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저녁 7시 10분 KBS1 방송

[문화뉴스 황동은 기자] 충북 보은은 조선 8경의 하나이자 제2의 금강산으로 불릴 정도로 산세가 수려하기로 이름난 속리산 자락에 안긴 고장이다.

조선 제3대 왕 태종이 심신을 다스리고자 속리산 법주사에 와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돌아가는 길에 ‘은혜를 입은 땅’이란 뜻의 보은이란 지명을 내렸다고 전해온다. 조선 태종, 세조가 심신의 병을 고치고, 해방과 6.25 전후로 이북 사람들이 내려와 터를 잡고 살아간, 지명 그대로 ‘은혜로운 땅’, 보은.

하얀 눈이 온 세상을 포근하게 감싸주는 계절, 수려한 속리산 자락 안에서 그 이름처럼 넉넉하게 베풀며 살아가는 마음 따듯한 사람들의 동네, 충북 보은으로 동네한바퀴 203번째 여정을 떠나본다. 

속리산 랜드마크, 정이품송와 말티재 전망대

사진=KBS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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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세가 수려해 예로부터 한국 8경 중 하나로 많은 사랑을 받아온 속리산. 그 길로 향하는 길목에서 ‘정이품송’이 맞아준다.

세조가 재위 10년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이 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가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 올려 어가를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여 이 소나무에 정2품 벼슬을 내렸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걸음을 옮겨, 고려 태조 왕건이 말을 타고 속리산에 오르기 위해 박석을 깔아 길을 만들었다는 ‘말티재’로 향한다. 조선 세조도 법주사로 행차할 때 가마에서 내려 말을 갈아타고 올랐던 길이라고 하여 ‘말티재’라 이름 붙었다. 전망대에 올라, 장엄하게 펼쳐진 소백산맥 줄기를 바라보며 여정을 시작한다. 

청정 속리산의 맛, 자연산 올갱이 해장국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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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티재 전망대를 내려와 법주사로 이어지는 길목을 걷는다. 1970, 80년대 최고의 수학여행지이자 신혼여행지로 각광 받던 속리산국립공원은, 90년대 이후 제주도에 밀려 인기 수학여행지로서의 지위는 차차 잃어가고, 이제 등산객들이 주로 찾는 곳이 되었다.

그 시절 수십 곳의 기념품 가게들이 가득했던 자리엔 이제 등산객들을 위한 식당들로 채워져 있다.

속리산 음식 거리에서 올갱이해장국집을 하는 설홍일(65세), 임헌태(64세) 부부도 호시절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다가, 20년 전 식당으로 업종을 바꿨다. 대표 메뉴는 자연산 올갱이해장국이다.

속리산 청정 계곡에서 부부가 직접 올갱이를 잡고 충청도식으로 된장을 풀어 끓인다. 뜨끈하고 시원한 올갱이해장국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보은 한 바퀴 여정의 기운을 충전한다.

보은 대추로 만루 홈런, 대추 귀농 가족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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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복한 눈에 포근하게 안긴 마을을 걷다 대추밭에서 대추를 따고 있는 가족을 발견한다. 그 밭의 주인은 서울에서 귀농한 어린이 야구 감독 출신 김동현 씨(52)다.

다른 대추 농가들이 10월에 모두 생대추를 수확하는데, 동현 씨는 일부는 가을에 수확하고 일부는 겨울까지 그대로 나무에 둔 채로 자연적으로 건대추를 만든다. 

부부 모두 서울 출신으로, 인생 후반기엔 귀농해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꿈을 꾸다가, 5년 전 이곳 보은으로 내려왔다. 전국 각지를 다니며 꼼꼼한 사전 조사를 통해 할 수 있는 농사를 알아보았고, 보은 대추에 나머지 인생을 걸기로 마음 먹었다.

보은 대추가 전국적으로 유명하지만 생대추 이외에 대추를 이용한 특색 있는 먹거리가 없는 것을 알게 된 동현 씨는 ‘한번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요리를 좋아하는 아내, 관광경영을 전공하고 베이커리까지 배운 딸 보연 씨(28세)까지 온 가족이 ‘대추’로 똘똘 뭉쳐 실하게 대추 농사를 짓고, 수확한 대추로 빵, 쿠키, 차 등 다양한 대추 먹거리를 만들고 있다. 

너는 내 운명, 88세 동갑내기 노부부의 손두부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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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도 출신의 88세 동갑내기 부부 이진상 할아버지와 김옥순 할머니. 해방 후, 남으로 온 가족이 내려와 보은 속리산 자락에 터를 잡고 화전을 일구며 살다가 같은 평안도 출신끼리 만나 결혼해 7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해왔다.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남에 내려와 평생을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살림을 일구었던 부모들처럼, 이진상 할아버지와 김옥순 할머니도 어릴 때부터 보고 배운 대로 한평생 쉬는 날 없이 부지런히 일해 슬하의 3남 3녀를 키워냈다.

구순을 앞둔 지금도 부부는, 직접 콩 농사를 지어 메주를 쑤고 가마솥에 두부를 만든다. 전동차에 싣고 보은 오일장에 내다 팔며 자식들에게 기대지 않고 부지런한 노년을 보낸다.

