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대한민국연극제 서울페스티벌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의 둘라트 이시베코브 작 김엘레나 연출의 여배우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카자흐스탄에 있는 고려극장은 디아스포라의 고난을 겪고 있는 구소련 한인들의 삶을 예술화 시켜 온 공간이다. 그리고 현재 10여 만 명의 고려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카자흐스탄은 구소련 중앙아시아에서 핵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지역이다. 1937년 스탈린에 의한 강제 이주 이후 이곳에 정착한 고려인들은 우리민족의 문화적 전통과 언어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고려극장은 그 중심의 역할을 수행해 왔다.

고려극장은 카자흐스탄에서도 가장 오랜 문화 기관 중 하나이며, 세계에서 유일한 민족극장으로 알려져 있다. 8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고려극장 무대에서 250여건의 연극과 콘서트 프로그램이 상연됐고 500만 명 이상의 관객들이 그것을 관람했다.

이곳에서는 대부분 고려인 혹은 러시아 극작가들에 의해 창작되거나 번역 번안된 200여편의 연극들을 통해 고려인들의 삶과 문화 역사가 무대에 올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 희곡들이 단순히 예술적 의미만을 지닌 것들이 아니다.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헌신하던 지사들이나 일반적인 고려인들의 삶을 다루거나 <춘향전>, <심청전>, <홍길동>, <흥부전> 등의 고전을 다루는 등 다양한 분야의 역사적 기록물들이 상영되었다.

고려극장의 극작가들이 우리의 고전작품들을 연극의 소재로 많이 다룬 이유는 민족정신의 확산 및 확인이라는 현실적 필요성 때문이었다. 구소련의 살벌했던 동화정책에 따라 잊혀져가는 모국어를 무력하게 바라보아야 했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박탈감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연극 장르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했다. 온갖 어려움들을 극복하며 매년 몇 편씩의 연극을 무대에 올린 사실을 그런 절박감의 소산이었다.

또한 전후시기에 고려극장은 다른 민족들의 고전작품들을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당시 고려인 관중들을 소련에 거주하는 다른 민족들의 문화유산과 접촉시키는 것이 또 다른 극장의 과업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무대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크라이나, 그루지야 극작가들은 물론 서유럽의 고전들도 상영되었다.

고려극장이 한국 고전에 기반을 두거나 역사적 인물을 형상화한 연극을 무대에 올리고 우리 민요나 노래들을 모국어로 공연했던 것은 고려인들의 민족정신을 일깨우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보다 저 중요한 것은 고려극장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 되어 공민적 권리를 제한 당했던 고려인들에게 몸에 맞는 옷, 맛있는 음식, 따뜻한 집이 되어 지친 삶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세계 연극사에도 드문 일이며, 동시에 우리 해외동포사에서 가장 오래된 전문 예술단이자 극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려인들에게 민족문화 수호자로서 큰 역할을 해온 고려극장이 평탄한 길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었다. 재정의 어려움을 겪거나, 제대로 된 공간을 갖추지 못하기도 했다.

1937년 강제이주 당시 극장은 카자흐스탄과 우스베키스탄으로 나뉘어 이주됨으로써 한동안 두 개의 극장으로 존재했다.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은 1942년 우슈토베로 옮겨져 주립극장이 되었다. 1947년에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 고려극장이 해체되어 카자흐스탄 고려극장으로 재결합되었다. 1959년에 다시 크즐오르다로 이주한 극장은 사할린조선극장을 합병하였고, 1963년에 국립극장 지위를 얻었다. 1968년에는 수도 알마티로 이전하여 "국립조선음학희극극장"으로 개명하였다. 같은 해에 가무단 "아리랑"을, 1993년에는 민속악단 "사물놀이"를 창단하였다. 고려극장은 소련의 해체로 위기를 겪었지만 극복하였고, 극장은 1997년 한국 교육원으로 옮겨갔다가. 2004년 현재의 극장 건물로 입주하였다.

이러한 고려극장의 역사는 구소련 고려인들의 역사이기도 하다. 극장이 걸어온 운명에는 마치 거울처럼 우리 민족의 역사가 반영되어 있다.

   
 

고려극장은 다수의 표창과 상을 받기도 하였는데, 1982년에는 소비에트 극장 예술 발전에서 세운 공로와 극장 창립 50주년을 계기로 하여 "영예표식" 훈장을 수여받았다. 한국과 러시아와의 수교이후인 1992년에는 서울에서 열린 세계민족 극장 연극 축제에서 극작가 한진의 작품인 '나무야 흔들지 마라'로 일등상을 타기도 했으며, 2005년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영예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현재도 고려극장은 모든 전통 민족예술 장르들 즉 극단, 사물놀이 팀, 민족무용단과 성악단을 가지고 있으며 카자흐스탄 다민족 다문화의 떼여낼 수 없는 부분으로 인식 되면서 민족 특성, 얼과 언어를 보존하며 이곳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의 문화를 풍부히 하고 있다.

