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인권(왼쪽)과 박철민(오른쪽)이 영화 '약장수'의 한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문화가 있는 날·예술이 있는 삶을 빛냅니다…문화뉴스] "4월 23일 개봉합니다. '어벤져스'랑…"

박철민의 첫 인사에 취재진들이 모두 웃었다. "저도 웃음이 나옵니다. '어벤져스'를 잡기 위해 비밀병기 약장수가 투입됐습니다. 극장 들어오는 길에 포스터를 보면서 '캡틴 아메리카'는 내가 맡는다. 너는 '헐크'를 맡아라, '아이언 맨'을 맡아라. 말을 했는데 도와주십시오."

오는 23일 개봉되는 영화 '약장수'는 공교롭게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하 어벤져스)'과 개봉일이 같다. 서울 로케이션 촬영이라는 요소까지 겹쳐 많은 이들의 기대가 있는 작품과 같이 개봉한다는 것이 부담감이 크기 때문에 나온 출연진들의 말이었다.

1일 오후 서울시 용산구에 있는 CGV 용산에서 영화 '약장수'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렸다. 약장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홍보관, 일명 '떴다방'에 취직한 '일범'의 생존기를 그린 작품이다. 시사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 조치언 감독, 김인권과 박철민이 참석했다. '어벤져스'와의 일전을 앞두고 '일범' 역을 맡은 김인권과 '철중' 역을 맡은 박철민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조치언 감독이 홍보관을 배경으로 찍은 이유는 무엇이며 실제 홍보관과 어머니들을 섭외한 사연을 지금부터 확인한다.

영화 작품을 홍보관으로 정한 이유는?
ㄴ 조치언 감독 : 돌아가신 할머니의 유품 정리를 할 때 장롱 안에 물건이 많이 나왔다. 여기에 고모도 홍보관의 팬인데, 왜 저런 곳을 사촌 형, 형수 님과 싸워서도 다니느냐는 고민이 있었다. 저희 어머니도 이런 곳을 다닐 연세가 되셔서 자료 조사를 해보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악기능도 많은데 순기능도 있다. 이 영화의 출발점이 그들이 아닌 우리 자식들의 문제라고 생각해 그런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떴다방'에 가는 노인분들을 생각해서 영화를 만들었지만, 주인공은 일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ㄴ 조치언 감독 : 시나리오를 쓸 때 고민을 했다. 주인공을 할머니로 둘 것인가 '일범' 캐릭터로 할 것인가였다. 이 영화의 주제 의도가 무엇이냐고 제작사 대표님을 포함한 여러 사람이 질문할 때, 사회적인 면과 떴다방도 있겠지만, 부모에 대한 영화라 생각했다. 이 영화의 출연하는 캐릭터들은 모두 누군가의 부모이며, 부모가 될 사람들이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도 "아빠, 혼자 살기 괜찮겠네!"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 영화 '약장수' 언론/배급 시사회에 (왼쪽부터) 김인권, 조치언 감독, 박철민이 참석했다.

두 배우를 캐스팅한 배경은?
ㄴ 조치언 감독 : 보통 특정 배우를 놓고, 배우에 대해 시나리오를 쓰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았다. 김인권, 박철민을 놓고 쓰진 않았다. 이 역할을 누가 하면 제일 좋을지 고민했다. 인권 씨는 딸이 셋이고 힘들다는 것을 SBS '힐링캠프'를 통해 봤다. 사석에서 만나, 술도 마시면서 이야기해보니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배우의 코믹함보다 자녀에 대한 사랑, 딸 셋의 아빠로 사는 모습이 '일범'의 정신적 부분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감이 생겼다. 흔쾌히 작품에 출연해서 감사하다.

'철중'은 약도 팔고, 어머님과 만담도 하고, 표독스럽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좋은 배우들이 많으신데, 이 점장 역할을 할 땐 박철민 선배님보다 더 좋은 선생님이 없다. (박철민 : 솔직히 이야기하세요) 돈 때문인 것은 맞고요. (웃음) 디렉션을 드리면 애드립과 대본을 써주셔서 연기하신다. '약장수' 연출을 맡게 해 주신 것보다 두 배우를 만나게 된 것이 더 큰 행운이고 감사드린다.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ㄴ 박철민 : 작품을 선택할 땐 작품 자체, 감독, 배역, 개런티 등의 조건들이 있다. 이 작품은 배역이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던 것이라 전력질주를 해서 달려갔다. 대본을 쭉 읽고 나니 '철중'이라는 인물도 '일범'같이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힘든 세상에서 악착같이 살아가고 가족을 지켜야 하니 그렇게 변해간 것 같다. 이 사회가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만나 그렇게 됐을 것 같다는 생각에 '철중' 캐릭터에 접근했다.

