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뮤지컬 '밑바닥에서'가 돌아왔다.

대학로 학전블루소극장에서 5월 21일까지 공연되는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2005년 초연을 올린 작품으로 지금은 '프랑켄슈타인'의 성공으로 더 유명해진 왕용범 연출의 작품이다.

주인공 페페르 역에 최우혁, 나타샤 역에 김지유, 타냐 역에 서지영, 배우 역에 이승현과 박성환, 바실리사 역에 안시하, 싸친 역에 김대종과 조순창, 나스짜 역에 임은영, 백작 역에 김은우, 조프 역에 김태원, 막스 역에 이윤우와 이지훈이 출연한다.

다른 뮤지컬에서 보기 힘든 느낌의 영화적인 연출을 선보인 그답게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우선 리얼리즘에 눈이 간다. 소극장 작품인데도 '실감 난다'는 느낌을 넘어서서 진짜 배우들이 걱정될 정도로 몸을 쓰고 폭력을 주고받는 위험한 액션 연기를 선보이는 것. '정말 아파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몸을 내던지는 배우들의 연기 속에서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느낄 수 있다. 바로 인물들의 모습을 높은 단상 위의 무대가 아닌, 관객과 같은 눈높이의 삶 속에 던지겠다는 느낌이다.

   
 

'밑바닥에서'의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근대 러시아의 한 술집. 사람을 죽인 죄로 5년형을 받고 감옥에서 살다 나온 페페르가 돌아온다. 그곳에서 사는 여러 사람은 하나같이 페페르와 마찬가지로 밑바닥 인생을 산다. 미혼모란 진실을 감추기 위해 아들 막스에게 비밀을 감춘 타냐, 알콜 중독으로 자신을 잃어버린 배우, 페페르와 연인 사이였으나 백작과 결혼해 귀족이 된 바실리사, 사기와 도박을 사랑하는 싸친과 조프, 밤에만 일하는 매춘부 나스짜, 페페르에게 자신의 죄를 덮어씌운 백작까지. 이들의 삶은 각자의 삶으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12살이지만 또래 아이들보다 한참 어려 보일 만큼 성장이 더디고 늘 기침을 달고 사는 막스에게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들 사이에 봄 같은 여인 나타샤가 등장해 모두의 인생에 잠시 따스한 햇볕을 준다. 하지만, 나타샤가 구원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보여준다. 나타샤로 인해 무언가 변할 것 같았던 이 술집은, 결국 그 밑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채 슬픈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강한 의지와 힘이 아닌 나타샤의 긍정은 이들을 끌어올리지 못한다.

   
 

'이제 나는 다시 태어난 거야'라고 외치던 '배우'의 결말이 보여주듯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인간이 얼마나 변하기 어려운지, 변하려고 해도 인간이, 그들이 모여 만들어진 사회가 얼마나 변하기 어려운지를 관객에게 보여준다. 페페르가 찾는 천국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기에 천국일까.

하지만, 이 작품의 매력은 바로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이 어두운 이야기를 그대로 드러내는 대신, 한껏 유머를 덧댄다. 그로 인해 관객들은 웃으며 살고자 하는 우리 삶 속에서도 기어이 뚫고 나온 송곳 같은 비극을 마주하는 것이다. 유머코드가 짜임새 있기보단 극과 현실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경향이 강하지만, 이 작품의 무게감에 한없이 짓눌려버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칭찬만 하기엔 앞서 말한 장점들과 달리 극의 몰입에 방해가 된다고 느낄 수도 있기에 이 부분은 관객의 취향에 맡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다만, 유일하게 아쉬운 점을 꼽자면 작품이 주는 어두운 정서가 '막스'의 아역들에게 다소 어렵거나, 위험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는 점이다. 뮤지컬 '스위니토드'의 경우 굳이 토비아스 역에 성인 배우를 기용했던 점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의 매력은 적은 곡 수에도 알찬 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11곡 중 4곡이나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을 만큼 한 곡 한 곡의 매력이 보석같이 빛나는 뮤지컬 '밑바닥에서'는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공임을 잊지 않고 비중이 적은 편인 나스짜의 넘버 '오늘도 난 기다려'같은 노래에도 풍성한 재즈 감성을 담아냈다. 재관람을 하면 더 눈물이 날 '나의 천국'이나, 천장을 뚫을 듯한 '내 이름은 악토르 시베르치코프 쟈보르시스키' 등은 설명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다. 러닝타임 120분의 작품에 11곡이 너무 적다고 생각할 관객들도 반드시 작품을 보고 나면 뮤지컬 '밑바닥에서'의 음악에 빠지게 될 것이다.

서정준 기자 some@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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