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달라는 말보다, 먼저 다가가 말 거는 협회가 될 것’
서울연극협회, 세부적인 운영위 구성해 사소한 지원부터 실천

[문화뉴스 문수인 기자] 나와는 상관없을 거라 생각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찾아오거나 찾아가게 되기도 한다. 서울연극협회 박정의 회장은 2013년도 서울연극협회 성북 지부에서 이사로 소속되며 자신과는 거리가 먼 협회에 처음 발을 디뎠다. 특별한 계기보다는 지금까지 쌓여온 것들이 오늘의 자리를 결심하게 만들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먼저 협회를 대표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극단 작은 신화에서 시작해 2003년 극단 초인을 만들고 대표와 연출로서 게르니까, 기차, 특급호텔, 선녀와 나무꾼, 독고다이 맥베스, 스프레이 등 몇 편의 작품을 제작, 연출했습니다. 벌써 28년 정도 연극계에 머물고 있습니다.

2013년 (사)한국연극협회 서울지회 성북지부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사)한국연극협회 서울지회 성북지부. 그렇게 협회의 존재와 협회의 역할과 협회의 필요성과 협회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우리의 창작 환경에 대한 불만, 분노,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10년의 고민과 방황이 지회장 출마의 계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 우리 사회로부터 내가, 우리가 하는 (연극) 작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일은 협회에서 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문제점들을 해결해 보고 싶어 결심한 게 이어져 출마하게 되었습니다. 협회장이 되면 그 일을 하는 데 유리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진 일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에 그 가치를 모두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2022년 서울연극협회의 방향성이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부분일까요?
분명히 전과 달라질 것입니다. 현장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더 집중하며 소외된 곳이 있다면 들여다보고 회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해 맞춤 서비스를 제공해 드리고 싶습니다. 협회는 회원들의 모임입니다. 그분들의 회비로 운영되는 단체이기 때문에 우리 또한 그분들에게 월급을 받고 일하는 것이지요. 회원들의 의견을 정부기관에 전달할 때도 책임감을 가지고 힘을 싫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면 무대 장치나 소품을 옮길 수 있는 트럭 공유 사업같이 작은 것부터 지원하고 싶습니다.

또 3년마다 한 번씩 갱신해 주어야 하는 예술인 증명서가 있습니다. 3년 동안 세 작품을 했다는 증거를 내야만 그 자격이 유지돼요. 창작 지원금이나 예술인 생활 안정자금을 받을 때 필요한 증명서인데, 절차상의 문제가 복잡한 경우도 있어서 그 부분도 개선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협회가 동사무소 같은 심리적인 단체가 되길 바라죠. 그러기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며 신뢰를 쌓아가야 합니다. 어느 정도 신뢰가 쌓여 있다면 큰일도 지금의 집행부가 곧잘 해내겠다는 믿음을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서울연극협회 내에서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있으신지요?

희망찬 서울 대학로를 위해 뭉친 서울지회 7대 집행부
희망찬 서울 대학로를 위해 뭉친 서울지회 7대 집행부

서울지회 7대 집행부는 협회의 존재 이유를 찾아가는 협회입니다. 7대 집행부는 회원들과의 소통, 복지와 서비스를 가장 중요한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운영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정책위는 우선 현재의 여러 지원 기관의 지원 사업을 검토하는 것이고, 장기적으로 지원 정책에 대한 연구를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대외 협력위는 협회의 이미지를 대외에 홍보하고 새로운 협력 사업을 개발하는 위원회입니다. 사업 운영위는 현재의 협회의 사업들, 5대 축제를 중심으로 연구하는 위원회로 발전적 대안 제시가 중요한 역할입니다. 또한 새로운 사업을 찾는 노력도 할 예정입니다.        

연극(예술) 노동의 가치, 연극(예술)인 일자리 정책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가가 극장의 주인이 되는, 극장이 예술가의 일터가 될 수 있는 제도를 만들려고 합니다.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공공 극장을 활용하고, 배우와 스탭을 단원이 아닌 직원으로 고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로 여전히 고될 테지만, 현 서울 대학로의 분위기는 어떤지요? 또 현장 창작진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그야말로 난리죠. 코로나로 객석 거리 두기 하는 것 자체가 타격이었습니다. 이젠 불가피하기 때문에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근데 지금 오미크론 확산 여파로 공연 자체가 문을 닫는 거예요. 작년까지만 해도 대학로 공연팀 내에 확진자가 발생해서 공연을 접은 사례가 1년 통틀어서 한두 건 정도였습니다.

현재는 그런 사례가 하루에 한두 건씩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한두 달 전 극장 대관을 하고 배우와 스태프의 계약, 지금까지 연습해온 시간들에 대한 손실이 너무 큽니다. 

요즘은 공연 직전에 해산하거나 절반도 못 했는데 극장 문을 닫아야 할 상황이 닥치기도 합니다.

