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성열 작가

[문화뉴스 MHN 정성열 아띠에터] 얼었던 한강이 녹고 시체가 떠오르자, 수면 아래 있었던 비밀과 맞닥뜨린 한 남자를 둘러싼 심리스릴러 영화 '해빙'의 명대사입니다.

 
이수연 감독의 섬세한 연출력과 예측불허의 전개, 조진웅부터 신구, 김대명의 열연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데요. 평생 하던 정육점을 아들 '성근'(김대명)에게 물려주고 오래된 정육점 한 귀퉁이에 사물처럼 앉아 있는 치매 노인 '정노인'(신구)이 수면내시경 도중, "팔다리는 한남대교에 몸통은 동호대교에 머리는 아직"이라는 섬뜩한 살인 고백을 내뱉는 장면은 많은 관객을 쫄깃하게 만든 명장면입니다.
 
이는 '승훈'(조진웅)이 빠져든 악몽의 도화선이 되는 장면으로, 영화 내내 아무것도 모르는 듯한 멍한 눈빛과 해맑은 미소, 그리고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응시를 오가는 극과 극의 얼굴을 보여주며 배우 신구가 가진 연기의 스펙트럼과 표현력의 깊이를 실감하게 하죠.
 
'승훈'은 '정노인'이 수면내시경 도중 무심코 내뱉은 살인 고백을 듣고 살인사건의 악몽에 빠지게 됩니다. 이를 알고 있기라고 한 듯 지나치게 친절한 집주인 '성근'과 늘 주변을 맴도는 간호조무사 '미연'(이청아), 모든 상황을 꿰뚫고 있는 듯한 전직형사 '경환'(송영창)까지. 제각기 다른 비밀을 감춘 듯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주변 인물들은 '승훈'의 불안과 공포를 더욱 가중합니다. 
 
   
 
 
"나는…. 나는 함정에 빠졌어"라는 대사는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살인사건의 악몽에 빠진 '승훈'의 답답한 심리를 고스란히 전해 관객들에게 진한 여운을 남깁니다. 또한,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의심의 한 가운데에 놓인 '승훈'을 연기한 조진웅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인물의 감정을 탁월한 연기력으로 예리하고 예민하게 표현해내며 관객들을 완벽하게 몰입하게 합니다.
 
'승훈'이 세 든 원룸의 집주인이자 대대로 정육식당을 운영하며, 치매 아버지 '정노인'과 함께 살고 있는 '성근'은 집주인의 도리라기엔 지나친 친절을 베풀며 시도 때도 없이 '승훈'의 집 문을 두들깁니다.
 
친절하고 따뜻해 보이는 미소와 그 뒤에 감춰져 있던 불안하고 날 선 목소리, 정육 작업을 위해 돌아서서 발골용 칼을 들 때 드러나는 섬뜩함은 기존에 김대명이 보여줬던 모습들을 한 편의 영화 안에서 대조적이면서도 다채롭게 변주하며 '승훈'과 관객을 동시에 의혹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선생님, 머리만 갖고 가시면 어떻게 해요"라는 '성근'의 섬뜩한 대사는 '승훈'을 조여오던 의심과 불안을 더욱 배가시키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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