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 작 홍재웅 번역 윤성호 윤색 펠릭스 알렉사 연출의 미스 줄리

 

[글] 문화뉴스 박정기 (한국희곡창작워크숍 대표)
pjg5134@mhns.co.kr 한국을 대표하는 관록의 공연평론가이자 극작가·연출가.

[문화뉴스] 요한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Johan August Strindberg, 1849-1912)는 '여성 혐오자', '스웨덴의 깃발', '북구의 Zola', '근대 연극의 아버지', '민중의 대변자', '국민이 수여한 Anti-Nobel 수상자', '천재', '미치광이'등 그에게 주어진 수식어는 매우 다양하다.

다재다능하고 호기심 많은 그의 성격과 천재성을 대변해주며 특출한 영혼의 소유자인 그의 투쟁적 인생행로를 충분히 감지 할 수 있다. 또한 배우, 연출가, 극작가, 교사, 기자, 사진기자, 화가, 사회비평가, 과학자, 의학도 등 스트린드베리가 일생 동안 몸담아 일했던 직업들을 통해 그의 높은 지적 수준과 정신적 방황을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종교적 세계를 답습한 파란만장했던 삶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그는 이 모든 분야에 있어서 진실을 찾으려 논쟁하며 지속적으로 고독한 투쟁을 해나가는 동안 많은 갈등과 고뇌를 겪어야만 했다.

단 하루도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다는 스웨덴이 낳은 세계적인 극작가 스트린드베리는 1849년 1월 22일,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지명도 높은 부르조아 가정에서 7남매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청년 스트린드베리는 웁살라(Uppsala)대학 문학부에 진학했으나, 동경하던 학문의 자유와 목마름을 채울 수 없었다. 또한 그곳은 생의 충만함을 안겨줄 곳이 아니라는 판단에 이른 그에게, 경제적 난관까지 겹쳐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그런 후, 몇 해 동안 교육자, 의학, 연극,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분야에 투신하기에 이른다. 한 사람의 자유인으로, 생존을 위해 격렬한 투쟁적 삶을 살며 '끊임없이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투지로 새로운 세계에 도전했다. 2012년은 그의 탄생 163주년, 그가 영면한 100주년이었다.

펠릭스 알렉사(Felix Alexa 1967~)는 국립 부카레스크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1993년부터 국립 부카레스크 대학의 연극영화과에서 연출부 교수로 재임 중이다. 1992~1993년에는 피터부룩의 조연출로 일하면서 클라우드 드뷔시의 <펠라스의 표현>이라는 작품을, 파리에서 유진 이오네스코 (Eugene Ionesco)의 <의자들>이란 작품을, 세계적인 국립대학(서울, 베이징, 시드니, 상해, 뉴델리, 싱가포르)에서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였다.

루마니아의 국립극장인 부카레스크 극장의 상임연출가로 루마니아의 젊은 연출가들 중에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연출가이기도 한 펠릭스 알렉사는 현재 유럽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펠릭스 알렉사(Felix Alexa)의 주요 연출 작품으로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 <베로나의 두 신사> <리처드 2세>, 고골리의 <검찰관> <광인일기, 체호프의 <벚꽃 동산> <바냐 아저씨>, 게오르그 뷔히너의 <레온스와 레나>, 알베르 카뮈의 <오해> 니콜라이 에르트만의 <자살> 등이고, 2014년 국립극단의 <리처드 2세>를 연출해 그 탁월 한 연출기량을 보였다.

번역을 한 홍재웅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과(구 스웨덴어과)를 졸업하고,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에서 스트린드베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칸디나비아어과에 재직 중이다. 저서 Creating Theatrical Dreams, 『유럽과의 문화 교류를 위한 연극제 자료조사 I, II, III』, 『세계 문화 탐험, 북부 유럽 1, 2』, 역서 『덕 시티』, 『닐스의 모험』, 『인형의 집』, 『에스페란자』, 논문 「스트린드베리의 실험극장」, 「스트린드베리의 아버지를 통해 본 남성의 복종과 원형적인 행위」, 「잉마르 베리만의 연극 미학과 연출기법 분석」, 「욘 포세의 희곡 가을날의 꿈에 나타난 내적 상호텍스트성과 미니멀리즘의 미학」 등이 있다.

