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우·강혜인·이지수·손유동·정휘·신재범이 들려주는 이야기
가장 어려운 보통의 하루가 쌓아 만든 '나'를 찾아가는 시간
11월 21일(일),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사랑은 시소 같다는 말이 떠오른다. 한쪽이 내려가면 반대쪽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상대를 높은 곳에 올려주기 위해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땅과 부딪히는 충격을 받아가며 속이 문드러지는, 그런 사랑도 있겠지만.

오르락내리락하며 그 사람과 마주하는 것. 네가 그 높이를 만끽할 때 나는 그런 너의 미소를 볼 수 있다면 바닥을 쳐도 괜찮을 수 있는 사랑, 더 성숙해진다면 그 시소에서 내려 각자가 하고 싶은 걸 하다가도 다시 손을 마주 잡고 돌아갈 수 있어야 하겠다. 언제나 사랑이 놀이터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할 수 없으니 말이다. 


웹툰이 뮤지컬로, 비교하며 보는 차원의 확장

'이토록보통의' 공연사진/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이토록보통의' 공연사진/사진=파크컴퍼니 제공

뮤지컬 ‘이토록 보통의-어느 밤 그녀가 우주에서’는 다음 웹툰이 원작이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는데, 색연필과 물감으로 칠한 듯한 그림체가 눈에 띄어 가볍게 들어갔었다. 하지만 스크롤을 내리면 내릴 수록 충격이거나, 마음에 무언가가 걸리는 느낌을 받았다.

뮤지컬은 이런 웹툰의 그림체가 주는 소소함을 간직하며 마음에 묵직함을 전달했다. 작은 무대 양쪽 등퇴장을 하는 문 두 개와 LED 영상이 각 장면과 상황마다 무대에 영사된다. 거기에 조명과 배우 둘. 무대장치와 소품이 거의 없기 때문에 두 배우의 연기가 더 날 것으로 보였다, 작은 숨소리마저 제이와 은기 두 주인공의 이야기에 설득력을 불어넣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대사와 넘버(뮤지컬의 노래)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한 게 아쉬웠다.

이런 상황과 대사 후에 왜 노래를 부르는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비약이 섞인 대사만큼 좀 더 일상적인 대화가 필요해 보였다.

까마득한 우주 속 수많은 별, 그곳에 사는 지구인, '나'를 아는 것

'이토록보통의' 공연사진/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이토록보통의' 공연사진/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제이 역을 맡은 강혜인 배우의 연기가 인상깊었다. 두 번째 넘버인 ‘만약에 우리가’에서 불러준 노래서부터 본격적인 몰입을 도왔다. 

우주항공국 직원으로 어린 시절부터 꿈꿔오던 우주 탐사의 기회를 얻지만, 연인인 은기는 1년 동안 떠나있어야 한다는 걸 알고 축하해주지 못한다. 나는 우주비행사를 꿈꾼 적도 없고, 로켓에 타보고 싶다는 열망도 딱히 없지만 실연을 당한 것처럼 마음이 아렸다. 언젠가 작은 꿈에 닿았다고 생각했을 때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을 제일 처음 듣고 싶어 달려갔을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깊어진 둘의 갈등이 밤하늘을 가득 수놓은 별 어느 한 곳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느꼈다. 우리가 살아가는 보통의 하루는 어느 찰나의 사고로 보통이 아닌 하루가 되기도 한다. 도통 앞을 알 수 없는 까마득한 어둠이지만 신은 그 밤을 어둠으로만 채우지 않았고, 반짝이는 별을 그려 놓았다. 뮤지컬 속에서의 세계관처럼 기존에 있던 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별로 도피한 그곳이 탈출구라면, 사실 그 별의 입구로 들어온 것이 된다. 

결국 무대는 광활한 어둠 속 어느 별에 사는 ‘나’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때론 과거의 당신도 지금의 당신과 다른 사람이에요.

어찌 됐건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이고, 우리는 매 순간 변합니다.

그때그때 최선의 선택을 다한 자신들이 있을 뿐이지요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인 우리의 삶, 외로움을 덜어내기 위해 향한 길

'이토록보통의' 공연사진/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이토록보통의' 공연사진/사진=파크컴퍼니 제공

원작 작가인 캐롯은 이 에피소드가 A라는 갈림길과 B라는 이상한 골목 중 망설임 없이 B를 택해 집으로 돌아가는 버릇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고 말했다. 그 B:이상한 골목은 동네 미용실에서 밖에 내놓고 기르는 귀여운 개를 만날 수 있기 때문.

‘아주 사소한 습관 같은 것들. 그런 게 없다면 그건 나라고 할 수 있을까?’ ‘만약 정말 핵심적인 부분들은 같지만 점처럼 작은 습관들이 탈락하면 그건 나일까?’ 이런 질문들이 언젠가 나도 생각해본 적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길고양이를 바라보고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걸 좋아한다. 사람의 손을 탄 고양이 같으면 꼭 다가와 제 코를 부딪친다. 경계심이 강해 다가오지 않으면 멀찍이서 그 귀여운 자태를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의 모습을 사랑스러워했고 지금의 나는 무릎을 굽히고 엉덩이를 뗀, 꽤 힘겨운 자세로 오래 있을 수 있다. 단지 고양이를 보기 위해 단련되었다.

자양동 꼼박사/사진=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자양동 꼼박사/사진=문화뉴스

사실 외로움이 많아서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길에서 처음 만났거나, 늘 마주쳤던 고양이와 킥킥대는 시간엔 그 외로움이 동그랗게 작아져서, 또 어느 고양이가 굴리는 장난감 공처럼 별 게 아닌 게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사람은 참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은 습관들, 사소한 버릇들, 지나온 이야기들,당연하게 주어지는 일상은 '나'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귀한 재료들이다. ‘보통’은 많음이나 미숙함, 지나침과 결여가 있기에 통계 낼 수 있는 지점일 뿐이지만. 그 지점을 벗어나게 되었을 때 '보통'이 얼마나 기적의 연속이었는지를 느끼기도 한다.

제이의 마지막 대사처럼 보통의 하루를 살아내는 당신이 어쨌든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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