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뉴스 MHN 서정준 기자] 화려한 비주얼과 감각적인 연출이 만난 걸작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연극 '미친키스'가 지난 18일 오후 2시 대학로 TOM 1관에서 프레스콜을 열고 작품의 전막을 공개했다.

공연 시연은 1장부터 10장까지 조동혁, 김두희, 손병호, 정수영, 이나경, 심새인, 미미 배우가 출연했고 11장부터 19장까지는 더블캐스팅된 이상이 배우와 전경수 배우, 김로사 배우가 출연했다. 인호 역의 오상원 배우는 다른 일정으로 불참해 손병호 배우가 전막을 소화했다.

 

조광화 연출 20주년 기념 작품으로 공연되는 연극 '미친키스'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불안한 남자 '장정'이 자신의 삶에 닥친 변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점차 파멸로 향해가는 선택을 하는 과정을 그렸다.

이날 선보인 공연 역시 인물의 감정과 함께 변화하는 강렬한 조명, 악사의 아코디언 소리 등이 미니멀리즘한 무대 위를 채우며 장정의 공허함을 극대화했다.

이어지는 기자간담회는 조광화 연출과 함께 장정 역 조동혁, 이상이, 신희 역 전경수, 김두희, 인호 역 손병호, 영애 역 정수영, 김로사, 은정 역 이나경, 히스 역 심새인, 악사 역 미미가 참석해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좌측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동혁, 조광화 연출, 손병호, 심새인, 이상이, 이나경, 미미, 정수영, 전경수, 김두희, 김로사.

10년 만에 연극 '미친키스'를 올렸는데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한 부분이 무엇인지.

ㄴ 조광화 연출: '남자충동'과 비슷한 고민을 많이 했다. 요 몇 년 새에 사회적 분위기가 굉장히 바뀌고 트렌드가 변했다. 다들 알다시피 젠더 감수성이나 폭력, 성소수자 문제 등이 과밀하게 예민해진 것 같다. 그래서 '남자충동'도 수정했고 '미친키스'도 순화하는 작업을 했다. 조금 더 긴 관점에서 시대가 변한 게 있는데 제가 청년일 땐 지독한 사랑, 격한 사랑의 드라마가 많았다. 사람들이 거기에 감동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농도 짙은 에너지를 오히려 힘겨워하는 시대인 것 같다. 배우 에너지는 톤을 빼고 히스, 악사의 역을 부각해서 이미지나 분위기, 스타일에 방점을 찍었다. 배우의 존재감을 뺀 건 아니고 자연스러운 정도로 톤을 조절하고 스타일로써 관객이 자연스레 상상할 수 있게 고민하며 만들었다.

 

TV나 영화 쪽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다 오랜만의 연극이다. 이 작품을 선택한 계기나 연습하며 느낀 점이 있는지.

ㄴ 조동혁: 이 연극을 선택한 계기는 옆에 계셔서가 아니라 정말 조광화 연출님 때문이다. 제가 7년 전에 같이 연극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생각도 나고 너무 잘해주셔서 '또 불러주시면 또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7년 만에 불러주셔서 고민 없이 바로 승낙했다. 3월에 스케줄이 많아서 연습량이 부족해서 간신히 마쳤고, 지금도 연출님께 혼나고 가르침 받으며 고민 중이다. 그런 면에 있어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최대한 집중해서 하려고 노력 중이다. 계속 발전해서 좋은 '장정'의 모습 보여드리겠다.

 

약 10년 만에 '미친키스'에 다시 돌아온 소감이 듣고 싶다.

ㄴ 정수영: 10년 전에도 했고 17년 전에도 했었다. 20대에 한 번, 30대에 한 번, 40대에 한 번 하는 셈인데 인제야 비로서 '영애'의 나이가 된 것 같다. '미친키스'는 제게 친정과도 같은 작품이다. 자주 찾진 못해도 늘 오면 우리 집같다. 이 작품이 편안한 작품이 아니지만, 배우로서 여기가 내 집이다 싶은 작품인 것 같다.

 

첫 연극 도전이다. 참여하게 된 소감과 조광화 연출과 호흡 맞추며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ㄴ 이상이: 이번에 장정 역을 제안받으며 장정의 허무함, 외로움에 공감했다. 장정만큼의 깊고 쓰라린 것에 다가가진 못했지만, 그런 것에 어느 정도 공감했기에 작품에 참여하며 더 마음이 갔고, 조광화 선생님과 작업을 한번 해보고 싶었다. 연극만이 줄 수 있는 연극성, 스타일, 호흡 등을 같이 맞춰보며 많이 배우고 재밌게 공연에 임하고 있다.

