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계를 넘어 우리 사회 전체의 대안을 찾아···
"우리는 공통된 고민을 함께하는 비주류 예술 연대"

[문화뉴스 박준아 기자] 다사다난했던 2021년이 벌써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올해의 미술계는 어땠는지 또 내년엔 어떤 전시와 기획들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해줄지 궁금하다. 이 궁금증을 위해 주요 미술관·갤러리의 전시 책임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는 기획을 준비했다.

 

대안공간 루프 외경 (사진 =  대안공간 루프 홈페이지)
대안공간 루프 외경 (사진 = 대안공간 루프 홈페이지)

 

두 번째로 대안공간 루프의 양지윤 디렉터를 만났다. 대안공간은 ‘미술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신진·전위·실험 작가들을 소개하는 비영리 공간을 뜻’하며, 대한민국 현대미술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개념이다. 

2000년대 이후 대안공간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던 때도 있었다. 그중에서도 대안공간 루프는 한국 최초(1999년)이자, ‘프로젝트 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과 함께 살아남은 유일한 1세대 대안공간이다. 

그런 면에서, 대안공간 루프는 대표적인 대안공간임과 동시에 한국 미술사적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안공간 루프의 양지윤 디렉터를 만나 현재의 대안공간 루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양지윤 디렉터
양지윤 디렉터

 

Q. ‘대안공간 루프’의 소개를 비롯한 간단한 소개 말씀 부탁드립니다.

루프는 가장 오래된 대안공간이에요. 재작년부터 법인으로 바꿔서 좀 더 공공적인 아트센터처럼 됐죠. 대안공간의 정체성을 생각하면, “무엇에 대한 대안인가?” 하는 질문을 생각할 수 있어요. 

제가 루프에 오고 나서 4년 동안 ‘생태, 여성, 젠더, 자본주의 비판, 여성작가 개인전, 여성 예술가들 전시’를 주로 열고 있어요. 각 전시는 개별적인 전시처럼 보이지만 통합적인 맥락을 갖고 있어요. 초기의 대안공간이 미술계에 국한된 대안적인 성격이었다면, 지금은 자본주의 가부장제, 생태 같은 사회 전체에 대한 이슈로 확장된 거죠.

이런 맥락을 잇는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포함한 다양한 워크숍을 꾸준히 열고 있어요. 관객과 작가, 기획자 구분 없이 다 함께 비슷한 고민을 나눠요. 친구 혹은 가족들과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참여자들과 정말 끈끈해져요. 함께 이야기하면 서로 “이런 고민은 저 혼자 하는 줄 알았어요.”라는 말이 항상 나와요. (웃음) 가장 로컬 하면서도 글로벌한 공통된 고민을 하는 비주류 예술연대인거죠.

Q. 지난 한 해는 디렉터님께 어떤 한 해 셨나요? 올해 가장 인상에 남았던 주요 전시와 활동이 궁금합니다. 

작년에 코로나 때문에 6개월 정도 공간을 닫았었어요. 그 기간 오히려 리서치를 많이 할 수 있었고 올해 전시를 더 잘 준비할 수 있었어요. (웃음)

올해 초에 했던 전시 중에 <레퓨지아>라는 11명의 여성 예술가들의 사운드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가 있었어요. 생태 문제에 대한 주제를 낭독, 사운드스케이프, 노이즈 작곡, 힙합 DJ, 국악까지 정말 다양하게 풀어냈어요. 그중에는 국내/외, 8~90대의 전설적인 여성 작곡가의 곡부터 고등학생 참여 작품까지 폭넓은 작가들이 참여했어요. 특히, TBS 교통방송과 함께 한 덕분에 작품이 라디오로 송출돼, 더 많은 관객의 반응을 볼 수도 있었어요. (웃음)

 

'레퓨지아: 여성 아티스트 11인의 사운드 프로젝트'  작품 중 민예은 작가의 '이게 맞나'의 스틸컷. 국악고 학생들이 참여한 곡으로 코로나 세상에 대한 가사를 직관적으로 담았다. (사진 = 대안공간 루프 홈페이지)
'레퓨지아: 여성 아티스트 11인의 사운드 프로젝트' 작품 중 민예은 작가의 '이게 맞나'의 스틸컷. 국악고 학생들이 참여한 곡으로 코로나 세상에 대한 가사를 직관적으로 담았다. (사진 = 대안공간 루프 홈페이지)

 

Q. 돌아오는 새해, 어떤 전시들이 예정인지 계획(프로젝트)이나 변동사항이 있으신가요? 

코로나로 인해 미뤄진 해외작가 전시들이 다 내년으로 예정돼 있어요. 저희가 원래 끌고 가던 ‘기술과 생태’,‘자본주의 가부장제’와 같은 주제들을 심화할 예정이에요.

