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관점에서 서울을 보는 '대서울' 시리즈 집필
서민들의 삶을 통해 본 역사, 도시문헌학으로 기록
마을에 애착이 생길 수 없는 구조

[문화뉴스 김창일 기자] 지난 10월 26일 서울의 문화예술 진흥 및 발전에 기여한 시민 또는 단체에게 수여하는 ‘제70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시상식이 열렸다. 서울특별시 문화상은 1948년 제정된 이래, 한국전쟁 시기를 제외하고 매년 시상하여 지난해까지 총 708명의 공로자에게 수여해 온 전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학술 부문에서 <서울선언> 시리즈 책을 통해 평민, 서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도시문헌학이라는 고유모델로 기록하고, 지역답사를 통한 역사·문화를 기록으로 지역문화발전에 기여한 김시덕 문헌학자가 선정됐다.

김시덕 문헌학자를 만나 문헌학이 무엇이고, ‘대서울’ 시리즈, 향후 연구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제70회 서울시 문화상 학술부문 수상자, 김시덕 문헌학자
제70회 서울시 문화상 학술부문 수상자, 김시덕 문헌학자

 

제70회 서울특별시 문화상, 학술 부문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우선, 문헌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책의 물질적인 성격부터 사회적인 맥락까지 다 보는 기초학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16세기부터 19세기 동아시아 고서들의 물리적인 성격을 탐구합니다. 책을 크게 만들었다면 ‘왜 크게 만들었나?’, ‘글자 간격은 왜 이런가?’ 등 책에서 의미하는 바가 있습니다. 글자에 적힌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해석하는 게 문헌학이다. 

보르헤스가 ‘세상은 거대한 도서관이다’라고 했습니다. 읽힐 수 있는 문헌학적 요소가 많다. 하지만 대부분 읽히지 않고 방치되고 있습니다. 제 방법론을 적용해 도시문헌학이라고 했습니다. 

 

새로운 관점에서 서울을 보는 

대서울 시리즈 집필

 

김시덕 교수
김시덕 교수

 

서울시와 수도권, '대서울'을 탐구하는 <서울선언>(2018), <갈등도시>(2019), <대서울의 길>(2021) 등을 집필하셨는데, ‘대서울’ 시리즈의 집필 동기가 궁금합니다. 

4년 한국을 떠나려고 했습니다. 답사를 좋아해 정리하자는 의미로 집필했습니다. 첫 번째 책이라서 ‘내가 바라보는 서울은 당신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저는 사대문 밖에 살았고, 어떻게 보면 제가 살아온 면적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에 살고 싶어하거나 직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까지 삶의 범위를 넓혀가고 있는지 추적했습니다. 동쪽으로 보면 춘천, 원주에서 출퇴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노원구에 거주하는 분들은 원주 혁신도시 출퇴근이 수월합니다. 같은 서울이지만 노원구에서 구로는 너무 멀죠. 남쪽으로 보면, 오송까지 출퇴근을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대문을 포함한 서울 전체와 밀접하게 연결된 경기도 지역을 다룬것입니다. 

 

지리적 또는 시간적으로 ‘대서울’ 시리즈가 어디까지 이어질까요? 

두 방향인데, 하나는 서울시를 다시 한번 꼼꼼히 보는 측면입니다. 다른 하나는 ‘한국의 발견’이란 책이 있었습니다. 80년대에 전국을 다니면서 조사한 책인데, 이후로는 이런 책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40년간 우리나라의 변화가 많이 있었기에 한국의 발견과 같은 연구를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한국의 발견’은 80년대 쓰여져 농촌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저는 도시권을 중심으로 보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삶을 통해 본 역사

도시문헌학으로 기록

 

관악동네역사 (사진=관악문화재단 제공)
관악동네역사 (사진=관악문화재단 제공)

 

서민들의 삶에 초점을 맞춰 도시문헌학이라는 고유모델로 기록하고, 지역답사를 통한 역사·문화를 기록하셨습니다. 

생활사에 가까운 쪽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문학의 전통이 강한 러시아, 프랑스, 일본 같은 나라들은 문학에 역사가 담겨져 있습니다. 러시아를 이해하려면 정치사가 아니라 토스토예프스키를 보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일본도 그렇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역사 문서만 보면 빠지는 게 많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는 중층, 하층의 사람들은 정치, 역사 문서를 남기지 않습니다. 기사, 단편 수기, 재개발 반대 팜플렛 등도 봐야 합니다. 비주류 역사를 판단하기 위한 종합적 접근방법입니다. 