 

'남자충동'에 이어 '미친키스'에도 출연한다. 서로 스타일이 다른 작품인데 연속으로 함께 조광화 연출과 작업하며 느끼는 새로운 점이 있는지.

ㄴ 손병호: 조광화 연출과는 30년 지기인데 서로 바라만 보다 20주년 기념으로 연락이 와서 하게 됐다. 특히 '남자충동'은 너무 잘 만든 작품이라 저는 처음에 장정이 하고 싶었다(웃음). 20년 전에 만나야 했는데 아쉬웠다. '미친키스'는 예전에 보지 못했는데 대본상의 느낌이 정말 에로틱했다. 그래서 저도 뭔가 정사씬이 있을까 했는데 없더라(웃음). 다행이고 안타깝지만,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미친키스'를 대할 때마다 자꾸 공허해진다. 외로워지고, 눈물이 많아지고. 나도 세월을 사는 동안 아픈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구나. 아니면 내가 사랑할 때 어떤 게 날 괴롭힐까. 사랑은 도대체 뭘까 하고 질문하고 대답하는, 자신에게 또 한 번의 숙제를 하는 무대인 것 같다. 극 중에서 가만히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 정말 무척 외롭고 안타깝다. 인간이 가진 절대 고독, 그게 '미친키스' 이야기가 아닌가. 하면 할수록 빨려드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많은 관객이 반드시 다섯 명의 인물 중에 자기에게 맞닿는 인물이 있을 것이로 생각한다. '미친키스'를 통해 사랑이 뭔지, 삶이 뭔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대답을 가져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이번에 작곡, 편곡, 연주, 연기까지 한다. 그중 음악적인 부분에서 중점적으로 작업한 부분에 관해 궁금하다.

ㄴ 미미: 우선 10년 만에 이 작품에 다시 참여할 수 있어 기쁘고 제겐 특별히 애정이 있는 그런 작품이다. 고독, 열정, 희열, 쓸쓸함 등을 담은 감정들과 음악이 하나가 될 수 있게 가장 중점을 뒀다. 이번에는 연주뿐만 아니라 배우와의 연기도 가미돼 그들의 감정선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던 것 같다. 하나의 운율이 편곡돼 여러 가지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데 조금 더 노력을 기울였고, 음악이 작품의 한 부분인 만큼 튀지 않게 구성했다. 그런데 공연을 본 분들의 좋은 평을 읽다 보면 새로운 에너지가 전해지는 것 같아서 기쁘다.

 

10년 전 공연을 못 본 사람을 위해 구체적으로 변화가 생긴 점을 설명해주면 좋겠다.

ㄴ 조광화: 배우들 연기를 달라지게 한 건 없다. 그전에는 연출이 셌다. 배우가 창자까지 꺼내게끔 연기하게 했다면 이젠 무리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하고, 그들이 가진 성격, 기질에 맞게 하려고 한 점이 다른 것 같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장면 두 가지를 빼고 극적 요소를 다른 곳에 넣었다. 예를 들면 '히스'가 타로점을 보는 장면, '은정'이 쇼핑을 잔뜩 하고 '장정'과 부딪히는 장면에서 끝 무렵에 하는 대사 같은 게 위치가 옮겨진 건데 위치가 바뀐 것만으로 대사가 훨씬 담백해지고 감정이 덜 들어갔다. 동생 전화를 도청하는 장면에서도 원래 없던 장면인데 전화기를 뺏으려고 나오다 앞으로 나오며 이미지 컷이 하나 들어간다. 전체적 구조가 장면과 장면 사이에 더 많은 사건이 있을 듯한 분위기를 줬다. 장면 전환에서 인물이 교차하는 지점, 조명과 음향, 아코디언 등에 의해 서정적인 여백을 두는 것이 많아졌다. 커튼콜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미지처럼 만들려고 했다. 이런 디테일한 게 섞여들었다.

 

극 후반부에서 모두가 파멸로 치달을 때 오히려 조명이 밝고 희망찬 음악이 나온다. 그런 연출 의도가 어떤 건지 설명 부탁한다.

ㄴ 조광화 연출: 이 부분 외에도 작품 전체가 그렇다. 사실 이 작품을 심각하게 하려면 깊은 수렁으로 계속 파고들어야 하는 작품인데 그렇게 가면 20년 전, 10년 전에 했을 때나 관객이 보기엔 힘든 거다. 이중적인 거다. 장정도 보면 무척 지독해 보이면서 오히려 엉뚱한 면이 희화화돼서 웃을 수 있는 장면도 있다. 아코디언이란 악기도 그런 장면과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쿵작쿵작하니까 신나 보이지만, 집시 음악들이 그렇다. 춤추기 위해 신나게 연주하는 것 같아도 가만히 들어보면 쓸쓸하고 공허한 이상한 특성이 있는 것 같다. 바람 소리로 음을 내는 악기들의 공통점인 것 같은데 아코디언이 특히 그렇다. 그런 발상에서 아코디언이 들어갔고 마지막 곡도 지난 시즌에서 황강록 작곡가의 음악인데 그때 요청할 때도 뭐랄까. 역설적으로 밝게,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밝은 척하는 느낌을 주문했다. 아코디언이 주는 이중적인 음감을 이용하려 애썼다.

