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난설헌 시 '몽유', '몽유광상산'를 발레로 승화시켜
허난설헌의 처연한 삶을 표현한 박슬기 발레리나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문화뉴스 김창일 기자] 5월 22일, 23일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수월경화’가 공연됐습니다. ‘수월경화(水月鏡花)’는 ‘물에 비친 달과 거울에 비친 꽃’이란 의미로 눈에는 보이지만 잡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보이지만 실존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요? 허난설헌에겐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자유'가 아니었을까요? 

허난설헌의 남동생 허균은 ‘홍길동전’을 집필할 만큼 뛰어난 문인으로 성장했지만, 그녀는 결혼 후 두 명의 아이들을 잃고 친정까지 몰락하며 불행히도 27세의 나이에 생을 달리했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못마땅히 여긴 시댁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일까요.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그녀는 자신의 불행을 첫째는 조선에서 태어난 것이오, 둘째는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오, 셋째는 결혼생활이라고 했습니다. 

국립발레단의 ‘허난설헌-수월경화’는 허난설헌의 감우(感遇)와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을 담았습니다. 감우와 몽유광상산을 잠시 감상해보겠습니다. 

 

감우(感遇 느낀 대로 노래한다) - 허난설헌

하늘거리는 창가의 난초 가지와 잎 그리도 향그럽더니,

盈盈窓下蘭 枝葉何芬芳

가을바람 잎새에 한번 스치고 가자 슬프게도 찬 서리에 다 시들었네.

西風一被拂 零落悲秋霜

빼어난 그 모습은 이울어져도 맑은 향기만은 끝내 죽지 않아,

秀色縱凋悴 淸香終不死

그 모습 보면서 내 마음이 아파져 눈물이 흘러 옷소매를 적시네.

感物傷我心 涕淚沾衣袂

 

 

몽유광상산(夢遊廣桑山 꿈속에 광상산에서 노닐다) - 허난설헌

푸른 바닷물이 구슬 바다에 스며들고

碧海浸瑤海

푸른 난새는 채색 난새에게 기대었구나.

碧海浸瑤海

부용꽃 스물일곱 송이가 붉게 떨어지니

芙蓉三九朶

달빛 서리 위에서 차갑기만 해라.

紅墮月霜寒

 

그녀의 삶을 돌이켜 보면, '감우'와 '몽유광상산'의 시가 슬프게만 느껴집니다.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국립발레단은 허난설헌의 삶을 발레로 풀어냈습니다. 막이 오르며, 한 폭의 시가 쓰여지는 듯한 붓을 따라 국악과 함께 발레리나의 춤사위가 펼쳐집니다. 1시간여의 러닝타임 동안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무대의상도 공연의 집중도를 높인 요소였습니다.

처연한 삶을 살아가며 가슴 속에 맺힌 한이 얼마나 깊었을까요? 프레스콜 공연에서 박슬기 발레리나는 허난설헌의 한을 강약을 조절한 아크로바틱한 동작으로 표현했습니다. 분출할 듯한 감정의 폭발을 발레리노의 합을 통해 숨기고, 꺼내기를 반복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미칠듯했던 허난설헌의 삶을 표현했습니다.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허난설헌-수월경화 프레스콜

 

사람은 매일 매일 감정이란 악보를 그립니다. 대부분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오선지 안에서 오르고 내기를 반복합니다. 심장이 지옥에 떨어질 듯한 기울기는 그리 자주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허난설헌의 삶은 ‘희망’이란 탈출구는 찾아오지 않았고, 오선지 안에 ‘절망’의 되돌임표만 존재했습니다. 

터져버릴 듯한 허난설헌의 심정을 연기한 박슬기 발레리나의 몸짓은 욕망과 허무의 앙상블을 보여줬고, 벗겨낼 수 없는 감정의 굳은살로 더 이상을 숨을 쉴 수 없었던 그녀의 안타까운 삶을 표출했습니다. 

국립발레단의 다음 공연은 ‘말괄량이 길들이기’로 6월 15일부터 20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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