관악구 문화예술 기초자료집을 보면, 사진 자료가 많던데 몇 년에 걸쳐 꾸준히 찍은 것인가요? 사진 자료를 남기면서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2017년 7월부터 본격적인 답사를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촬영한 사진이 20만 장이 넘습니다. 많이 다니고 많이 찍고 있습니다. 사진을 많이 촬영하다 보니, 처음보다는 사진 구도 잡는 게 늘었습니다.

휴대폰으로 촬영을 하는데, 장소에 따라서는 카메라를 다니면 위협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재개발구역의 경우에는 사진 촬영을 하면 경계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역사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밝히고 사진을 찍는데, 각자의 이권에 따라 다른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다양한 촬영을 위해 드론에 관심이 가고 있습니다. 

 

마을에 애착이 생길 수 없는 구조

 

관악동네역사, '관악구는 어떤 도시인가' 캡쳐
관악동네역사, '관악구는 어떤 도시인가' 캡쳐

 

지역의 자료를 찾다 보면, 10년 전, 20년 전 자료가 대부분입니다. 예전보다는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역의 조사가 없는 걸 보면, ‘왜 자기 동네에 애착이 없을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게 이번 답사의 핵심 중 하나입니다. 세입자와 임대인은 2년마다 떠나야 합니다. 2년마다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라 지역에 애착이 없습니다. 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없고, ‘우리나라’, ‘우리 민족’ 등 거대 담론만 남는 것입니다. 전세제도가 만든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의 한 마을을 답사하는데, 주민이 와서 ‘우리 마을에 뭐 볼 게 있다고’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10년, 20년 기록이 없는 이유입니다. 막상 우리 동네에 누가 살았고, 5년 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모릅니다. 

 

행정구역은 일정 면적을 나눠서 시군구를 정합니다. 사람도 사건도 행정구역보다는 사람의 행동반경에 따라 달라집니다. 동네보다는 테마를 정해 조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구로, 금천, 관악은 묶이는 구조입니다. 하나의 덩어리에서 행정구역을 나누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나타납니다. 한편으로 지방 가면 인구 단위로 묶어서 선거를 진행합니다. 행정편의로 가는 것이죠. 관악구의 경우, 남현동은 관악구와는 흐름이 다른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이번 자료집을 만드시면서 관악구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신 점이나 인상 깊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습니다. 남산 철거민이 이제는 철거당하지 않겠다. 승리하겠다는 의미로 승리촌을 형성했습니다. 주변에 승리교도 있고요. 또한 철도청 사람들이 거주한 철도촌이란 마을도 있습니다. 

계획도시인 국회단지가 봉천, 신림에 있습니다. 수익사업으로 만든 곳입니다. 방배동에도 국회단지, 해방촌이 있습니다. 서울대 부지에는 동방, 화랑단지가 있었습니다. 

 

김시덕 교수
김시덕 교수

 

앞으로 문헌학자로서 남기고 싶은 점은?

책의 시리즈가 두 가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일본과 아시아 문제를 연재하고 있는 ‘일본인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선언> 시리즈 4번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성백제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강남지역에는 유물이 없다’는 말을 합니다.  수많은 유물들이 도굴되고 파괴됐습니다. 영동개발로 백제 무덤 300개 중 10여 개만 남아 있습니다. 역삼동 고분군, 방배동 유물 다 없습니다. 위치도 모릅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박탈감, 저항감이 있습니다. 

서울 600년은 조선 중심주의 사관입니다. 조선 중심주의에 대한 안티체제로서 하나는 근현대, 다른 하나는 백제, 고려를 보고 있습니다. 

 


 

김시덕 문헌학자의 '관악동네역사' 마지막 사진에 이런 주석을 달았다.

"골목 방앗간에 모인 동네 사람들. 주인은 사교성이 좋고 유머가 많은 사람이라서 방앗간은 동네에서 상호관계의 거점이었다. 접근이 쉽고 항상 열려 있는 가게와 사람들을 좋아하고 대화를 아끼지 않았던 주인은 나의 현지연구에 큰 도움이 됐다. 이 방앗간과 그 주인 없이 박사학위 취득은 아마 어려웠을 것이다. 방앗간은 현 위치에서 1970년대 말 개업하여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 1999년 6월 21일 촬영"

마을 사람의 정(情)은 서로를 향한 열린 마음에서 시작된다. 열기보단 닫기에 익숙한 현대인의 생활이 사람과 마을에 대한 정을 줄인 원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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