은 오랜 문화예술계 및 방송 경력으로 다져진 그가 문화뉴스의 부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만들어진 특별한 코너다. 대한민국의 예술계를 이끌어온 아티스트들의 노고를 기리고 그들의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자 기획됐다. 어디에서도 쉽게 듣지 못하는 탑아티스드들의 진짜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박리디아는?]
 
   
▲ ⓒ 신일섭 기자
 
[문화뉴스] 배우이자 연극연출가인 이항나(44)는 연극계의 대표적인 '팔방미인'이다.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를 다녔고, 지난 90년대 연극계에서 명망 있는 '러시아 유학 1세대' (쉐프킨 연극대학교)멤버다. 학창 시절부터 줄곧 연출도 병행해왔기에 연기·연출에 모두 능한 배우이기도 하다. 지난 2014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도 그녀가 연출한 '그녀의 방 시즌3: 노크하지않는 방'(이하 '그녀의 방 시즌3')은 국내초청작 작품으로 무대에 올랐다. 이항나는 현재 대학교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극단(떼아뜨로 노리)의 대표직을 맡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항나를 '문화뉴스 최고의 예술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다. 알고 싶었던 그 배우, 이항나를 만나 '연극·연기 그리고 예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오늘은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로 만난 박리디아와 이항나. 분위기가 사뭇…  

'문화뉴스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가 : 연극'부문에 선정됐다. 소감 한마디?

ㄴ 너무 감사하다. 몸들 바를 모르겠다. 정말 이래도 되나 싶다. 옛날에 동화연극상을 받았는데 선생님이 "상은 별거 없고, 받으면 기운이 나서 10년은 가게된다"며 했는데 지금 정말 10년이 지났는데, 큰상이던 작은 상이던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가 돼서 이렇게 연극을 하는구나 싶다. 어찌됐든 어느덧 나이가 마흔 중반이 되면서 한길을 계속 갔으니 그것에 대한 보상인 것 같다 앞으로 10년 동안 더 열심히 하겠다. 기분이 좋다.

지인으로서 자랑스럽다. 배우이자 연출자인, 연극의 길을 걷는 연극을 지키는 사람 조그만 체구에서 그동안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나?

ㄴ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냥 살면서 다른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고 다른 직업을 부러워 해보지 않았고, 내가 하는 일이 항상 너무 좋고, 다른 사람이 부러워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배우와 연출가가 될 수 있을까?" 스스로 내게 질문을 많이 던졌다.

학교 다닐 때부터 재능이 없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지만, 너무 좋아서 그만둘 수 없었다.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결핍감에 연극에 대해서 질문을 많이 하게 된 것 같다. 어떤 부분이 모자라고, 어떻게 채울 수 있나? 질문을 던지니 계속 나를 움직였던 것 같다. 나 자신의 길을 찾고 싶은 여정이었다.

내가 어린 학생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존감이 중요하다. 그것이 때로는 좌충우돌하게 하지만, 내가 하는 일에 원동력이 된다. 내일에 대한 자존심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해준다. 아시다시피, 어려서부터 나는 고집이 세고, 타협하지 않은 면이 많다. 스스로 고민을 했다 이렇게 살아도 되나? 타협해야 하는가? 생각이 들었고, 충고도 들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도 막내 스텝하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젊었을 공연 때는 너무 신나서 잠이 안 온다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금도 그렇더라. 아침에 일어났는데 너무 설레는 거다. 정말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 ⓒ 영화 '변호인'에서의 이항나
영화 '변호인'의 권양숙 여사의 역할을 맡은 '1000만 배우'다. 자신은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는가?

ㄴ 이제는 마흔을 넘은 중견이 되면, 모든 것을 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럼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일상적인 관객과의 소통을 즐거워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1996년에 다시 대학로에 왔는데 굉장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연기로 "저게 연기냐?"며 주목과 비난을 받았다. 그 당시 새로운 연기방법이었던 것이 지금은 이제 새로운 것이 아니게 되었다. 2009년을 기점으로 거기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부끄러운 시대가 됐다. 그래서 다른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올해 '레빗톨'을 만나면서 '내가 잘하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 "내밀한 감정, 일상적인 감정을, 관객과 호흡하는 연기" 그것이 내가 가장 잘하고 그것을 관객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서 영화에서는 영화언어는 연극과 달랐지만,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니 많은 분이 좋아해 주는 것 같다.

