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584회, '가을 잡곡, 알알이 귀하다'
10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KBS1 방영

[문화뉴스 조아현 기자] '한국인의 밥상' 584회에서는 맛도, 영양도 풍부한 잡곡으로 차린 밥상을 소개한다.

조, 피. 메밀, 율무. 저마다 이름이 있지만, 쌀 외에는 모두 잡곡이라 불린다. 잡스러운 곡식이라 홀대 받던 이 곡식들이 요즘 건강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알고 보면, 맛도 영양도, 무엇하나 부족함 없는데 배고픔을 달래기 위했던 고마운 한 끼. 작지만, 강한 생명력으로 밥상을 지켜온 든든한 잡곡, 가을 들녘의 진짜 주인공을 만나본다.

작지만 강하다
– 조바심 내며 먹던 고이도 ‘차조’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전남 신안의 고이도. 우리 땅에서 가장 먼저 재배하기 시작해 ‘서숙’으로도 불리는 조는 비가 오면 땅이 단단하게 굳는 고이도에서 잘 자라준 곡식이었다. 익기 전에는 잡초와 구별하기 힘들어 김매기도 까다롭고, 일일이 낫으로 베어 수확을 하다보니 손이 여간 많이 가는 게 아닌라는데. 이삭을 베어 하루 이틀 말리고, 말린 이삭은 또 체에 걸러 알곡을 털고. 낟알이 작고 가벼운 터라 타작하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마음 졸인다는 뜻의 ‘조바심’도 조 타작을 의미한다.

차진 ‘차조’. 찰기 없는 ‘메조’, 색깔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되는 조는 쌀밥 구경도 못했던 시절 배고픔을 달래주던 고마운 잡곡이다. 값싼 메조에 보리와 고구마 같은 재료를 보탠 서숙밥은 까끌거리지만 허기진 속을 채워준 든든한 한 끼다. 찹쌀 못지 않게 찰진 차조밥을 절구에 찧어 달달한 고물 묻힌 서숙떡은 잔치에서 빠질 수 없고, 차조로 빚은 조막걸리의 달큰함은 가을걷이하느라 마음 졸인 농부의 노곤함을 달래준다. 작지만 단단한 차조처럼, 고단한 시간 고이도 섬 사람들의 밥상을 지켜온 차조를 만나본다. 

잡초 ‘피’의 변신
- 오래된 잡곡들의 귀환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전주에서 3대째 농사짓는 강희 씨. 올해 심은 벼 품종만 90여종에 토종벼 뿐 아니라 지역마다 전해오는 재래 잡곡에도 관심이 많다. 생김새도 맛도 제각기 다른 잡곡 중 뽑아도 뽑아도 사라지지 않던 잡초 ‘피’가 최근에는 제일 비싼 잡곡으로 신분상승을 했다. 더 이상 먹을게 없어서 먹던 가난의 상징이었던 피는 60년대 전까지는 구황작물로 요긴하게 쓰였지만 수확량도 적고, 맛도 없다보니 쌀에게 밀려 사라졌다가 최근 식용으로 개발되면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식용피가 주목을 받고 있긴 하지만 식감도 거칠고 씁쓰름한 맛도 있어 피밥과 피죽이 전부. 강희 씨는 피를 활용할 방법을 고민하다 피로 가루를 내 피국수를 만들어봤다고. 끈기가 없어 뚝뚝 끊어지지만 구수한 맛이 별미라는데. 오곡 중 하나로 주곡이었던 피의 설움이 씻겨나갈 수 있도록 할머니께 전수받은 오곡밥 짓는 비법도 선보인다. 크기별로 ‘이형제’, ‘삼형제’로 나눠 각각 고슬하게 쪄내고 한데 섞어 다시 밥을 짓는 것이 할머니의 비법. 은은한 아궁이불에 들기름 발라 김까지 구우면 저절로 침이 고인다. 곡식 하나에 정성을 다해 밥 짓던 할머니의 따뜻함처럼 피죽 한 그릇을 얻기 위해 흘린 농부의 땀방울이 뜨겁다.

메밀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 제주 토종 메밀 이야기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제주도는 전국 메밀생산량의 30%가 넘는 대표 주산지다. 제주도 사람들에게 메밀은 생명과도 같은 곡식이었다. 밭농사가 전부였던 제주에서 바람도 척박한 땅도 잘 견디며 자라는 메밀은 참으로 기특하고 고마운 존재였다. 이웃 할머니가 평생 간직해 온 씨앗을 지키며 토종 메밀 농사를 짓는 추미숙 씨의 텃밭은 메밀 뿐 아니라 오랫동안 제주에 전해오는 보물들이 구석구석 숨어있다. 수분이 많아 목이 메지 않고 술술 넘어가는 물고구마와 메밀쌀 얻을 때 덤으로 얻는 는쟁이를 같이 넣어 되직하게 끓인 는쟁이범벅은 대충 익혀 먹을 수 있어 바다로, 밭으로 바삐 다녔던 제주 어멍들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아이를 낳은 산모가 먹는 첫 음식인 메밀저배기는 메밀가루를 더운물에 반죽해 숟가락을 뚝뚝 떼어넣어 수제비처럼 끓인다. 뜨근한 메밀저배기 한 그릇은 그때 추억 때문인지 요즘도 자주 찾는다고. 제사상에 빠질 수 없는 메밀묵은 손이 퉁퉁 붓도록 메밀쌀을 주물러 전분을 내고, 가마솥 지켜가며 뭉근하게 끓여 맑은 청묵을 만든다. 삶과 죽음, 슬픔과 기쁨, 삶의 모든 순간마다 메밀로 음식을 만들어 차린 상에는 척박한 땅에서 꿋꿋하게 이어온 제주 사람들의 생명력이 담겨있다.

 땅이 준 선물,  잡곡아닌 약곡이고 참곡이다
– 연천 율무 이야기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사진=KBS '한국인의 밥상'

경기도 연천. 전국 율무 생샨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연천은 일교차가 커 율무 여뭄세가 좋고, 연작이 어려운 콩농사 다음 해에 율무를 많이 심다 보니 율무의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비탈진 율무밭이 많아 기계로 수확하기 힘든 곳은 낫으로 베어가며 이삭을 그루터기에 올려 말리고, 말린 이삭을 털어 크고 단단한 율무 알곡을 벗기는 도정작업까지 거치고 나면 보얀 율무쌀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 약으로 처음 들어온 율무는 ‘의이인’이라는 이름의 약재로 기록되어있는데, 연천에서도 율무를 특용작물로 재배하기 시작해 율무의 효능이 알려지며 두루두루 활용하기 시작했다.

천식이 심해 공기 좋고 자연 좋은 연천으로 왔다는 권미영 씨. 율무의 매력에 반해 직접 농사지어가며 율무를 이용한 다양한 음식을 만들어 이웃과 나눈다는데. 온갖 약초 넣고 달인 국물에 율무를 품은 닭 넣고 푹 끓이면 보약이 따로 필요없다는 율무백숙이 완성된다. 조물조물 밀가루 반죽 위 감자를 올려 쪄먹던 연천의 대표음식 즘떡은 밀가루 대신 율무가루를 넣어 율무즘떡으로 재탄생한다. 탱글한 식감이 살아있는 율무말이밥과 율무샐러드까지 약이 되는 율무처럼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웃들의 든든한 밥상이다.

한편 '한국인의 밥상'은 KBS에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40분에 방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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