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한 장씩 쓴 편지의 무게와 사라짐
'원'에 대한 상징 경이로워...'원'과 관련된 작품 계속해서 낼 것
작가 조소희 개인전 '일흔일곱장의 편지' 오는 24일까지 열려

전시'일흔일곱장의 편지' 전경
전시'일흔일곱장의 편지' 전경

[문화뉴스 조희신 기자] 만약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편지가 어느 마지막 시점에 모르는 사람들에게 발송이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설치미술가인 조소희 작가는 2003년부터 시작해 매일 1~2장의 편지를 꾸준히 써 내려갔다. 2019년도에는 만 장의 편지가 완성되면서 그만큼 시간의 무게에 도달했다. 만 장의 편지 일부를 발취해 77개장을 전시한 ‘일흔일곱장의 편지’ 개인전이 4월 24일까지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비트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개인전은 반투명한 실크 천과 얇은 종이에 타자기로 꾹꾹 눌러 담은 77개의 편지가 전시돼 있다.  편지의 내용은 일상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시대적인 문제 등을 담고 있으며, 어느 마지막 시점까지 다다르면 익명의 사람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조소희 작가는 “실재성이 극도로 과잉되면 필연적으로 사라짐에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어느 순간이 다르게 되면 모든 편지는 연기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갤러리 안에는 조소희 작가의 생각과 감정이 다채롭게 뒤섞여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안에서 코로나19를 겪고 있는 현 시대에 대한 문구가 적힌 편지부터 시작해서 77개의 사소하지만 재치 있는 일상의 글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편지를 앞으로도 반복적이면서 조용한 리듬으로 쌓아갈 조소희 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조소희 작가와의 인터뷰

이번 개인전은 조소희 작가의 생각과 감정 등을 편지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이번 개인전은 조소희 작가의 작품 '편지-인생작업'의 일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다.

Q자기소개 짧게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시각예술가 조소희입니다. 프로필에는 설치미술가라고 소개되어 있지만, 저는 제가 생각하는 주제들을 설치, 드로잉, 조각, 비디오, 퍼포먼스등의 다양한 시각적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으니 시각예술가라는 표현이 좀 더 맞는 거 같네요.

 

Q이번 개인전인 <일흔일곱 장의 편지>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이번 개인전은 2003년부터 매일 1~2장의 편지를 꾸준히 만들고 제 인생의 마지막시점에서 익명의 사람들에게 발송되도록 계획된 '편지-인생작업'이라는 진행적인 프로젝트의 일부 입니다. 이것을 평생에 걸쳐서 해보겠다고 다짐하게 된 건 2007년부터예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로젝트를 시작했으니14년 정도 됐네요. 2019년도에는 편지가 10,000장에 도달해서, 지난해 8월에 10,000장의 편지를 통째로 보여주는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이번 개인전 '일흔일곱장의 편지'에서는 그동안 쌓인 편지들 중에서 일부 문구를 발췌하고, 최근에 만든 편지들을 덧붙여 77개로 리메이크한 것들이예요.

'편지-인생작업'  프로젝트는 저의 작품 세계 안에서 중요한 기둥이 됩니다. 제 인생의 마지막시점까지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삶과 일상의 희노애락과 애오욕,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단상 등을 단순하게 기록한 편지를 만드는 겁니다. 이러한 매일의 수행적인 태도를 예술 행위와 그 결과물로 드러내는 작품이지요.

 

Q타자기를 사용한 의미는?

저는 강렬한 주체적 사물 보다는 그것에서 떨어져 나온 나머지들, 연약한 사물, 혹은 삶에 깃든 존재적 고통 등에서 모종의 아름다움을 느껴요. 그러나 한편으론 연약한 것이 집적체가 되어 육중한 무게를 갖거나, 약함과 강한 것이 맞닿아 만들어내는 묘한 긴장감을 좋아하죠. 이런 이유로 타자기의 강하게 치는 압력이 종이나 휴지 같은 연약한 사물 위에 새겨지는 것이 마음에 든 것 같아요. 그리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중간세대로서 자연스럽게 타자기가 지닌 아날로그의 향수에 끌려던 것도 같네요.

 

Q이번 전시물 중 특별히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작품 중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첫날부터 최근까지 일일 확진자 숫자를 모두 기록한편지가 있어요. 어떤 날은 10명, 어떤 날은 100명, 200명으로 치솟고 1000명대 까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숫자를 써 놓고 보니 우리의 고통에 비해 그 숫자가 그렇게 무심해 보일 수가 없어요. 그러나 숫자를 천천히 따라가다보면, ㅇㅇ 학교에 감염자가 나왔다거나, 종교집단에서 집단 감염이 끊이지 않거나 등… 종이 위에 무심하게 새겨진 확진자 숫자들 이면에 시절의 현실적인 고통이 숫자와 숫자 사이에서 느껴지지요. 그리고 이런 고통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 비해, 우리들은 이 숫자들처럼 무심하게 살고있는 것이 이질감이 들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죠.

전시된 편지들을 천천히 보면 이런 시대적 문제를 담고 있는 글들을 볼 수 있어요. 저는 일상의 다양한 경험과 감각, 생각, 느낌들을 편지에 쓰고 있으니, 만 장의 편지 안에는 우리 시대의 현실적인 문제들도 많이 기록되어 있을 겁니다.

                            

Q이번 전시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으신가요?