고려극장에서 우리 말 연극이 공연되는 한 고려인들의 민족의식은 유지될 것이고, 고려극장이 문을 닫거나 고려극장에서 우리 말 연극이 사라지는 순간 구소련 지역의 고려인들은 본질적인 의미에서 한민족의 민족적 표지(標識)를 잃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려극장은 고려인들에게 우리 민족문화를 유지시키고, 발현시키는 가장 큰 힘이다.

극작가 둘라트 이사베코브의 작품과 김 엘레나 연출로 이루어진 이 연극은 명 여배우 아이굴 아싸노바의 이야기다. 연극대학에서 배우의 직업을 전공하고 공화국의 이름난 배우가 되기까지 그 녀에게는 성공과 실패도 있었고 자체 희생과 좌절도 있었으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극에 대한 열정의 불변함을 보여준다.

무대는 천정에서부터 휘장처럼 여러 개의 흰 백색의 천을 늘어뜨리고 중앙의 열린 공간에 안락의자를 비스듬히 배치했다. 발레단이 출연해 장면변화마다 여배우의 심정을 무용으로 표현을 하고 늘어뜨린 백색 천을 얽도록 하거나 이동시켜 조형예술미를 창출시킨다. 러시아풍의 음악연주로 극적 분위기를 상승시키고, 주인공 여배우의 사고(思考)와 대치되는 사고를 녹음을 통해 관객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여배우의 의상의 화려함과 아름다움은 관객의 눈길을 끌고, 카자흐스탄의 대중가요를 여배우가 열창을 해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내용은 남편이 출장한 사이에 여배우는 연출가와 가까워진다. 두 사람의 가까운 장면을 귀가한 남편이 보고 질투와 분노로 여배우와 결별을 선언한다. 당연히 여배우는 연출과 불륜관계가 아니라고 변명을 하지만 남편은 믿지를 않고 떠나간다. 낙담을 한 여배우에게 한 기업의 행사에 참석하면 고급 승용차를 경품으로 제공하리라는 전갈을 받는다. 여배우는 참가해 환영과 상당한 접대를 받고 주최 측에서 노래를 불러달라는 청을 받는다. 여배우는 거절하다가 결국 노래를 부르게 되고 그녀의 노래솜씨는 좌중과 관객의 갈채를 받고 경품인 차의 열쇠도 받게 된다. 그런데 행사기업의 대표가 가면을 벗으니, 여배우를 젊은 시절에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니던 남성임을 알고는 여배우는 곧바로 실망해 돌아온다. 이번에는 한 젊은 남성이 꽃을 들고 방문한다. 내쫓으려 하다가 여배우는 방문 내역을 듣는다. 여배우가 젊은 시절 화재현장에 있을 당시 불길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소년이 성장해 자신을 찾아온 것을 알고는 반겨 맞는다. 그런데 장성한 소년이 자신보다 여배우가 훨씬 연상임에도 불구하고 유명한 미모의 여배우이기에 연모의 정을 고백하려고 찾아온 것을 알고는 여배우는 젊은 남성을 잘 타일러 돌려보낸다. 여배우는 1인극을 통해 자신의 길이 연극이고 연극배우의 길을 끝까지 가겠노라는 의지를 보인다. 그때 남편이 되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의 경솔한 행동을 사과를 하고 여배우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며 가까이 다가가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으면, 여배우가 남편의 어깨에 살포시 머리를 기대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여배우로 백 안또니나(Antonina Pyak), 남편으로 최 로만(Roman Tsoy), 연출가로 마흐삐로프 알리쉐르(Alisher Mahpirov), 기업가로 김 세르게이(Sergey Kim), 그 외 유가이 보리스(Boris Yugay), 리 알레크산드르(Alexandr Li), 톡삼바예바 꿀랴쉬(Toksambayeva Kulyash), 아지갈리예프 메이람베크(Azhigaliev Meirambek), 윤 예브게니야(Yevgeniya Yun)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노래 그리고 춤을 관객의 우레와 같은 갈채를 받는다.

조명감독 스삐줴보이 블라지미르(Spidzevoi Vladimir), 음악감독 음향 윤 게오르기(Georgiy Yun), 의상 스트렐리코바 리아나(Strelnikova Liana), 기획 번역 최영근(Choy Yen Gyn) 등 스텝 진의 열정과 노력이 조화를 이루어, 카자흐스탄 국립고려극장의 둘라트 이시베코브(Dulat Isabekov) 작, 김 엘레나(Alena Kim) 연출의 <여배우>를 기억에 길이 남을 명 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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