윤색을 한 윤성호는 서강대 신문방송학과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전문사(석사) 출신으로 독립영화를 감독했다. 대표작은 <은하 해방 전선>, <산만한 제국(단편)> (2003년), <중산층 가정의 대재앙(단편)> (2002년),우익청년 윤성호(단편)>(2004년) 등을 감독하고 다수 연극작품을 윤색한 장래가 발전적으로 기대되는 인물이다.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의 희곡 <미스 줄리>는 두 남녀의 '사랑'을 신분 상의 격차와 남녀 간 성행위에서의 갈등이라는 다양한 시각으로 투과하여 담아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와 권력 투쟁'을 분석한 홍재웅의 글에 의하면, 스트린드베리는 1888년 여성작가 빅토리아 베네딕트손이 코펜하겐의 한 호텔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을 기도한 사건을 접하고 영감을 받아 <미스 줄리>를 집필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는 에른스트 알그렌이라는 남성 필명으로 활동해야 했던 베네딕트손의 사건뿐 아니라 여권 신장에 대한 목소리가 점차 높아가던 19세기 말 북유럽의 정신사적 풍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 하녀의 아들이었으면서 귀족 출신 배우였던 첫 부인과 결혼했던 스트린드베리 자신의 자전적 경험도 어느 정도 투영되어 있다.

스트린드베리가 여주인공인 줄리를 '반여성'(半-女性)이라고 지칭한 것에도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은 전통적인 성역할을 상당히 파격적으로 전복했고, 계급차를 넘어선 정사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발표된 지 16년이 지난 후에야 무대에 올려 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후 이 작품은 스트린드베리의 작품 중 가장 빈번하게 공연되는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의 세팅은 매우 단순하다. 시간적 배경은 하지 날 전야에서 아침까지이고, 공간적 배경은 줄리의 아버지인 백작 저택의 부엌, 등장인물은 줄리, 하인인 장 그리고 하인인 장의 약혼녀이자 백작의 요리사인 크리스틴, 이렇게 셋이다. 단순한 장치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세 인물의 권력관계와 욕망의 추이가 수시로 엎치락뒤치락하기 때문이다. 단 한마디의 대사도 무심히 흘려보낼 수 없을 정도로 감정의 곡선이 요동친다.

이 작품의 주요 갈등은 줄리와 존(원작의 장)의 불평등한 지위에 기인한다. 줄리는 백작의 딸인 귀족이지만 여성이고, 존은 하인의 아들이자 자신도 하인이지만 남성이다. 줄리는 신분적 지위에서 계급적인 우위에, 존은 남녀 간의 성별 적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다. 약혼자와 파혼한 줄리는 자신의 넘치는 욕망을 해결할 대상이 없어 돌발적인 행동을 벌인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적 지위를 이용해 하지 날 전야에 존을 밤새도록 옆에 둔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녀는 존이 오로지 주인에게 복종하는 마음으로 그녀 곁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존으로 하여금 자신을 흠모해왔음을 고백하도록 강요한다. 존은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줄리를 흠모해왔지만 그러한 감정의 근간에는 신분으로 인한 금기가 작동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는 자신의 계급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줄리는 그가 도달하고 싶은 부와 계급의 상징이었다. 줄리는 여성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존에 대한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존은 신분에 갇혀 그녀의 은밀한 제안을 해독하지 못하는 척한다. 하지만 그 둘의 관계를 의심하며 조롱하는 주변의 시선과 목소리가 아이러니하게 그 둘에게 존의 방으로 도망가게 하고 둘은 그제야 자기 욕망에 솔직해져 정사를 나눈다. 정사 이후 둘 사이의 권력은 존에게 기울어진다.

'훼손된' 여성이 된 줄리는 전전긍긍하고, 정사를 사랑으로 포장하려 한다. 존은 그녀의 음란함을 비난하면서 주도권을 쥐지만 한편으로 그녀의 아버지가 가할 응징이 두려워 그녀를 어떻게 해서든 성 밖으로 몰아내려 한다. 외부 세계에 대한 환상적인 진술을 통해 줄리를 유혹하고, 그녀가 가출을 감행함으로써 아버지의 권위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가출을 하려고 줄리는 짐을 싸들고 온다. 자신이 기르던 새와 새장까지 들고 등장한다. 장은 새장은 안 된다고 하며 줄리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새장에서 새를 꺼내 조리대에서 칼로 새의 목을 내리친다. 줄리의 절망이 원망으로 바뀌는 순간이다. 이때 크리스틴이 등장한다. 그녀 앞에서 줄리와 존은 잠시 공범이 된다. 크리스틴은 종교와 도덕률로 둘을 비난하고, 그들의 탈출 계획을 무산시킨다. 퇴로가 없어진 존은 줄리가 자살을 감행하도록 면도칼을 쥐어주고 설득한다. 줄리는 그가 준 면도칼을 들고 밖으로 뛰어 나간다.

