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길언, 장편 '묻어버린 그 전쟁' 출간
정치적 목적으로 과거 들춰내면서도 6·25 전쟁엔 너무나 무심
민간인이 더 많이 학살된 전쟁, 6·25를 다시 얘기하자

출처=본질과현상/현길언 저 묻어버린 그 전쟁

[문화뉴스 MHN 이은비 기자] "김일성 장군님, 가암사합니다. 우우리를 이렇게 만나게 해주시니." 경빈은 울부짖으며 되풀이해서 말했다. 승규가 그를 껴앉자 앙상한 뼈들이 가슴을 눌렀다.

문단 원로 현길언(79)이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묻어버린 그 전쟁'(본질과현상 펴냄)에서 6·25 전쟁통에 남과 북으로 흩어진 두 목회자가 오랜 세월을 지나 해후하는 장면의 한 대목이다.

승규와 경빈 모두 해방 직후 공산주의 세력에 저항하던 기독교 목사였지만 탄압을 피해 월남하고 목회 활동을 이어나간다. 경빈은 가족과 함께, 승규는 단신으로 월남했다. 그러던 중 6.25 전쟁이 일어나고 경빈은 교인들을 두고 떠날 수 없다며 가족을 승규에게 맡기고 한강을 건너게 하고는 자신은 서울에 남는다.

이를 계기로 두 목사는 이후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승규가 개척한 '서울제2교회'는 대형 교회로 성장하고, 전쟁 기간 공산당에 부역한 경빈은 북한군 퇴각 때 북으로 함께 올라가 훗날 고위직에까지 오른다.
 
이들의 가족 운명도 마찬가지로 분단과 전쟁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대한민국을 택한 경빈의 아내와 자녀들은 '연좌제' 덫에 걸려 공직에 임용되지 못하거나 여권 발급까지 거부되는 부당한 불이익을 겪어야 했다. 북에 남은 승규의 가족들도 힘든 삶을 살긴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불이익을 받는 대신 북에 적극적인 충성을 통해 그들에게 인정받는 쪽을 선택했다.
 
'반동'인 아버지, 형, 남편을 부정하고 당의 신임을 받아 사회주의 일꾼으로 성장한다. 승규가 반세기 만에 평양을 방문해 만나게 된 친동생은 인민군 장성에까지 올라 있었다.
 
소설은 그들의 이러한 엇갈린 운명을 통해 전쟁의 비극을 드러내고자 한다. 특히 현 작가는 6·25 전쟁과 분단을 통해 '이데올로기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이념과 권력욕에 희생되는 민간인'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작가는 6·25 전쟁, 제주 4·3 사건 모두 이데올로기의 허위와 폭력성에 의해 무고한 민간인들이 학살되고 고통받은 역사적 사례라고 주장한다. 제주도 출생인 그는 어린 시절 4·3 사건을 직접 겪은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현길언은 '데탕트'를 유행처럼 말하는 이 시대에 '6·25'를 다시 끄집어낼 수밖에 없었다고 거듭 말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이 전쟁의 또 하나 특징은 전쟁터에서 죽은 병사보다 비전투 상황에서 죽은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정치적인 목적으로 과거를 샅샅이 들춰내는 오늘의 상황에서, 이 전쟁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심하다"고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현길언은 1980년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해 일생동안, 해방 이후 이어진 이념 대립의 상처를 휴머니즘을 통해 치유하려는 자신의 꿈을 구현하고자 했다. '용마의 꿈', '나의 집을 떠나며' 등 소설집과 4·3 사건을 다룬 장편 '한라산' 등이 그의 노력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한양대와 제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역임하여 다수 문학이론서와 인문문화 서적을 펴냈으며, 대한민국문학상, 현대문학상, 녹색문학상, 백남학술상, 제주문학상 등을 받았다.
------------------------------------------------------
현길언, 장편 '묻어버린 그 전쟁' 출간
정치적 목적으로 과거 들춰내면서도 6·25 전쟁엔 너무나 무심
민간인이 더 많이 학살된 전쟁, 6·25를 다시 얘기하자

주요기사
책 최신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