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벨바그의 아버지 앙드레 바쟁, 그림과 함께 보는 바쟁의 사진 존재론
  • 윤자현 기자
  • 승인 2020.04.2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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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회화를 사실주의의 집착으로부터 해방시키다
앙드레 바쟁, 1918-1958
앙드레 바쟁, 1918-1958

[문화뉴스 MHN 윤자현 기자]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영화에는 새로운 물결 '누벨바그'가 불었다. 누벨바그는 전 세계 영화에 큰 영향을 준 프랑스의 영화 경향이다. 사상적으로는 사르트르와 알베르 까뮈의 실존주의 철학에 기초하여 기존의 전통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성향을 지닌다.

누벨바그의 정신적 아버지라고 불리는 앙드레 바쟁은 한 평생 영화는 무엇인가 질문하였다. 동시에 앙드레 바쟁은 영화와 떨어질 수 없는 사진에 주목하며 이미지의 존재론을 깊게 고찰하였다. 

 

루이스 14세, 이아생트 리고, 베르사유 궁전
루이스 14세, 이아생트 리고, 1701 , 베르사유 궁전

고대 이집트에는 죽음에 방부 처리하여 미라를 만들어 죽은 사람을 반쯤 살아있게 유지했다. 루이스 14세는 미라가 아닌 회화로 자신을 기억하도록 하였다. 예술과 문명의 발전은 조형예술에 신비로운 지위를 부여하였다. 사람들은 조형예술이 잊힘을 통해 사망 선고를 받는 이차적 정신적 죽음을 막아준다고 여겼다. 

그러나 오늘날에, 사람을 기억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세계의 모방과 복제에 관한 더 넓은 담론이 펼쳐진다. 앙드레 바쟁은 죽음과 살아있음을 지속해서 확인하려는 욕구를 인간의 욕구로 보았다. 조형예술을 심리와 정신의 관점에서 본다면 조형예술을 사실성과 유사성에서 검토해야 한다.

 

바쿠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95, 우피치 미술관
바쿠스,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95, 우피치 미술관

바로크 예술은 빛과 어둠의 대비를 극대화해 사물의 역동적인 형태를 표현한다. 르네상스에서 처음 현현된 회화의 사실성은 바로크 회화에서 제한적인 표현으로 발견되었는데, 이는 영화에서 조형예술의 가장 진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15세기 서양 회화는 정신적인 표현과 외부 세계의 모방을 통합시키려 노력하였다. 예술가는 3차원의 공간을 우리가 현실에서 우리 눈으로 보는 것처럼 존재하도록 환상을 만든다. 회화는 미학적 표현과 정신학적 표현 사이를 배회하는데, 원근법은 오로지 형태만을 따오며, 실제의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한다. 이러한 한계는 조형예술이 오르고 있었던 발전의 계단을 부수는 작업이며 조형예술의 평온한 상태를 완전히 전복시킨다.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 옵스큐라

본질적으로 세계를 드러내는 사실주의와 눈을 속이는 것을 목적으로 환영의 표현을 통한 허위 사실주의를 사이는 대립한다. 생생하게 실질적이면서 고도로 정신적인 것 사이에서,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며 원근법은 이러한 대립에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바로크 예술 이후 조형예술은 닮음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바로크 예술을 정신적으로 이어받는 것은 사진과 영화이다. 사진과 영화는 기계적인 복제로 사실주의의 집착을 만족시킨다. 회화는 화가의 주관성을 벗어날 수 없지만, 사진의 기계적인 생산은 사람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1966, 개인 소장
르네 마그리트, 데칼코마니, 1966, 개인 소장

사진의 독창성은 물체의 객관성이다. 바쟁에 따르면, “사진은 자연의 현상처럼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꽃 또는 눈송이처럼 자신의 식물 또는 땅의 원천들이 그들의 아름다움과 떨어질 수 없는 것처럼 작용한다”. 사진의 복제는 비판적인 정신을 발휘하여 그림의 실재를 의심하게 했다. 사진은 반대로 사물이 다시 표현된 것, 눈 앞에 놓인 것이며 시간과 공간 어딘가에 놓였던 사물의 이미지다. 사진은 실재와의 생생한 유사성을 갖는데, 사진은 실재의 데칼코마니 또는 이동이다. 사진의 뚜렷한 정도와 상관없이 이는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사물이 카메라 앞에 있었다는 가치를 공유한다. 사진은 복제되는 실재의 존재이며, 실재 그 자체가 된다. 

사진의 이미지와 같은 종류를 결정하는 유사성의 분류는, 회화의 미적인 것과 다르게 결정된다. 사진의 미적인 성질은 현실에 놓여있다. 기계적인 포착은 사람을 객관성으로 설득시키며 사진을 편견 없이 바라보게 만든다. “사진의 힘으로, 우리가 결코 알 수 없고 아무도 알 수 없는 세계의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형성한다. 사진은 다시 예술가를 모방한다”.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잔느 사마리, 1877, 푸시킨 미술관
오귀스트 르누아르, 목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잔느 사마리, 1877, 푸시킨 미술관

사진찍기는 조형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 자유로움과 성취이다. 서양회화를 사실주의의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며 회화가 미적 자율성을 회복하도록 풀어주었다. 사진은 우리의 눈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던 것을 복제하고, 다른 한편 회화를 이러한 속박에서부터 벗어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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