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본다. 한 전쟁으로 이 모든 풍경이 사라진다면.

전쟁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목격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되도록 기회가 왔을 때 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체코에 도착했다. 곳곳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있었다. 상상하게 됐다. 한 전쟁으로 이 모든 풍경들이 사라진다면.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이 보인다. 사람들은 온데간데없다. 저 멀리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교환학생 시절 방문했던 곳이 이렇게 변했다는 걸 믿지 못한다. 모든 순간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마지막이다.

프라하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볼 때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프라하 곳곳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볼 때마다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됐다.

다양한 국적의 교환학생 친구들과 다니면 외로움을 종종 느낀다. 그들이 모두 재밌어하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경험과 취향이 다르다 보니 설득을 포기하게 될 때가 많다. 그래도 그들과 여행하는 것은 소중한 경험이다. 전쟁에 대해 이야기도 한다. 다들 걱정이 많다. 전쟁이 확대되면 군대를 가야 한다는 친구들도 있었다. 나와 같은 처지인 것이다.

위태로운 조각상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있다.
위태로운 조각상과 함께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있다.

전쟁은 생각하게 한다. 평화와 자유로운 여행은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각국의 노력과 정치적인 환경으로 인해 위태롭게 지켜져 오고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분단국가에서 살았다. 평화는 자주 볼모가 됐다. 북한에서도 그랬고, 대한민국 안에서도 같았다. 2022년, 평화는 다시금 볼모가 된다. 우크라이나, 나아가 세계의 평화는 조건 없이 지속하여야 한다.

프라하의 시민들은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보냈다.
프라하의 시민들은 다양한 표현방식으로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보냈다.

모든 것들은 사라진다. 내가 갔던 여행지가 폐허가 된다면. 꼭 전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모든 곳은 언젠가 폐허가 될 것이다. 내가 갔던 에펠탑이, 내가 지나쳤던 프랑크푸르트 시내가, 내가 거닐었던 서울 거리가 허허벌판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이상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장소는 영원하지 않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영원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 그뿐이다.

 

프라하의 저녁은 아름다웠다. 푸르스름한 바탕 속에 노란색 가로등이 밝게 빛났다. 강물에 프라하성이 비췄다. 곳곳에 우크라이나 국기가 걸려있었다. 이곳도 언젠가 다른 곳으로 변할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의 흐름을 생각하면 현재란 참 짧은 것이다. 체코 여행 마지막 날, 나는 프라하에서 하루를 더 보내기로 결심했다.

체코 국립도서관은 사진 촬영을 5분만 허용한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엄격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이곳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체코 국립도서관은 사진 촬영을 5분만 허용한다.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엄격하게 유지하고 있어서 이곳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체코의 국립도서관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지만, 나중에 프라하에 다시 오기란 어려울 것 같았다. 전쟁의 흔적들을 곳곳에서 목격하면서 하고 싶은 일은 되도록 기회가 왔을 때 해내야 한다는 일종의 위기감을 느낀 것인지도 모르겠다. 혼자 프라하의 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국립도서관으로 향했다. 사진에서 봤던 것만큼은 아니었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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