이번 전시된 편지들에는 일종의 언어 유희들이 있는데요. 예를 들면 ‘생각 없는 생각’, ‘자유로부터 자유’, ‘쓸모 없음의 쓸모’ 등. 이것은 말장난 같아 보이지만, 저에게는 의미가 있는 유희예요. 이를테면 제가 자유를 열렬히 갈망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유를 추구하는 것 자체에서 벗어나고 싶어하거나, 쓸모 없는 것에 의해 되려 강조되는 쓸모의 아이러니같은 생각들이죠. 제게도 작업중에 크고 작은 성찰이나 통찰 등이 있었겠죠. 그러나 그것을 깨달음이라고 언명한다면 작업 행위가 조금은 경직되고, 괜히 어깨에 힘을 주는 것 같은 촌스러운 태도가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깨달음은 없는 깨달음’이라 말하고 싶네요(웃음).

Q작품을 만들 때마다 영감을 주는 것은?                                                                     

때때로 독서에서 영감을 받습니다. 독서에 기대면서 작품 생각을 할 정도로, 독서를 하는동안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생각이나 작업의 주제가 정리되기도 해요. 저는 현대무용을 좋아해요. 현대미술과 현대무용이 유사한 지점이 있어요.

유학시절 초기에 ARTE라는 TV채널의 한 프로그램에서 그 당시 제게는 매우 인상적인 영상을 보게 되었어요. 벽에 사람이 서 있고, 다른 한 사람이 서 있는 인체의 외곽선을 따라 선을 그리는 단순한 영상이었어요. 벽에 있는 사람이 차례차례 바뀌면서 한 줄의 선이었던 것이 차례로 여려 겹으로 겹쳐지면서 아주 두툼한 드로잉 그림처럼 변해 갔어요. 당시에는 그것이 미술인지 무엇인지 몰랐으나 저는 그 영상에서 매우 강렬한 인상을 받았고요. 나중에 그 퍼포먼스가 독일의 안무가 피나 바우쉬의 ‘비디오단츠’ 중 한 작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무용수였고, 무심하게 서있는 그들의 신체를 단순하게 기록한 작품이었죠. 전통적인 춤을 보는 것에만 익숙했던 저는 그것이 무용일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어요. 그때부터 현대무용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Q앞으로 어떤 작품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나요?                                                 

요즘 ‘원’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원이라는 상징은 너무 흔한 상징이예요. 많은 예술 작가들이 원과 관련해 수없이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철학, 정신분석, 미술 뿐 아니라 과학이나 종교에서도 원은 아주 중요한 상징이자 탐구의 대상으로 다뤄지고 있어요. 저는 특히 만다라를 그리는 수행적 행위에 관심이 갑니다. 언제부터인지 제 작품 안에서도 끊임없이 크고 작은 원의 이미지가 등장한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리게 되었어요. 무의식적으로 원을 다루는 것을 좋아한 거예요. 그래서 ‘원’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일단 제가 원에 대한 상징을 경이롭게 여기는 것 같았어요.

원은 완전을 가리키는 상징인데 기하학의 세계에서는 이론적으로 완벽한 원은 그릴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완벽한 상징이 절대로 완전할 수 없다는 설정, 그 열림이 너무나 시원 했어요. 우리는 모두 원을 그리고 있는 존재들 이예요. 모두 완벽한 원을 그리고 싶어하고 또 그러려고 하죠. 그러나  완전에는 도달할 수 없도록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우리가 완전함을 지향하며 끊임없이 불완전한 원을 그리는 그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는 지점이예요. 그 행위 자체가 참 아름다워요. 저는 이런 생각에 기반해서 '대충 그린 원'이라는 시리즈를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이번 전시에는 조각으로 만든 '대충 그린 원'이 전시되어 있지요.

과거에는 흔하고 뻔한 상징은 피하려 하고, 새롭고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러나 요즘은 그런 생각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인류의 모든 문화 영역에서 그토록 원을 많이 사용하고서도 끊임없이 이 상징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원은 정말 의미심장한 상징일테고, 저 하나쯤 더 원을 그린다고 해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웃음) 앞으로 '대충 그린 원' 시리즈를 다양한 형태로 시도해 볼 예정이에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첫날부터 최근까지 하루 확진자 숫자를 담아낸 편지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첫날부터 최근까지 하루 확진자 숫자를 담아낸 편지/사진=비트리 갤러리 제공

 

Q미술을 즐기지 못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미술은 어떻게 즐기면 될까요?       

일반적으로 미술, 특히 현대미술은 문턱이 높다고 여기는 것 같아요. 미술작품을 머리로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실제로 미술이 지나치게 개념적으로 느껴질 때도 있죠. 작품의 정보를 아는 것보다는 작품을 그 자체로 감각하고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는 진동이 있는데, 그 진동 안에는 주파수가 있듯이 각각의 작품에도 고유의 주파수와 표정, 온도 같은 것이 있어요. 그러니 개념이나 의미를 먼저 찾기보다, 작품 자체가 갖고있는 특유의 감정이나 파동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요? 관람자의 고유한 경험과 내적인 파동이 작품의 결이 만나는 어느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울림, 그곳으로부터 발생되는 질문 등이 생겨날 수도 있어요. 그걸 우리는 ‘감동’이라 부를 수도 있겠네요. 그 순간을 만나는 경험이 반복되면 미술을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러한 경험이 쌓이다 보면 미술을 좋아하게 되고, 미술을 보는 폭도 넓어지게 되겠지요.

 

Q시각 예술가로서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나요?

제 작품들의 전체적인 문맥을 통해서 ‘이 작가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정직했다. 그것을 의심할 수 없다’는 인상이 남는다면 좋겠어요. 제가 만드는 이미지에 대해 순간순간 솔직하지 못한 작업은 설령 다른 사람에게 호평을 받더라도, 저는 정작 만족하지 못하고 왠지 부끄러운 결과물이 되고 말아요. 그러므로 저는 작가로서의 여정, 작업의 과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그렇게 담백하게 이어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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