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영화사에 빛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아카데미 협회도 이에 감동한 것 같다. '위플래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맨 처음 시상하는 남우조연상만 받고 끝날 줄 알았던 '위플래쉬'의 오스카 트로피 레이스는 두 번 더 이어져 마무리됐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고 해로운 말은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이야!"라고 외친 '플레처'(J.K. 시몬스)의 대사처럼 이 작품은 음향상과 편집상을 이어받았다. '제68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결과가 고스란히 대서양을 건너 '제87회 아카데미 시상식'으로 전달된 것이다.

사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셰이퍼 음악학교의 신입생인 '앤드류'(마일즈 텔러)는 우연하게 '플레처' 교수(J.K. 시몬스)에게 발견된다. 플레처 교수는 학교의 자랑인 '스튜디오 밴드'의 지휘자다. 최고의 실력자이지만, 그는 최악의 '폭군 선생'이기도 하다. 인격 모독적인 폭언은 기본이며, 뺨 때리기와 기물 파손도 그에겐 흔한 모습이다.

앤드류 역시 폭력을 당하는 대상의 한 명이 되고 만다. 그러나 앤드류는 오히려 그걸 이용해 플레처 교수가 생각하는 완벽성의 기준에 맞추겠다는 목표로 정말 피를 내는 연습 끝에 메인 드러머 자리에 위치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열정은 광기가 어린 집착으로 변해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지고 만다.

   
▲ '앤드류'(마일즈 텔러, 왼쪽)와 '플레처'(J.K. 시몬스, 오른쪽)의 대립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른바 오기가 나니까 "너 죽고 나 살자!"식의 모습이 강렬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장르가 드라마이긴 하지만 '심리 스릴러'를 보는 모습이 강했다. 서로 무기만 안 들었지 전쟁터에 온 느낌이었다. 물론 그들의 무기는 지휘봉과 드럼 스틱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야말로 '미친 학생'과 '폭군 선생'의 대결은 100분이 좀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몰입하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든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받은 상들이 극의 몰입을 가능할 수밖에 없는 증거물이다. 먼저 남우조연상을 받은 J.K. 시몬스부터 살펴본다. 우리에겐 과거 토비 맥과이어 시절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악덕 편집장'역으로 기억되는 J.K. 시몬스. 이 영화로 거의 40개에 가까운 트로피를 그의 서재에 보관할 수 있게 됐다. 큰 시상식 이력만 보더라도 '제20회 크리스틱 초이스', '제35회 런던 비평가 협회상', '제21회 미국 배우 조합상', '제49회 전미 비평가 협회상', '제72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등 다양하다.

그의 분노에 끌어 찬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솜털이 솟구칠 정도로 전율을 느꼈다. 특히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후보 소개 영상으로 등장한 앤드류의 뺨을 때리는 씬은 그야말로 '미친' 연기를 보여준 대목이었다. 따귀를 때리는 씬은 사실 J.K. 시몬스가 때리는 시늉만으로 여러 번 촬영했었다. 그러나 서로의 합의 끝에 진짜 때리는 것으로 마지막 촬영을 했고, 그것이 본편에 사용됐다고 한다. 여기에 부상 투혼도 발휘했다. 또한, 극의 중후반부 재즈 경연 무대에서 마일즈 텔러가 J.K. 시몬스를 덮치는 장면이 있었다. J.K. 시몬스는 그 상황에 갈비뼈가 부러지는 상처를 입었으나, 그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연기에 몰입됐다고 한다. 이런 광기가 마일즈 텔러와 같이 호흡한 덕에 이 작품은 빛이 날 수 있었다.
 

   
▲ 아카데미 시상식 남우조연상을 받은 J.K. 시몬스

두 번째는 음향상이다. 애초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음향 부문을 모두 싹쓸이 하지 않겠냐는 추측이 돌았었다. 그래도 음악 영화를 기본으로 하므로 '위플래쉬'가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예측이 조심스럽게 있었다. 그러나 아카데미협회의 손은 '위플래쉬'를 들어줬다. 이 영화의 사운드믹싱은 그야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잘 이뤄졌다. 혹시나 "왜 그럴까"라고 의심이 간다면 이 영화의 OST를 한 번 듣고,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라. 그럼 나도 모르게 음악을 또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드럼 스틱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손목을 까딱거리는 본인의 모습을 발견할 것이다.

'앤드류'의 모든 드럼 연주는 마일즈 텔러 본인이 대역 없이 직접 연주한 것이다. 그는 영화를 위해 일주일에 3일, 하루 4시간씩 드럼 연습을 매진했다. 어렸을 때부터 피아노와 드럼을 연주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은 있었지만, 그에게도 피나는 연습은 필요했다. 손에 물집이 잡힐 때까지 연주했고, 그의 드럼 스틱과 드럼 세트엔 영화처럼 피가 항상 묻어있다고 한다. 그 결과 이 영화의 최고 명장면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장면이 끝나면 저절로 박수가 나올 수밖에 없게 된다. 실제로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던 CGV 왕십리에선 영화의 엔드 크레딧이 뜨자마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보기 드문 일이다.

세 번째는 편집상이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보이후드'의 2파전 혹은 '이미테이션 게임', '아메리칸 스나이퍼'가 받을 것이냐는 예측은 다들 했었지만, 정작 '위플래쉬'가 받을 거라고는 생각한 전문가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이미 지난해 '시카고비평가협회상'에서 편집상을 받았으며, 여러 영화제에서 상을 받거나 후보에 오른바 있던 작품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의 최고 클라이맥스에서 보여주는 편집은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어느 콘서트장의 실황 공연을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그리고 때로는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마치 플레처 교수의 말을 영화로 표현하듯 한 생각이 들 정도의 편집을 영화 내내 보여준다.
 

   
 

소위 "'악마의 편집'이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해 줄 영화 '위플래쉬'. 아직 개봉이 보름 정도 남은 3월 12일이라는 것이 국내 영화팬들에겐 매우 안타까운 소식일 테지만, 기다리는 자에겐 분명 복이 올 것이다. 눈과 귀와 호강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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