사실 연극인들은 전부터 관객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큰 수익을 예상하지 않습니다. 내가 만든 작품을 어떻게든 무대에 올려서 실험해 보고 평론가들이나 동료들한테 평가를 받으며 더 나은 공연을 위한 시작점에서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어져 버린다면 절망이 크죠.

또 얼마 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되었습니다. 정권은 언제나 바뀔 수 있지만 각자 상처가 있고 아픔이 있기 마련입니다. 불과 5년 전, 블랙리스트 문제로 연극계도 화상을 크게 입었죠. 그때의 정권이 다시 기억이 나면서 연극인들에게 알레르기처럼 작용하는 겁니다. 혹여 그 사건들이 되풀이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도 크고요.

난관인 부분은 어떤 게 있을까요. 

협회가 무슨 일을 하나 하려면 일단 협회와 회원들하고 의견이 일치가 되어야 되고 회원들의 다양한 의견이 통일되어야 할 때도 있어요. 큰 공연들을 집중적으로 미뤄줬으면 좋겠다, 또 어떤 분들은 그러지 말고 넓게 지원 해줬으면 좋겠다는 등의 현실적인 여러 가지 의견이 있습니다. 어찌 되었든 협회가 중앙지부에 전달하기 위해선 뚜렷한 주관이 있어야 합니다.

중구난방인 의견을 그대로 전달할 수는 없기에 1차적으로 의견을 모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평소에 회원들과 늘 소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의견을 모으려고 하면 어렵습니다. 언제든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고 상황을 공유해 소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모인 의견을 전달해도 바로 실행되지 않습니다. 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움직이는 정부 기관의 답을 기다리기 위해선 인내가 필요하죠. 

그 소통이 쌓이면 신뢰가 됩니다. 신뢰에 기반을 둔 관계와 그렇지 않은 관계는 아주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신뢰가 없으면 자꾸 그 의견에 대해서 의심하게 되고 재검토하게 되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갑니다. 섬세하되 지체되진 않아야 합니다.

온라인 공연이 지속되는 코로나 19 상황에 줄긴 했지만,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아직은 규모가 작지만 메타버스에서 실현되는 새로운 공연의 형태를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온라인 공연을 몇 편 봤는데 아직은 초보적인 실험단계인 것 같아요.
분명 그런 실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활성화되기까지 아무리 과학이 빠르게 발전해도 무대 현장 기술과 함께 성장할 수 있어야겠지요.

협회를 지켜봐 주시는 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회원분들에게 다가가려고 해요. 전부터 많은 분이 선거 공약으로 ‘협회를 편하게 들려주세요’, ‘아무 때나 들려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분들 입장에서 어려운 말입니다. 다들 바쁜 일상에서 협회를 굳이 찾아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자유롭게 올 수 있으려면 저희가 자꾸 먼저 말을 걸어야 합니다. 불편한 건 없는지, 기분은 어떤지 협회가 계속 질문해야 신뢰가 쌓이고 솔직한 답변과 원하는 바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지금의 시기를 버티고 있는 연극인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이 세상에 연극이 없는 거 웃기잖아요. 우리 연극인들이 좀 더 자긍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기운이 빠지고 삶이 좀 어렵더라도, 스스로 초라해져 버린 느낌이 들어도 우리가 하는 이 작업이 생각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인식하길 바라요.

재미있는 작품, 조금 덜 재밌는 작품, 완성도가 좋은 작품, 조금 떨어지는 작품들이 아주 주관적인 시선에서 평가받죠. 하지만 이 작품들은 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태계만 봐도 잡초가 있어야 꽃도 피고 나무가 자신의 열매를 썩혀야 씨가 되듯 매번 좋은 작품만 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촉망받는 배우들이 사실 연극부터 시작했거든요. 그 사람들이 어느 날인가 갑자기 <오징어 게임>으로 터지고 영화 <기생충>에도 출연해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되는 것이죠. 이 저변이 없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러지 않습니다. 그들처럼 오늘도 작은 무대에서부터 기량을 닦고 있을 어딘가의 연극인들에게 응원을 보냅니다.


연극을 보러 가기까지의 길이 너무 어려운 사람들 있다. 휠체어를 끌고 극장에 들어오려면 입구 근처까지가 최대인 사람들, 연극을 보러 가는 길까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사람들. 배우들의 땀과 얼굴을 생생하게 담아낸다면 연극을 영화처럼 상영하는 것도 누군가에겐 큰 위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연극협회는 한 번 들여다볼 곳을 두 번이고 세 번 들여다본다는 약속을 했다.

방부처리 된 콘텐츠들 사이 한 번 내뱉으면 도로 삼킬 수 없는 연극 예술. 재생한 후로 일시 정지할 수 없는 단어와 몸짓, 배우와 관객의 교차하는 숨소리와 그 모든 걸 담고 있는 공연장들은 오늘도 고여 있는 세상에 뛰어들어 헤엄친다.

(사진=문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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