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젊은 농어업인들의 희망보고서 14편, 선도농장 '김선도' 대표
  • 오지현 기자
  • 승인 2019.11.0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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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1이면 노력은 9, 노력에 비례하는 성공이라는 결과물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선도농장 '김선도' 대표

[문화뉴스 MHN 오지현 기자] 닭은 소, 돼지와 더불어 국가에서 수급을 관리하는 대표적인 가축이다. 국민 식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관계로 위생 및 안전 관리가 매우 철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고병원성 조류 인플루엔자(HPAI) 발생, 살충제 검출, 살모넬라균 감염 같은 이슈들이 끊임없이 발생한다. 선도농장은 지난 10년 동안 그런 문제가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다. ‘두 번 일하는 것’을 싫어하는 김선도 대표의 철저한 농장 운영 방침 때문이다.

스물셋, 확신을 갖고 선택한 양계 일

경기도 남양주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김선도 대표가 포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에 아버지가 포천에서 산란계 농장을 시작하면서부터다. 김 대표는 초등학생일 때부터 시간이 날 때마다 아버지 농장에 들러 농장 일을 도왔다. 고등학생 때까지는 아버지의 양계 농장을 물려받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또래들처럼 대학교에 진학했고 평범하게 대학 생활을 하다가 군대에 갔다. 계기는 그때 찾아왔다. 제대 후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 보니 가족과 함께 오손도손 양계 일을 도왔던 날들이 정겨운 추억으로 떠올랐다. 힘들고 지저분하다기보다는 즐겁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김 대표는 제대하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힌 다음 곧장 양계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11년 전,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김 대표는 일을 배우기 위해 잠을 5시간으로 줄이고 수시로 양계장을 돌았다. 몸이 상할정도로 그렇게 3년을 매달리자 양계장 일이 완벽하게 몸에 익게 됐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농장을 크게 키워 봐야겠다는 생각이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경영대학 진학을 목표로 했다. 그렇게 입시 준비를 하던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한국 농수산대학이란 곳이 있다는 것을 듣게 됐다. 머리에 번갯불이 번쩍였다. 당장 목표 대학을 바꿨고 열심히 준비한 끝에 한국농수산 대학 중소가축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총학생회장 시절

김 대표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바로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성격이다. 학교가 특수한 목적을 띤 만큼 일반 대학보다 다소 부족한 대학가 문화도 만들어 보고 싶었고, 학교와 학생간 문제가 생겼을 때 나서서 조율도 해보고 싶었다.

3학년이 되자 그런 바람은 더욱 강해졌다. 과감히 총학생회장에 도전한 김 대표는 열띤 유세전을 펼친 끝에 총학생회장에 당선됐다. 그 바탕에는 타고난 리더십이 있었다. 총학생회장에 당선된 후에는 한국 농업의 비전을 직접 확인해 보자는 뜻에서 국내 선진 농장 실태를 파악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각 과에서 추천을 받아 선진농장 목록을 만들었고, 농기계 업체에 연락해서 실습에 필요한 트랙터 한 대와 유류비를 후원받았다. 이는 한국농수산대학에서 농업 관련 기업으로부터 받은 첫 후원이었다. 이를 계기로 학교에 기업체의 후원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신나는 나날이 이어졌다. 후원받은 트랙터를 타고 한 달여에 걸쳐 전국 25개 선진농장을 돌았다. 낮에는 농장 일을 돕고, 밤에는 농장주들에게 한 수 가르침을 받았다. 하루하루 동이 틀 때마다 눈도 더불어 환해져서 이제껏 봐왔던 것과는 다른 세상이 열렸다.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선도농장

건강한 닭을 키우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

졸업 후 자신의 농장으로 돌아온 김 대표는 그동안 배운 것들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먼저 각종 데이터를 문서화해 농장 관리를 체계화했다. 그럼으로써 수익 구조도 분석하고 미래 수익을 추산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런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떻게 건강한 닭을 키워 내느냐 하는, 근본으로 돌아가는 일이었다. 양계장은 한정된 공간에 최대한 많은 닭을 키워야 하는 생산성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케이지 사육이라는 열악한 생산환경을 피할 수 없는 이유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에 굴하지 않고 건강한 닭을 키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늘 연구하고 실행해 왔다.

