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이 바꾼 전두환 대통령의 운명
북한은 왜 전두환을 노렸나
'벌초 계획'은 왜 실행되지 못했나
급변, 테러에서 훈풍으로 요동치는 남북 관계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문화뉴스 권성준 기자] 1983년 10월 9일 버마(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대한민국 외교사에 비극을 낳은 전대미문의 폭탄 테러가 일어난다.

순방 중이던 전두환 대통령을 노린 북한의 기습 테러였다. 대통령 암살은 실패했지만 당시 '황금 내각'이라 불린 각료 등 17명이 대거 희생되었다.

유례없는 참사였던 만큼 의혹과 추측들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대통령은 어떻게 테러를 피할 수 있었을까? 북한은 왜 테러를 자행한 것일까? 보복 공격 '벌초 계획'은 왜 실행되지 않았던 것일까?

그리고 1984년 갑자기 불어온 남북 관계의 훈풍까지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를 둘러싼 이야기를 '역사저널 그날'이 추적해본다.

▶ '4분'이 바꾼 전두환 대통령의 운명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4분', 전두환 대통령의 생과 사를 가른 시간이다. 전두환 대통령은 단 4분의 차이로 아비규환이 된 테러 현장으로부터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이 운명의 시간에는 외교적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대통령을 수행할 미얀마 외상의 차가 고장 나 4분을 지각하자 전두환 대통령은 똑같이 '4분' 늦게 아웅산 묘소로 출발한다.

이 사실을 모르는 테러범들은 예상한 시간에 지나가던 이계철 대사의 차를 대통령의 차로 착각한다. 그리고 예정된 시각에 폭탄을 터뜨린다.

▶ 북한은 왜 전두환을 노렸나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테러범들이 검거되며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테러범들은 진모, 신기철, 강민철로 모두 북한 특수부대 소속원들이었다.

생포된 강민철은 경찰에게 조사를 받던 중 뜻밖의 고백을 하는데 북한은 왜, 무슨 목적으로 전두환을 노렸을까?

자백과 더불어 테러가 북한의 소행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증거들이 발견된다. 그날의 전모를 말해준 증거들은 무엇이었을까? 

▶ '벌초 계획'은 왜 실행되지 못했나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10월 13일 여의도에서 열린 테러 희생자들의 영결식에 100만 명의 군중들이 모였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국민들은 슬픔과 충격에 빠지고 전국은 반공 열기로 들끓었다.

12·12사태에 가담했던 군은 북한에 대한 보복 공격까지 계획한다. 작전명은 '벌초 계획'이었다. 그러나 전두환의 만류로 계획은 무산되었다.

국민적 분노에도 불구하고 보복 공격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이어진 작전명 '늑대 사냥' 과연 그 결과는?

▶ 급변, 테러에서 훈풍으로 요동치는 남북 관계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사진=KBS '역사저널 그날' 제공

1984년부터 남북 관계에 갑작스러운 훈풍이 불어온다. 중부지방에 대홍수가 찾아오자 북한은 구호물자를 지원하며 남북한 관계 개선에 물꼬를 텄다.

1985년 처음 북한의 모습이 방송국 카메라에 공개되자 우리나라 국민들은 동물이 아닌 사람이 사는 평범한 북한의 실상을 마주한다. 

그리고 지학순 주교를 포함한 고향 방문단이 상호 방문하면서 해방 이후 처음으로 이산가족의 상봉이 이뤄진다.

불과 1년 만에 테러에서 화해 모드로의 돌입한 그 이유는 무엇이며 요동치는 남북 관계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을 고민해 본다.

17명의 소중한 목숨을 잃은 우리나라 외교사의 비극적인 참사 그리고 규명되지 않은 의혹들 더불어 이 사건이 남북 관계에 던진 질문은 무엇인지 3월 9일 화요일 밤 10시 '역사저널 그날', "전두환 암살 미수,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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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와 진실

'4분'이 바꾼 전두환 대통령의 운명
북한은 왜 전두환을 노렸나
'벌초 계획'은 왜 실행되지 못했나
급변, 테러에서 훈풍으로 요동치는 남북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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