우리 어르신들은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긴 시간 동안 사람들을 만나면서 분노하기도 하고, 떠들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우리가 사회에 적응해 바쁘게 살다 보니 부모님께 사랑과 관심을 드리니 어려운 세상이다. 공적인 곳에서 어르신들이 쉽게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이 생겨나지 못하기 때문에 필요악이 생겨나는 것 같다.

마지막 장면이 참으로 인상 깊다.
ㄴ 김인권 : 마지막에 하얗게 분장을 하고, 가발을 쓰며, 연지 곤지를 찍은 것이 가면이 됐기 때문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감정이 나온 것 같다. 그때 감정은 이 사회에 대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도저히 바뀌지 않는, 벼랑 끝에 선 한 남자의 감정이 아니었나 싶다. 걸어가야 하는데 걸어가지 못하게끔 어떤 벽이 딱 서 있을 때, 그 벽을 바라보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상태에서 한 남자가 느낄 슬픔일 것 같다.

'약장수'로 연기를 하며 어머님들이 익히 알고 있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닌 정말 해맑은 어린이처럼 반응해주신 모습과 어르신들과 정말 유치하게 지내고 있는데 딸내미는 피를 토하고 있고, 집세도 밀리며 집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서 오는 삶의 절박함을 이겨낼 수 없는 감정에서 오는 것이었다.

   
▲ 김인권이 영화 '약장수'의 한 장면을 연기하고 있다.

실제 촬영은 어떻게 진행됐나?
ㄴ 조치언 감독 : 자료조사를 하면서 주위에 일하시는 분들을 수소문했다. 숙소에서 같이 먹고 자며 출근했다. 그때 취재했을 때 손님분들은 내가 거기서 일하는 직원인 줄 알았을 것이다. 창고에서 짐도 나르고 하면서 어머님과 친해지고 했다. 일부 가공된 장면도 있지만, 여기서 일하시는 분들의 모습을 처음 보셨을 것이다. 촬영하기 전 가장 걱정된 것이 이곳에 대한 표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관객들한텐 SF 영화 같았을 것이다. 한 번도 못 본 곳이기 때문이다. 가장 사실적이고, 당신들의 어머니가 계신 곳이 이런 곳이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실제 홍보관을 빌려서 촬영했다고 들었다.
ㄴ 조치언 감독 : 세트장을 짓고 싶지만 돈이 없었다. 카메라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인천의 유명 홍보관을 알게 됐다. 장소도 넓고 좋았다. 분위기도 어느 정도 항상 홍보관을 하다 보니 세팅도 되어 있어서 리얼리티라는 부분에서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하는 어머님 중에 배우가 아닌 분들도 있는 것 같다.
ㄴ 조치언 감독 : 실제로 보조출연자분들이 작품에 많이 나온다. 150여 분 정도 출연하는 장면이 나온다. 보조출연자분들로 모두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천에서 홍보관을 다니시는 입심이 센 분들에게 100여 분 정도 부탁해달라고 했다. 그래서 실제로 다니시는 분들이 등장한다. 60~70세 되시는 분들인데, 촬영할 때 편했다. 한마디만 하면 다 아신다. 손뼉 치시는 것과 소리치시는 것을 지시할 때 정말 편했다.

힘을 많이 주는 캐릭터다 보니 분위기 메이커로 활동을 못 했을 것 같다.
ㄴ 박철민 : 시간적이고 경제적인 제약도 있기 때문에, 도시락을 촬영 중간에 먹었었다. 도시락을 기다리면서 "돈가스가 나왔으면 좋겠다", "역시 메이커 도시락이 최고인데"라는 생각에 기다리곤 했다. 다 같이 도시락을 먹을 땐 슬퍼 보일 것 같았지만, 행복하고 신났다. 열악한 조건인데도 열정들이 뜨거워서 한 곳을 향해 몰려갔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매우 좋았다.

해태제과에서 큰 지원을 해주셨다. 특히 '허니버터칩'은 막 만들어졌을 땐데 실험대상으로 우리에게 풀었었다. 촬영팀이 "이건 이상하게 느끼해도 중독성 있네"했었는데 내가 먹어보니 밍밍하고 느끼해서 "쓰레기가 있네"하고 던졌는데 이렇게 성장할 줄 몰랐다. 일반인들이 구하기 힘든 '허니버터칩'을 늘 먹어서 그런지 촬영 현장이 달콤하고 아름다웠다.