예컨대 벽에 냉각패드를 설치해 사육장의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한편, 닭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들려주고 무엇보다 케이지 청소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철저한 청결 관리로 애초에 닭진드기가 서식 불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살충제를 쓸 일을 없앴다. 이를 위해 농장 인원도 늘렸다. 사실 김 대표의 농장 정도 규모면 보통은 인원 두 명으로 관리가 가능하지만 김 대표는 인원을 네 명으로 늘려 ‘즐겁게, 사람답게 일하는’ 근무 환경 개선에 힘을 쏟았다.

대신 농장에 할애하는 시간을 줄 이고 마케팅과 시장조사를 위한 외부 활동을 늘렸다. “당장은 이익이 줄어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크게 보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김 대표의 눈빛에서 강한 확신이 느껴졌다. 하지만 김 대표의 뜻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 게만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기존 산란계 사육 외에 의욕적으로 추진한 병아리 사육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잠을 아껴 가며 병아리 동을 짓고 병아리를 들였는데, 첫날부터 병아리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두마리 씩 나오던 것이 나중에는 1,000마리씩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했다. 시공업체의 부실 공사로 총 8개 층 가운데 4개 층의 급수기에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 원인이었다. 김 대표는 지금도 이때의 실패를 잊지 못한다. “무려 12일 동안 한두 시간밖에 눈을 붙이지 못한 채로 병아리들을 물이 나오는 곳으로 옮기고 전체 층을 모두 수리했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한 사고였습니다.”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선도농장 '김선도' 대표

위기를 기회로

김 대표가 처음 병아리 사육을 시작했을 때 농장의 전체 매출은 10억 원 안팎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매출이 대략 20억 원으로 2배가량 뛰었다. 무엇이 이런 성장을 가능케 했을까.

김 대표는 철저한 관리를 주된 이유로 들었다. “아시다시피 농축수산은 작목마다 파동 주기가 있어요. 양계 농가는 대략 3~4년 주기로 전국적인 파동을 겪곤 하지요. 하지만 우리 농장 은 지난 10년 동안 그런 파동을 한 번도 겪지 않았어요. 평소에 철저히 관리한 덕분이죠. 지난 2016년 극심했던 조류 인플루엔자 파동 때를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얼마나 위축됐는지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지 않은 농장의 농장주들조차 겁을 먹고 외출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어요. 하지만 그때 저는 오히려 밖으로 나갔어요.”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같은 열의. ‘작은 거인’은 베팅 감각도 남달랐다. 시중에서 달걀 품귀 현상으로 달걀 한 판이 만 원을 호가하고 있을 때 김 대표는 대형 마트에 직접 찾아가 7,000원에 납품을 제안하고 장기 납품 계약을 성사시켰다. 또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 때도 먼저 나서서 국립농산물품 질관리원에서 농약 성분 검사를 받아 그 결과를 대형 마트에 직접 보여 주며 납품 계약 을 늘렸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김 대표는 10% 이내였던 직접유통의 비율을 50% 이상으로 늘렸다. 보통의 양계 농가들은 생산량의 95% 이상을 도매 유통업자에게 넘긴다. 그러다 보니 가격 결정권이 없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김 대표가 양적 확장보다 제값을 받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유다.

생산의 부가가치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일, 제값을 받기 위한 김 대표의 다음 프로젝트는 ‘선별포장 집하장’이다. 부지는 이미 마련 됐고, 조만간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다. 선별 포장 집하장은 검란기, 파각 검출기, 중량 선별기, 세척기, 건조기, 살균기 등 선별 및 포장에 필요한 자동화 시설을 일컫는다. 달걀 수거 후 질병이나 오염 같은 위험 요소들로부터 청결과 안전을 유지하는 최선의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바탕에 ‘소비자가 최고’라는 인식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해오던 병아리 사육과 분양, 달걀 생산과 직접유통, 계분 퇴비 생산 시스템에 선별포장 집하장까지 더하면서 자신만의 산란계 사업 사이클을 종합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아마도 다음 행보는 국내에서는 아직 병아리 수준인 달걀 가공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인터뷰를 마치면서 앞으로의 꿈에 관해 묻자 김 대표는 자신은 욕심이 아주 많다며 크게 웃고는 대한민국 양계 산업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대답을 했다. 이 목표를 그저 욕심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그는 요즘도 잠을 아껴 가며 열정을 쏟아붓고 있다. 작은 거인이 품고 있는 거대한 꿈이 모두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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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장명 : 선도농장

농장소재 : 경기도 포천시

경영유형 : 직접경영

영농경력 : 12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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