   
 

이항나의 연기 메소드는 어떤 것인가?

ㄴ 1996년도에 왔을 때는 러시아의 연기방법을 가져 왔었는데, 내가 나 자신을 볼 때 감정을 크게 표현하는 테크닉이 뛰어났던 것 같다. 그때 당시에 나는 감정에 진실한 것이지 테크닉이 뛰어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인정 안 했지만, 어떤 연출가가 "항나씨는 연기를 정말 잘 배웠는데, 그걸 좀 내려놓으면 더 좋을 것 같다"라는 소리를 이제야 알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나의 것을 비우고, 덜어내고, 숨기고 하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그럴수록 관객들이 배역의 말에 좀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을 느꼈다.

연기자가 자기의 스타일을 버리고 깎아내고, 테크닉을 버리는 순간이 가장 두렵다. 이번 레빗홀에서는 내 스타일을 다 내려놓고 정면돌파 하려고 했더니 다음 스텝이 보였다. 이것이 이 시대가 원하는 것임을 알게 됐다.

여배우가 나이 든다는 것 뭐가 달라지는가?

ㄴ 연극 '그녀의 방'을 처음 할 때는 난 35살의 여자였고, 시즌2에는 38살의 여자였다. 그런데 '시즌3'를 내 나이 마흔 넷에 만들었다. 나도 사람인지라 내가 흥미로운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더라. 이제는 더 이상 그녀들의 방을 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자들에 감정에 흥미가 없어지더라.

2007년에 까마 긴카스의 '갈매기'라는 작품에 니나역을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그 연출이 폭군이었는데 나는 니나역을 맡을 수 없다고 강경하게 말하더라, 그래서 '아르까지나'역을 맡았다. 지금은 절대 니나역은 못할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 감정이 아이, 엄마, 딸, 삶, 사회에 가 있더라 젊을 때 느끼는 사랑, 연애, 이별과 같은 감정이 안 들더라. 조금 속 상하긴 하다.

예전에는 멜로를 많이 했는데 지금은 멜로감성이 전혀 없다. 지난번에 작품을 하면서 내가 "헤어지면 또 만나는 거지, 뭘 울긴 울어"라고 농을 하더라 그러면서 나는 이제 더 이상 멜로는 아니구나 싶었다. 배우라는 삶을 살며 관객을 만나는데 어릴 때는 사랑에 처절하게 관객을 만났다면 연극 '레빗홀'에서는 엄마, 삶, 상처를 말하는 배우가 됐다. 이제는 어머니나 할머니역을 맞을 준비가 돼있다.

   
▲ ⓒ 신일섭 기자

여배우가 나이 든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것 같다 좋은 것이 많더라.

ㄴ 나이가 드니까 할 수 있는게 많다. 젊었을 때는 나이가 들면 속상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되어보니 좋다, 편하다. 할머니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관객이 배우 이항나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ㄴ 옛날 대학로에서 나는 멜로 드라마의 히로인으로 많은 남성팬도 있었는데, 요즘은 남성팬이 자취를 감추고, 여배우로홀대받는 시대가 됐다(웃음). 나는 스타성이 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안 했다. 어떤 무대를 올라갈 때 작은 역할이지만, 주인공을 받히는 역할을 하는 배우를 보며 눈물이 나더라. 그 배역의 삶이 정말 아름답게 느껴지더라. 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다.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해주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어떤 배우가 되라고 말하는가?

ㄴ 나는 예전에는 연기방법에 대해서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학생들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가진 인간이 돼야 하지 않나?"고 말한다. 