평생 밭일에 허리가 반으로 굽은 김옥순 할머니와, 든든한 마당쇠 역할을 묵묵히 하는 이진상 할아버지가 함께 만드는 손두부를 맛보고, 금슬 좋은 노부부의 따뜻한 겨울날 하루를 함께 한다.

빨간 모자 이장님의 추억의 썰매장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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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개의 병풍과 같다 하여 이름 붙은 구병산 자락, 장안면의 한 마을 길을 걷다가 꽝꽝 얼어붙은 겨울 논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을 발견한다. 

무료 논 썰매장을 만든 이는 동네 이장 이동우 씨(61세). 코로나 시국에 동네 아이들이 마땅히 놀 곳이 없음이 안타까워 3년 전부터 수확이 끝난 논에 물을 채운 뒤 얼려 무료 썰매장을 만들었다.

폐목으로 썰매를 직접 만들어 아이들에게 빌려주는 것은 물론, 난로를 피워놓고 고구마를 직접 구워주기까지, 이 모든 것을 공짜로 풀 서비스한다.

이장님은 아이들이 썰매장에서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산타할아버지처럼 항상 빨간 털모자를 쓰고 아이들을 맞아준다. 썰매장에서 썰매를 타는 아이들과 함께, 이만기도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며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썰매를 타본다. 

소나무 관솔로 빚은 보은 송로주 명인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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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에서도 산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속리산 면 구병리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예언서 '정감록'에서 전쟁이나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안심하고 할 수 있다는 10승지 중의 하나로 꼽은 곳이다.

이곳 구병리의 맑은 물과 속리산의 정기를 머금은 푸른 소나무로 만드는 전통주가 있으니 바로 송로주다. 송로주는 멥쌀과 누룩, 소나무 '복령'과 '관솔'을 날밤처럼 깎아 술을 맑게 빚어 청주를 만들고 소주를 내려 완성하는 술이다. 

평산 신씨 가문의 옛 조리서인 '음식법'에 나오는 술인 송로주. 1994년 충북도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된 '보은 송로주'는 기능보유자였던 신형철 씨가 1998년 작고한 이후 당시 제조기능전수자였던 임경순 명인에 의해 지금까지 전통의 맥을 잇고 있다. 임 명인은 2006년 충북도 무형문화재 송로주 기능보유자가 됐다.

송진에서 나오는 묵직한 소나무 향과 깨끗 담백한 맛이 일품이며, 목 넘김이 부드럽다. 숙취가 전혀 없는 명주인 송로주를 세계적인 술로 알리는 것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자부심으로 복잡한 전통 방식을 고집스레 지켜가며 송로주를 빚는 임경순 명인을 만나본다. 

동네아들 만기의 보은 단골집, 북어찌개 백반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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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보은과 제법 인연이 있다는 동네아들 만기 씨. 해마다 열리는 보은장사씨름대회에 KBS 해설위원으로 참여해, 대회 기간 동안 보은에 내려와 묵은 적이 많다. 보은에 오게 되면 단골로 가던 읍내 북어찌개 백반집이 있는데, 몇 년 만에 방문한 보은에서 추억의 단골 맛집을 찾아간다.

가물가물 기억을 짚어 찾아간 그 골목엔 옛 가정집을 개조한 정겨운 그 식당이 아직 그대로 있다. 오래전, 인근 직장인들이 회식 후 다음 날 아침 해장음식을 원해, 1대 사장님이 처음 북어찌개를 만들게 됐다.

2대 사장인 며느리 유경언(52세)씨는 의류학을 전공했지만, 10년 전 시어머니가 갑작스레 돌아가신 뒤 시어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되살려 40년 단골들도 인정하는 북어찌개 백반 한 상을 차린다. 

추억의 보은 단골 식당에서 구수한 북어찌개 백반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한다.

96세 할아버지의 장수 지팡이

사진=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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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리산 바깥에 위치해 있다 하여 이름 붙은 ‘산외면’으로 향한다. 하얀 눈이 쌓인 돌담길과 장독대들이 정겨운 시골 마을을 걷다가, 어느 집 앞에 여기저기 널려있는 지팡이들을 발견한다. 집으로 들어가 보니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가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작업을 하고 있는데, 올해 96세의 서재원 어르신이다. 

목수 출신인 서재원 어르신은 8년 전부터 튼튼한 장수 지팡이를 만들어 노인들에게 나눠주는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2015년부터 청력이 급격히 나빠져 사람을 만나도 대화가 안 되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젊은 시절 목수 일을 했던 경험을 살려 거동이 불편해진 친구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지팡이를 만들기 시작하셨다.

그동안 만들어 기부한 지팡이가 무려 8000여 개. 보은군 내 노인들은 서재원 할아버지의 지팡이를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을 정도라 이제 충북 다른 시군으로 지팡이를 보내고 있다. 

귀가 잘 안 들리지만, 귀가 어두운 덕분에 지팡이를 만들고 좋은 일을 하게 됐다며, ‘지금은 내 귀가 효자’라고 말씀하시는 초 긍정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본다.

한편, KBS '동네 한바퀴'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10분에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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