재밌을 것 같은데 무거운 것이, 마치 찰리 채플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빠 연기도 하다 보니 무게감이 생겼다.
ㄴ 김인권 : 기자들과 인터뷰할 때 "아이가 몇 살됐냐"라고 이야기하며, "힘든 거 없느냐"는 인터뷰하다 서로 힘든 것만 주고받을 때가 있다 보니 아빠가 되어가는 무게감은 다 비슷한 것 같다. 처음으로 아빠 역할을 했다.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인데 키우면서 누적된 삶의 느낌들이 이 영화에 녹아들었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펼쳐지지만, 마치 숲 밖에서 저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이 시대의 아빠로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러 무게감을 주기보단 어쩔 수 없이 진지함이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뜻밖의 노출씬이 있다. 이 장면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한 것이 있는지?
ㄴ 김인권 : 이해하실지 모르겠지만, 만든 몸이다. (웃음) 그 몸을 만들기 위해 두어 달을 소파에서 먹고, 자고, 시나리오보고 하면서 근육질 몸매를 살로 덮느라, '아들내미'의 뒤태를 만들기 위해 고생했다. 농담 반이지만 '일범'의 뒤태가 그 정도면 귀여움을 받을 거라 생각한다.

박철민 : 원래는 팬티만 입는 것이었는데, 아이디어를 내서 인권이 몸으로 승부를 보자 했다. 시간이 쫓겨서 그 장면을 축소하려고 했는데, 저랑 인권이가 30분 동안 이건 "까야 한다"라고 해서 나온 장면이다.

   
▲ 박철민이 영화 '약장수' 언론/배급 시사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조치언 감독 : 예산이 워낙 작다 보니 회차 안에서 무조건 촬영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홍보관 장면을 찍다가 그 씬은 한 시간 안에 찍은 것이다. 출연하시는 어머님들의 퇴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를 완성하는 것보다 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찍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두 분이 어떻게든 찍겠다고 해서 10분 고민하고 한 시간 만에 찍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안 찍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영화의 최고 백미 중 하나였다.

김인권 : 보통 앞에 공사하는데, 이건 그런 것 없이 창고 같은 공간에서 다 나가라고 하고 벗어서 던지고, 벗어서 던지고 했다. (웃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ㄴ 조치언 감독 : '감동 있는 영화' 같다는 댓글이 두렵다. 감동보단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럴 부분이 많다. "이 영화를 두 번, 세 번 보세요"라고 말하면 "저 녀석 미쳤다"고 들어올 것 같다. 배급하시는 분, 마케팅하시는 분, 지인분 중에 세네 번 보시는 분이 있다. 이분들은 "오늘은 여기에 확 와 닿네", "이런 의미를 찾았네!" 하시는 분이 있다. 드라마 위주로 처음 보시고 난 후, 배우들의 대사를 보면 가슴에 와 닿는 것이 꼭 있다. 극장에서 보신 후 명절 무렵 TV에서 할 때 또 보시면 새로운 재미가 있을 것 같다.

김인권 : 영화가 '어벤져스'와 같은 날 개봉한다. '약장수'가 맞붙는 것처럼 나오는 구도가 재밌다. '어벤져스'는 2시간 동안 잠시 삶을 잊을 수 있게 하는 영화인데, '약장수'는 보고나면 삶이 더 새롭게 느껴질 영화다. 배우로 아주 재미난 이야기, 듣고 싶은 이야기를 보게 해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민감한 이야기를 민감하지 않은 척하면서 설명하는 노력도 중요하다고 본다. 영화처럼 무릎을 꿇고 "도와주십시오"를 해야 할 것 같다.

박철민 : 처음엔 개봉일 보고 "미쳤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힘센 놈이랑 붙어야 야무지게 산다고 하듯이 아메리카 영웅들과 만나서 고군분투하겠다. '아이언맨'의 슈트를 벗기고, '토르'의 망치를 뺏어서 '캡틴 아메리카' 방패를 작살내겠다.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라고 한다. 사회를 만나야 그 고독함과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산다. 많은 어르신이 그렇게 계신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내 눈빛을 볼 사람이 필요해서 어르신들이 홍보관을 다니시는 것 같다. 화장지와 프라이팬을 받으러만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작품을 보고 우리 부모님이 이렇게 살고 계시는구나, 우리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하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구나 하는 것을 진지하게 분노하면서, 아파하시면서 보시면 좋겠다.

공약이라고 할 건 없고, '또 하나의 약속'때도 노 개런티 출연했었다. 출연료 대신 지분을 받았는데, 수익이 발생할 경우 그 지분을 기부하려고 했다. 최근에 수익이 나와서 150만 원을 기부했었다. 이번에도 작은 영화여서 개런티를 거의 받지 않았다. 지분만 받았는데, 40만 관객이 넘으면 10만 명당 천만 원씩 받기로 했는데, 그 금액을 받는다면 좋은 곳에 쓰도록 하겠다.

문화뉴스 양미르 기자 mir@mhn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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