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여홍일(음악칼럼니스트)

랑랑의 피아니즘은 진화하고 있다. 이는 지난 2월23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7년만의 그가 선사하는 세상에서 가장 장대한 곡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담은 랑랑의 최근 앨범은 공교롭게도 그의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도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40살 미만의 아직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스스로의 예술적인 발전에 있어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는게 랑랑 본인의 변(辯)이기도 한 시점에 나온 음반이기 때문이다.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BWV 988은 바흐 음악세계의 소우주를 담은 걸작이라는 데엔 이견 없이 공감대를 형성해온 작품. 아리아로 시작해 30개의 변주를 거쳐 다시 아리아로 회귀하는 대장정은 그렇게 거대하지만 굽이굽이 랑랑의 독창성이 깃들어 있고 촘촘하게 구성되어 청중들에겐 감상의 몰입을 선사하는 걸작의 귀중한 연주 시간이었다.

 

랑랑의 피아니즘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장면. (사진 마스트미디어)
랑랑의 피아니즘은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장면. (사진 마스트미디어)

 

“굽이굽이 랑랑의 독창성이 깃들어 있고 촘촘하게 구성”

내가 랑랑의 최근 피아노 리사이틀을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감상한 것은 7년 전인 2015년 12월8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리사이틀이다. 

“레퍼토리를 어떻게 선곡할지 오랜 시간 연구했다”는 그의 말에 수긍할 진지한 작품에 대해 세심한 배려와 오랜 고민의 흔적이 엿보이는 차분하면서도 우아한 악상의 차이콥스키의 사계와 바흐 이탈리안 콘체르토로 전반부 연주를 끝내고

이어지는 후반부에서 쇼팽 4개의 스케르초로 “흐릿한 부분은 전혀 없었고 모든 라인이 깔끔하게 연주되었다”는 평을 실감하며, 공연 전체가 랑랑이 하나의 멋진 시적(詩的) 구조물로 축조 완결 짓는 듯 했던 피아노 리사이틀이었다.

주로 교향곡과 협주곡의 대표적 작곡가로 알려진 차이콥스키의 사계를 통해 랑랑은 "매우 아름다운 섬세한 하모니를 발견하곤 하며 작품 스스로 시적"이라는 자신의 술회대로 시적 감수성과 예의 트레이드마크라 할 수 있는 고개를 젖히는 장면들이 다수 포착되며 미하일 플레트네프의 차이콥스키 사계 피아노 연주가 연주에만 몰두 집중하는 진지함이 묻어나는 반면 랑랑은 예술가로서 청중과 소통하는 것을 사랑한다는 것을 방증하듯 청중석을 향한 몸짓도 보여 랑랑의 끼는 감출 수 없었던 기억을 갖고 있다.

현란한 스타성과 화려한 기교 대신 시적 서정의 깊이를 보여준 무대는 계속 이어져 단아한 선율의 바흐 이탈리안 콘체르토에선 “피아노로 다양한 색채를 표현할 수 있는 게 매력”이라는 것을 보여주듯 랑랑의 섬세함과 생동감 있는 연주력이 표출됐다.

쇼팽 4개의 스케르초 역시 자신의 술회대로 리드미컬한 성격을 끌어내면서도 강약의 변화를 잘 살리면서 랑랑의 하모니의 견고함과 구조 등을 유지하는 개성 있는 리듬으로 캐릭터들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여 제2번의 연주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양손을 치켜드는 관객을 향한 환대 매너는 관객이 누릴 수 있는 랑랑 피아노 리사이틀의 특권이다.
양손을 치켜드는 관객을 향한 환대 매너는 관객이 누릴 수 있는 랑랑 피아노 리사이틀의 특권이다.

 

“각각의 변주곡이 가진 독특함 살리면서 작품을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봐”

랑랑이 지난 2월23일의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 무대에서도 들려주었지만 그의 2020년 도이치 그라모폰 음반을 들어보면 “내가 작품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껴질 만큼 곡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랑랑의 말에 수긍할 만한 연주를 들려준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기전 랑랑은 훌륭한 하프시코드 연주자이자 피아니스트인 안드레아스 슈타이어를 만나 페달의 사용법과 루바토, 꾸밈임, 다이내믹, 바로크 연주스타일, 그리고 특히 중요한 이 걸작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프로젝트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실로 경이적인 작품으로 가장 창의적인 작품인 동시에 건반으로 연주하는 레퍼토리중 가장 다차원적인 작품이라는 것이 랑랑의 코멘트다.

이에 따라 각각의 변주곡이 가진 독특함을 살리면서도 이들이 서로 연결되게 만드는 것을 가장 큰 과제로 본 랑랑은 작품을 보다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봤던 것 같다. 이에 랑랑의 녹음 본은 피아니스트가 이 작품과 함께 해온 영감이 넘치는 긴 여정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평자들의 의견이기도 하다. 

외국계 피아니스트의 내한공연으로서 피아노 리사이틀의 전석 매진 신화를 써오고 있는 공연으론 지난해 11월22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예브게니 키신의 리사이틀 이후 올해 연초의 가장 비중 있는 피아노 리사이틀로서 랑랑의 리사이틀을 지목할 수 있을 만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 공연장의 열기는 공연장 주위에서 중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관객들도 상당수 몰리고 음반과 프로그램 책자를 구입할 긴 행렬 등으로 뜨거웠다.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와 결혼한 이후 랑랑이 배우자를 무대에 대동하며 부부 듀오를 연주하고 있다.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와 결혼한 이후 랑랑이 배우자를 무대에 대동하며 부부 듀오를 연주하고 있다.

 

흥미로웠던 것은 한국계 독일 피아니스트 지나 앨리스와 결혼한 이후 랑랑이 배우자를 무대에 대동하며 부부 듀오로 브람스의 헝가리안 댄스와 브람스의 왈츠2번, 지나 앨리스의 솔로로 엄마야 누나야, 랑랑 솔로로 자스민 플라워를 앙코르로 들려줘 이날의 무대가 韓-中의 아름다운 음악이 결합된 밤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피아니스트 랑랑하면 등과 허리를 시원하게 뒤로 제치는 화려한 제스처와 테크닉의 현란한 스타성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여기에 곁들이는 아이돌 스타 같은 양손을 치켜드는 관객을 향한 환대 매너는 관객이 누릴 수 있는 랑랑 피아노 리사이틀의 특권이다.

올해의 랑랑 피아노 리사이틀은 친근한 악상이 펼쳐지는 슈만의 아라베스크와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레퍼토리 탓으로 랑랑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을 연주 때의 얌전하지 않은 끼의 과장된 표정과 제스처 등은 없었다. 


※ 외부 기고 및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주요기사

 
저작권자 © 문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