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시대에도 사람들은 음악을 듣고 살았다-상편
  • 윤자현 기자
  • 승인 2020.06.11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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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뉴스 MHN 윤자현 기자] 음악은 언제부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것이 되었을까? 음악은 춤을, 춤은 움직임을, 움직임은 삶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거리마다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귀에는 저마다 이어폰이 꽂혀있다. 사람들의 삶은 역사의 임시종착지이다. 역사가 모여 시대의 흐름을 만들기에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사람들의 행동의 이유를 알 수 있다.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모나리자' '다비드상' '비너스의 탄생' '천지창조', 르네상스에 창조된 작품은 이미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이보다도 더 찬란했다고 전해지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문화 예술을 부흥시키려고 하는 운동이었으며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그 태동이 보였다. 르네상스(Renaissance)는 재생, 또는 부활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사람들은 점차 중세시대의 신 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의 가치와 성취에 초점을 맞추어 인간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출처: 픽사베이, 그리스 산토리니
출처: 픽사베이, 그리스 산토리니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는 13세기 말에 고대 문학을 주제로 작품이 만들어진 것을 시작으로 1500년경 절정에 이르렀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자 그리스와 비잔틴의 학작들이 이탈리아로 피신해 고대 그리스 저술 연구를 시작했고 이 연구가 라틴어로 번역되며 이탈리아에서 고대 문헌 연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인쇄술의 발명에 힘입어 이탈리아의 문헌은 유럽 전역에 빠르게 퍼지면서 유럽은 새로운 인간관과 세계관을 수립하였다. 

15세기 후반에 음악 또한 인문주의자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16세기 중엽에 음악에 관한 연구가 절정에 이르렀다. 실제적 음악 연구보다 그리스 음악의 심리학적, 기적적 효과, 또는 음악과 가사의 관계를 연구했다. 음악을 학문의 대상으로 보았던 중세와 달리 실기에도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부르고뉴 공국 국기
부르고뉴 공국 국기

14세기까지 유럽 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던 프랑스의 다성음악 양식에 영국의 협화음적 경향이 혼합된 새로운 음악 양식이 15세기 초 부르고뉴 공국을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1337년부터 1453년 사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이 간헐적으로 일어났으며 전쟁은 프랑스 영토에서 계속 되었고 영국이 승리하는 듯하였지만 결국 영국이 대륙의 영토를 포기하고 철수하며 백년전쟁이 끝났다. 백년전쟁이 지속되는 동안 영국의 음악은 유럽 전역에 전파되었다. 

출처: Universal Records, Ariana Grande Chirstmas & Chill
출처: Universal Records, Ariana Grande Chirstmas & Chill

15세기에 영국에서 사용된 병행 3도와 병행 6도의 즉흥연주 관습인 파버든이 사용된다. 크리스마스 캐럴의 유래가 된 '캐럴'은 영국 세속음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돌림노래이다. 영어와 라틴어, 또는 영어와 라틴어가 혼합되어 있는 캐롤은 주로 종교적 내용의 가사가 많고 마리아의 찬미나 예수의 탄생에 관한 것이다. 

백년전쟁은 프랑스의 경제적 정치적 영향력을 약화시켰고 문화 주도권은 프랑스의 봉토였던 부르고뉴 공국으로 넘어갔다. 부르고뉴 공국을 통치한 4명의 공작들은 프랑스 왕의 봉신이었지만 왕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렸고 모두 예술의 열렬한 후원자로서 이들의 전격적인 후원은 당시 부르고뉴 양식의 예술을 발전시키는데에 크게 기여했다. 

부르고뉴의 공작은 거주지를 옮겨다니거나 여행할 때에, 심지어 전쟁터에도 궁정 음악가를 수행원으로 데리고 다녔다. 단순함과 명료함을 특징으로 하는 부르고뉴의 새로운 음악양식이 주목받게 되며 이 시기에 각자 음역을 가지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4성부 구조가 확립되었다. 부르고뉴 음악 양식을 대표하는 작곡가 뱅슈아와 두파이 모두 세속음악 작곡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다. 교회음악이 중심이 되었던 중세의 음악과 달리 뱅슈아는 사랑에 관한 노래를, 두파이는 행사, 인물이나 사회적 사건을 주제로한 곡들을 작곡하였다. 

플랑드르 공동체
플랑드르 공동체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말까지 활약한  작곡가들을 플랑드르 악파라고 부른다. 부르고뉴 공국의 3대 공작이었던 필립 선량공이 플랑드르 지역을 통합한 뒤 수도를 플랑드르의 브뤼헤로 옮기면서 문화 예술의 중심지가 플랑드르 지역으로 옮겨졌다. 부유한 상업 도시들이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플랑드르 지역은 예술의 중심지로 부흥할 수 있었다.

출처: 미스터트롯, 김호중
출처: 미스터트롯, 김호중

플랑드르 악파는 전체적인 화음을 고려하는 모방대위법 양식을 사용하였으며 모든 성부에 동등한 중요성을 두었다. 15세기 후반부를 주도했던 음악아 오케겜은 대부분의 생애를 프랑스 왕실에서 봉사하였으며 베이스 가수였던 오케겜은 하상부를 더 낮은 음역대로 확장시켜 낮은성부에도 동등한 중요성을 부여했다. 

두파이와 오케겜을 이어 르네상스의 정통 어법을 발전시킨 작곡가는 16세기 전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끼친 음악가인 조스캥이다. 예술가로서 미켈란제로에 비길 수 있는 조스캥은 당시 '음들의 주인으로서 자신의 의지를 따르게 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조스캥 세대의 작곡가들은 가사와 음악과의 관계에 보다 큰 관심을 기울였고 가사가 전달하는 의미를 음악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중세시대 다음에 도래한 르네상스 시기에도 교회에서 사용하는 가사가 고정되어있고 형식의 제한을 받는 미사곡이 많이 작곡되었다. 또한 작곡은 기존 성가 또는 세속 노래를 바탕으로 하는 정선율에 성부를 추가하고 변형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지역에 예술문화가 꽃피웠던 한편 같은 시기에 독일을 선두로 스위스와 영국에서는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유럽인의 생활, 문화, 사고를 지배했던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자 권위의 균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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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자현 기자 | press@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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