예를 들어 ‘에코 페미니즘’ 워크숍이 2022년 상반기부터 시작해 내년 초에 결과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에요. 마리아 미즈가 고안한 ‘에코 페미니즘’의 연구방식이 있어요. 이 방식을 따르며 예술적, 사회적 실천에 적용한 참여자들의 결과물을 발표할 예정입니다. 

Q. 디렉터님이 생각하시는 한국미술에 관한 소견이 궁금합니다. (한국미술에 변하길 바라는 점 혹은 아쉬운 점)

현대미술에서 하는 사회적 비판이라는 것이 이제는 판에 박은 듯한 자본주의 비판을 하잖아요. 이제는 클리셰(판에 박은 듯한 문구 또는 진부한 표현)가 돼 버린 자본주의 비판이 아쉬워요. 

저희는 클리셰를 피하고 좀 더 본질적이고 실천적인 일을 하려고 해요. 예를 들면, 올해 예술가를 위한 사회주의 세미나가 있었어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구하는 세미나였죠. 주말마다 나흘 동안 3시간씩의 강도 높은 세미나였는데도 참여자들 모두 열성 있게 같이 공부했어요. (웃음) 그리고 그 세미나에서 파생된 작품이 AI에게 ‘자본론’을 3000번 정도 읽고 해석하게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품이 있었어요. AI가 자본론을 꽤 잘 이해하고 있더라고요. (웃음) 

 

양지윤 디렉터
양지윤 디렉터

 

Q. 관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교양시민 관객’이란 말이 있잖아요. 저는 항상 저희 관객들의 수준과 진지한 태도에 놀라곤 해요. 어렵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도 관객분들께 더 많이 배우고 저희 프로그램의 방향성에 대해서도 힘을 얻게 돼요. 

저희는 모든 게 비영리인 만큼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열린 공간이에요. 전시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준비돼 있어요. 위에서 말씀드린 세미나처럼 인문학적인 세미나도 있지만, 먹고 사는 일상에 대한 ‘비건(Vegan 엄격한 채식주의)’ 워크숍에서는 “요거트가 먹고 싶을 때는 무엇을 먹을 수 있나?” 하는 정말 실질적인 이야기를 나누죠. (웃음)   

 


 

12월 26일까지 진행되는 ‘간결한 생각들: 생태-젠더-공산’ 작품 중 권병준 작가의 로봇 퍼포먼스. 조명과 안개, 빔으로 된 배경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간에서 로봇의 퍼포먼스(춤)가 이뤄진다.
12월 26일까지 진행되는 ‘간결한 생각들: 생태-젠더-공산’ 작품 중 권병준 작가의 로봇 퍼포먼스. 조명과 안개, 빔으로 된 배경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간에서 로봇의 퍼포먼스(춤)가 이뤄진다.

 

양지윤 디렉터는 “어려운 걸 어렵게. 라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요? 언제나 관객들에게 도리어 배우고 놀란다.”고 말한다. 

대안공간 루프는 그들의 주제 의식을 관객에게 정말 다양한 방식의 작품들과 기획으로 제공한다. 양 디렉터의 전시를 보면 ‘어려운 걸 어렵게, 하지만 흥미롭게’ 알고 싶어지게 만드는 전시가 어떤 것인지 느껴진다. 그 단적인 예가 12월 26일까지 진행되는 ‘간결한 생각들: 생태-젠더-공산’ 전시다.

안개를 뚫고 오체투지를 하고 수피댄스를 추는 로봇들의 환상적인 퍼포먼스와 전시 중에만 경험할 수 있는 사운드아트 작품들을 들으며 40여분 산책시간을 갖는 등 일반미술관에서는 접할 수 없는 흥미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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