 

'남자충동'에 이어 맨발 연기를 주문한 이유가 궁금하다. '영애'는 발을 통해 사랑을 얻고 싶어하는 데 발에 뭔가 의도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ㄴ 조광화 연출: 빨리 밝혀야 할 것은 발 페티시를 가진 건 아니다(웃음). 이 작품은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다. 반쯤은 일기나 편지에 썼던 내용이다. 제가 사랑했던 여자의 발을 씻어준 적이 있다. 그냥 움직이기 불편해서 한 건데 뭔가 둘 다 숙연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안고 키스하는 것보다 진짜 마음이 닿는 느낌. 발이 흔하게 만지는 곳이 아니지 않나. 어떻게 보면 스승의 날 세족식 같은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진심을 주지 않는 이상 상대의 발을 만지고 씻어주긴 어려운 것 같다. '영애'같은 경우도 생략된 전사가 있는데 언제부턴가 만남이 어긋나고, 마음속에 남아있는 것은 발을 사랑해줄 때의 진심이었고, 그게 아쉬운 거다. 그런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썼고 맨발은 이전에도 밝혔지만, '남자충동', '미친키스'는 예민한 작품이라 배우들 컨디션이나 앙상블, 관객의 종류나 온도 등에 의해 많이 흔들린다. 감각적인 작품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감성이 덜 찰 때와 예민할 때의 차이가 크기에 그걸 보완하려고 아코디언이나 스타일을 더 많이 넣은 것도 있다. 배우들에게 극 내내 집중하라고 하기에는 극에 필요한 집중의 강도가 크다. 그래서 배우를 항상 예민하게, 감각이 살아 있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했는데 극단 목화의 오태석 선생님이 항상 극단에서 맨발 연기를 하는데 저게 방법이 아닐까 했다. 요새는 거의 신발, 양말, 슬리퍼를 신고 있어 발이 늘 감싸져 있다. 바닥을 느낄 틈이 없다. 그런데 맨발이 되는 순간 알몸보다도 예민해지는 감각이 있다. 의자에 앉은 건 금방 잊어도 마루바닥을 밟는 제 발의 감각은 계속 느껴진다. 이런 예민함이 알게 모르게 배우들에게 영향을 미쳐 계속 생생하길 바랐다. 실리적인 이유도 있는데 이 작품도 공간이 계속 실내외로 변하는데 신발을 계속 벗었다 신으면 배우들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어서 그런 기능적인 면도 있다.

 

두 '장정'의 특징이 달라 보이는데 설명해 달라.

ㄴ 조광화 연출: 우선 조동혁 배우는 보기보다 나이가 꽤 있다. 그동안 아픈 사랑도 했을 거다. 연기로 해결할 수 없는, 배우 자체가 가진 진심이 필요한 작품이다. 10년 전에 했을 때는 엄기준 배우가 장정을 했는데 베르테르처럼 엄기준만의 감성, 다른 배우에게 없는 진한 슬프고 아픈 감성이 있었다. 조동혁 배우에게도 그런 거처럼 시간이 지닌 힘들을 봤고, 이상이 배우는 처음에 제작사에서 추천했는데 20대 배우라길래 절대 젊은 배우는 '미친키스'의 감성을 이해 못 한다고 안 된다고 했다. 근데 공연을 보라고 하길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봤는데 공연 끝나자마자 오케이했다. 근래 20대가 가지지 못한 감성을 갖고 있더라. 욕심이 났다. 나이에 비해 깊은 감수성이 선택의 요인이었다.

 

안무도 맡고 '히스' 역으로 출연도 한다. 조광화 연출 작품은 연극인데도 늘 뮤지컬 배우가 기용되는데 타고난 춤꾼으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뒀는지 궁금하다.

ㄴ 심새인: 연출님께서 이야기하신 게 장면 전환 사이의 움직임과 느낌에 관한 이야기다. 장면 사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을 수 있고, 저희 작품이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에너지가 존재하는데 그걸 씬 사이에 연결하고 사이에 떨어진 배우들의 감정 자체를 엮어서 자연스럽게 갈 수 있게끔 했다. 기교를 부리거나 보여주기보다는 많이 자제하고 감각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집중해서 보여드리려고 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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