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300회
2021년 2월 9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방송

역사저널 그날

[MHN 문화뉴스 유수빈 기자] 9일 방송되는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다룬다.

비극의 시작, 공수부대 투입!

12.12 쿠데타로 군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한다. 그다음 날인 5월 18일, 광주 대학생들의 시위 진압에 공수부대가 전격 투입된다. 대북 특수작전 임무로 훈련된 공수부대가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 시위 진압에 동원된 것이다. 투입 첫날부터 공수부대의 진압은 무자비했고 이날의 강경 진압으로 두 명의 사망자까지 발생한다. 특히 시위 진압 과정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대검을 사용한 공수부대의 폭력은 1988년 12월 국회 광주청문회에서도 논란이 된다.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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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새벽, 광주역 인근에서 처참하게 버려진 두 구의 시신이 발견된다. 사인은 총상과 구타였다. 분노한 10만 명의 시민들이 전남도청 앞에 집결한다. 하지만 시민들 앞에는 실탄으로 무장한 계엄군이 있었다. 

시민들은 계엄군의 사과와 철수, 그리고 연행된 시민 석방을 요구했지만, 계엄군은 철수를 거부했고 이에 저항하는 시민들을 향해 오후 1시 즈음 집단 발포한다. 이날의 발포로 50명 이상의 시민들이 사망했다. 특히 시위와 무관하게 계엄군에게 총격당하는 희생자까지 속출한다. 여전히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명령자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광주 외곽에서 이어진 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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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의 집단 발포 후 시민들은 총을 들고 무장한다. 시민군의 등장에 계엄군은 광주 외곽으로 일시 철수하지만, 그곳에서 만행을 이어간다. 외곽 마을의 길을 막고 차량과 사람들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저질렀고 계엄군끼리의 오인 사격 후 인근 마을 청년들을 연행해 분풀이로 살해하기에 이른다. 심지어 동네 공터에서 놀던 11살 어린이까지 계엄군 총에 맞아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1980년 5월 하순, 광주 외곽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본다.

5월 27일, 전남도청 진압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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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광주를 공격한다. 전남도청에서 끝까지 저항하던 일부 시민들을 무력 제압하는 등 계엄군은 공격 한 시간 남짓 만에 광주를 장악한다. 계엄군은 ‘선량한 시민을 구출하기 위해 군 병력을 광주 시내에 투입’했다는 보도문을 발표한다. 진압 작전 상황 종료 이후에도 시민들의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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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민주화운동의 상징으로 불리며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5·18 민주화운동. 하지만 수많은 진상규명 활동에도 불구하고 많은 의혹이 남아있다.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벌어진 일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2월 9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 – 1980년 5월 광주의 열흘'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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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1980년 5월 광주의 열흘

역사저널 그날 300회
2021년 2월 9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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