무대는 반원형의 창살 창문이 무대 좌우 벽면에 네 개씩 나란히 나있고 벽면 위쪽에 있는 것에서 창문이 지하에 있는 백작 저택의 조리실의 공간임을 알 수가 있다. 하수 쪽에 조리대가 있고 식칼을 비롯한 조리기구가 긴 자석으로 된 걸개에 부착되어 있고, 조리대에는 사각의 프라이팬에 음식이 익어가는 냄새를 객석에서 맡을 수 있다. 정면 왼쪽에는 내실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냉장고가 있어, 열면 그 안에 맥주가 잔뜩 들어있는 것이 보인다. 상주 쪽 벽면에 지상으로 오르는 문이 있고, 옷걸이에 정복이 걸려있고, 객석 가까운 벽면에 저택에서 조리실로 연결된 전화기가 달려있다. 중앙에 긴 식탁이 가로 놓이고 의자가 배치되어 있다. 무대 좌우 벽면 가까이 놓인 여러개의 커다란 원통형 바구니마다 사과가 가득 담겨져 있다.

연극은 도입에 크리스틴이 조리를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경쾌한 연주음이 들리고 무곡임을 감지할 즈음 크리스틴 오른쪽으로 가 높이 달린 창문을 올려다보며 약혼 남인 백작댁 하인 장을 기다리는 모습이다. 드디어 훤칠한 키에 미남인 장과 매혹적이며 요염하기까지 한 줄리가 등장을 한다. 크리스틴은 조리대 옆 의자에 앉아 잠이 들어 있다. 크리스틴을 깨운 장은 백작 댁의 파티와 그 동정을 크리스틴에게 이야기 한다. 크리스틴은 너무 늦어 졸린다고 하며 안으로 들어간다. 두 사람만 남은 장과 줄 리가 함께 음주를 하며, 음분을 통하려는 모습이다. 그러면서 과거에서 현재까지 두 사람의 성장배경, 그리고 줄 리가 약혼자와 파혼을 한 경위가 펼쳐진다.

이어서 소년시절 장이 줄리를 첫 대면하고 마음속으로 사랑을 느꼈던 점에서부터 성년의 줄리에게 관능적 아름다움을 느끼기까지의 고백이 전해진다. 신분의 격차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두 남녀는 몸과 마음을 식탁위에서 밀착시킨다. 열락 후 줄리는 장과 함께 멀리 도망을 치자며, 자신에게 거금이 있음을 알린다. 장이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니, 줄리는 짐을 꾸리러 나간다. 크리스틴이 등장을 하고 장의 행동을 질책한다.

그러나 장에게는 크리스틴의 질책이 당나귀 귀에 찬송가 부르기다. 크리스틴은 실망한 듯 다시 안으로 들어간다. 줄 리가 때 맞춰 짐과 새장을 들고 등장을 한다. 그러자 장은 새를 들고 어떻게 가느냐며 줄리의 새를 칼로 목을 쳐 죽인다. 줄리의 경악과 절망과 분노가 폭발한다. 무대 좌우의 바구니 속의 사과가 무대전체에 쏟아져 내려 굴러다닌다. 그러나 몸의 밀착이후 장과 줄리의 신분관계는 없어진 듯 장의 언어와 행동은 독선과 지배적 동태로 바뀐다. 그제서야 줄리는 반이성적 상태에서 정상적 상태로 복귀하려는 조짐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자신의 기르던 새가 죽었듯이 자신도 막다른 지경에 도달했음을 감지하는 모습이다. 백작의 귀가의 통보전화가 걸려오고, 면도를 하던 장이 전화를 받고 확인을 한다. 줄리는 장이 주는 면토칼날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간다. 원작에서 줄리는 그 칼로 목을 긋고 자살을 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끝이 난다. 19세기 말에서 이십세기 초까지 이 연극이 어째서 공연금지가 되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황선화가 미스 줄리로 출연해 마치 줄리를 위해 태어난 듯 혼신의 열연과 호연으로 남성관객의 시선을 일신에 집중시킨다. 윤정섭이 백작 댁 하인 장으로 출연해 훤칠한 체구, 용모, 그리고 호연으로 여성관객의 연모의 대상이 된다. 김정은이 제대로 된 성격설정과 절제된 연기 그리고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무대와 의상 카르멘치타 브로주보(Carmencita Brojboiu), 조명 김창기, 분장 백지영, 윤색 윤성호 등 스텝 진의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국립극단의 김윤철 예술감독,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Johan August Strindberg) 원작, 홍재웅 번역, 윤성호 윤색, 펠릭스 알렉사(Felix Alexa) 연출의 <미스 줄리>를 연출가와 스텝은 물론 출연자의 기량이 제대로 드러난 한 편의 걸작연극으로 탄생시켰다.

주요기사
관련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