 
"관객에게 너의 시선을 보여주는데, 너의 시야가 좁다면 표현하고,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그만큼 밖에 안돼서 누가 너를 흥미롭게 보겠니? 관객이 못 보는 시각과 삶을 보고 그것을 표현한다면 넌 굉장히 현명해야 할 것이다"

"연기보다 책도 좀 읽고, 그림도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 좀 하고 네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생각을 해야 하지 않니? 너의 영혼을 관리해라. 영혼이 혼탁한데 무엇을 보여주겠니?"
 
내가 나이 '40'을 넘으니까 이런 말을 하더라. 그래서 "다 필요 없고 네가 어떤 인간인기 궁금해한다."고 조언한다. 나도 어렸을 때는 선배들이 그렇게 말했지만, 내 학생들도 나이가 들면 그런 부분을 깨달을 것이다.

대한민국 연극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ㄴ 비난도 칭찬도 할 입장이 아닌 것 같다. 내가 곧 연극계지 않나? 연극계보다 우리 사회가 너무 서울이라는 도시가, 사람들의 삶이 힘들지 않나? 젊은 세대가 꿈이 있나? 아르바이트에 치여살고, 숨이 넘어갈 듯 말 듯하지 않나? 얼마 전 '세 모녀 사건'이 있었지 않나? 대학로도 마찬가지다. 아티스트들이 살 궁리를 하는 것에 누구도 어떤말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다음 작품은 방에서 나와서 사회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꺼내는 연극인이 되고 싶다.

마흔이 넘어가면서 나는 우리 사회를 책임지는 척추가 되었다. 책임감을 느낀다. 우리사회의 많은 사건을 바라보며 세월호 사건도 마찬가지다. 일련의 사건들을 보며 서울 한복판에서 나는 어떤 공연을 올려야 하는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누굴 탓하기 전에 우리 선배들이 한 시대 용기 있게, 용감한 화두를 꺼낸 예술가들이 있어서 우리가 삶을 사는데, 내가 그 바톤을 이어받았으니, 용기를 더 내보자고 책임감을 느낀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이번 작업(그녀의 방 시즌3)을 하며 되게 행복했다. 어렵게 작품을 시작해서, 좋은 아티스트를 대리고, 돈도 없었지만 마음 마음을 엮어서 무대 위에 오르게 됐다. 나는 내가 작품에서 연출로 빛나고 싶지 않다. 이 작품에 헌신한 사람들을 가리지 않는 연출이 돼고 싶었다. 나는 그들 발밑에 꽃을 바치는 감정으로 일을 시작했다. 소박한 꽃은 그들에게 바치지 않았나 싶다.

요즘은 '아 그래, 내가 진심이면, 좋은 동료의 마음을 얻을 수 있고, 그러면 반드시 관객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힘들었다. 돈이 없었다. 과정이 힘들었지만 무대에 오르게 됐다. 어제 자면서 삶의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이순 간도 나쁘지 않구나!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젊을 때는 좋을 때도 좋음에 끊임없이 의심했다. 요즘은 좋은 순간에 좋다고 받아들이는 기술이 조금 늘었다. 작품을 준비하면서 내가 열심히 노력한 배우들에게 작은 꽃을 바칠 수 있어서 참 좋다라고 생각이 든다.

   
▲ 문화뉴스 독자에게 인사를 전하는 이항나 

 

   
▲ ⓒ 신일섭 기자

'문화뉴스'에게 한마디 ?

ㄴ '문화뉴스' 독자여러분 여러분은 너무 소중합니다. 여러분이 계시기에 아티스트들이 힘을 얻습니다. 여러분의 시선이 있기에 우리들의 다음 스텝이 있고, 좋은 아티스트들이 많이 생길 것입니다. 문화를 사랑하는 분들이 있기에 문화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에게도 문화를 알게 될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정말 큰 역할을 하시는 분들입니다. 문화뉴스 더 사랑해주시고, 문화뉴스가 잘 될수록 문화예술계도 더 발전될 것입니다.

[글] 문화뉴스 박리디아 (Lydia Park)_본지 부사장 golydia@mhns.co.kr

[정리] 문화뉴스 신일섭 기자 invuni1u@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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